<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파울 크뤼거 Paul Kru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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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25년 10월 10일 |
케이프 식민지 스틴스버그 | |
사망 | 1904년 7월 14일 (향년 78세) |
스위스 클라렌스 | |
국적 |
[[트란스발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정치인 |
신체 | 170cm |
가족 |
배우자 마리아 뒤 플레시스(1842-1846년 사망) 게지나 뒤 플레시스 (1847-1901년 사망) 자녀 18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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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란스발 공화국의 전 정치인, 제3대 대통령. 움 폴(폴 삼촌)이라는 별명을 가졌다.2. 생애
어린 시절인 1830년 후반에 대이주에 참여했고 트란스발은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이에 반발한 보어인들이 여러 공화국을 세웠다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통일되었는데, 영국에서는 여러 공화국 중 오렌지 자유국, 트란스발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했다.1877년 3월에 트란스발의 부통령이 되었고 보어인과 줄루인들의 국경 분쟁이 발생하자 영국인이 트란스발을 공격해 식민지로 만들었고, 파울 크루거는 1880년 12월 16일에는 사령관으로 추대되어 영국과 전쟁을 벌이면서 제1차 보어전쟁이 일어났고 1881년 8월 8일에는 삼두정의 집행위원이 되었다가 2월 27일에 영국군을 크게 이기면서 프리토리아 협정을 맺으면서 트란스발 공화국이 독립하자 5월 9일에 대통령에 취임했다.
1886년 7월에는 트란스발 공화국에서 금 광맥이 발견되어 영국인들이 유입되어 비트바테르스란트 골드 러시가 일어났으며, 이 일로 보어인과 영국인들이 대립해 제2차 보어전쟁이 일어났다. 1888년, 1893년, 1898년에 대통령에 재선했고 1900년에 영국와의 전쟁에서 불리하자 유럽으로 떠났다.
영국이 승리한 이후에 귀국하지 않고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04년에 스위스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유해는 남아프리카로 반환되어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