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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8-12-07 00:25:41

파울 베르나르도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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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ernardo_and_homolka.jpg
그의 부인 칼라 호몰카(Karla Homolka)와 같이 찍은 사진

바비와 켄 살인마(Barbie & Ken Killers)[1]
캐나다 사상 최악의 연쇄 강간 살인범

1. 어린 시절2. 청년 시절3. 칼라 호몰카4. 범죄5. 체포6. 의문점

1. 어린 시절

파울 베르나르도(Paul Bernardo)는 1964년 8월 27일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스카버러(Scarborough)라는 토론토의 위성도시에서 태어났다. 파울은 회계사 케네스 베르나르도와 마릴린 베르나르도 사이 세 자녀 중 막내아들이었는데, 사실 케네스의 친아들이 아니라 어머니 마릴린이 옛 애인과 불륜을 저질러 낳은 사생아였다.

파울 베르나르도의 어머니 마릴린은 부유한 집안에 입양된 고아였다. 젊은 시절 마를린은 열렬히 사랑하는 애인과 결혼하려 했지만, 양부모는 애인의 학력을 문제삼아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릴린은 결혼을 포기하고 양부모가 소개한 케네스 베르나르도와 결혼했다.

케네스 베르나르도는 회계사였는데, 내성적인 성격이라 말수가 없고 눈에 띄는 특징이 없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게다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고 아들까지 낳은 사실을 알고도 눈감아주었다. 그러나 사실 케네스는 관음증 환자이자 소아성애적인 기질이 있는 변태성욕자였다. 1975년에는 아동성추행으로 기소되기도 했으며, 자신과 마릴린 사이에서 낳은 친딸 데비(Debbie)를 지속적으로 성추행했다.

이 때문에 마릴린 베르나르도는 금전적으로 전혀 쪼들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겉모습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등 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나중에 우울증이 중증으로 발전하자 집의 지하실로 들어가 그 곳에서 생활하면서 두문불출했다.

케네스의 이러한 범죄적 성향은 파울 베르나르도가 자라면서 자신을 정체화하는 데 영향을 많이 끼친 듯하다. 특이하게도 정작 케네스의 친아들 장남 데이비드는 자기 아버지 케네스나 파울 베르나르도가 보여준 성도착적 일탈 성향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베르나르도 가족은 이웃들과 잘 소통하는 법이 없었고 서로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파울 베르나르도와 가장 가까웠던 반(Van)과 스티브(Steve) 형제의 증언에 따르면, 베르나르도 집안의 아이들은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었으나 정서적으로는 거의 완전히 방임되었다. 성장배경이 이처럼 비정상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어린 시절의 파울 베르나르도는 항상 웃는 행복한 아이처럼 보였다.

파울이 15살에 눈에 띄는 이상성향을 보였다. 당시 파울은 첫 여자친구 나딘(Nadine)에게 지나치게 고압적으로 대하고 통제하려고 굴었기 때문에 결국 헤어졌다. 파울은 헤어진 그날 나딘과 주고받은 모든 것들을 한데 모아 불태워버렸다. 바로 그 해에 어머니 마릴린은 파울에게 친아버지의 사진을 던져주면서 사생아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 때부터 파울은 어머니를 창년(whore)이라 불렀고, 마릴린은 이에 응수해 폴을 후레자식(bastard)이라고 불렀다.

2. 청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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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 파울은 토론토 대학에 입학했지만, 애인을 고압적/통제적으로 대하는 태도는 여전했다. 인상이 부드럽고 선해 보이는 데다가 잘생겼고 초반에는 친절하기 때문에 여자들을 쉽게 사귈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사귀고 나면 관계는 한 달도 안 되어 끝나곤 했다. 게다가 파울은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착취적인 성적 망상이 있었다. 자신만의 '처녀 농장'을 만들어, 자신이 마음대로 성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여자들을 그곳에 모아 두고 싶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성향은 점점 악화되었다. 나중에는 애인을 과도하게 통제하려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폭력적인 성적 취향을 강요했으며, 여자가 거부하면 심하게 구타했다. 만일 자신이 휘두른 폭력을 신고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여, 구타당한 여자들은 제대로 신고도 하지 못했다.

대학 졸업 이후, 베르나르도는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한 작은 회사에 하급 회계사로 취직했다. 당연하게도 한때 애인이었던 여자들은 파울의 곁에 더 이상 없었다. 관계를 맺을 여자들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자 강간을 시작, 1987부터 1990년까지 강간혐의 최소 18건으로 경찰에 입건되었지만,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구속에는 실패한다.

3. 칼라 호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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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 호몰카(Karla Homolka)는 1970년 체코계 이민자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측정된 I.Q는 131으로 매우 우수한 편에 속했다. 또 칼라는 규칙을 지키는 데에 거의 강박적이었고 평소 고집스러운 데가 있긴 했지만, 크게 모난 면이 없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갑자기 고스족 같은 모습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으며, 자살이나 죽음, 유령이라는 주제에 심취했다. 어찌되었든 파울 베르나르도를 만나기 전까지 칼라가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그러나 1987년 10월, 영원히 일어나지 말아야 했던 만남이 이루어졌다. 파울 베르나르도는 한 동물병원에서 칼라 호몰카를 만난다. 파울의 예전 애인들과는 달리 칼라는 그의 성적 취향을 좋아했고 오히려 그가 그런 짓을 더 하도록 도와줬다. 둘은 서로의 성적 취향을 사랑했고 대화주제는 항상 어린 소녀를 강간하는 것이었다. 1991년에 결국 범죄적인 커플은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다.

4.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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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서 만든 '스카버러 강간범'의 몽타주. 그러나 실제로 발행되지는 않았다.

1987년부터 90년까지 파울은 스카버러 지역에서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연쇄강간을 저질렀다. 알려진 것만 해도 18건에 달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잔인해졌다. 경찰과 언론은 범인을 '스카버러 강간범(Scarborough rapist)'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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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태미 호몰카(Tammy Homolka), 레슬리 마하피(Leslie Mahaffy), 그리고 크리스텐 프렌치(Kristen French)

칼라를 만난 이후, 파울의 변태성욕은 칼라 덕분에 없어지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울은 칼라가 자신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처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극도로 분노했다. 이에 칼라는 1990년에 남자친구 파울[2]에게 완벽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한다. 바로 자기 친여동생 태미 호몰카(Tammy Homolka)의 순결. 칼라는 자신이 일하던 동물병원에서 마취제를 몰래 훔쳐 동생에게 먹였다. 그 후 부모가 모두 잠든 틈을 타 태미는 자기 집 지하에서 파울에게 강간을 당했는데, 칼라는 이 모든 장면을 녹화하였다. 하지만 칼라가 사용한 마취제는 동물용인 데다가 너무 많이 먹였기 때문에 태미는 결국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사망했다.[3] 칼라는 파울에게 자기 동생을 토막내서 박스에 넣은 후 콘크리트를 발라 호수에 가라앉게 하자고 하였고, 파울은 그대로 따랐다. 결국 호몰카 집안의 부모들은 딸이 실종됐다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결국 미해결 사건으로 남았다.

파울의 악행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파울은 장례식에서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은 이유로 집 밖으로 쫓겨난 15살 레슬리 마하피(Leslie Mahaffy)를 납치, 강간했는데, 파울은 레슬리를 차에 태운 채 집으로 가서 칼라에게 새로운 노예를 잡아왔다며 자랑했다. 파울은 레슬리를 강간하고 칼라는 그 장면을 녹화했다. 다음 날, 칼라는 자기 친여동생을 죽인 마취제와 종류가 같은 약을 훔쳐서 레슬리에게 먹이고 전기코드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둘은 시체를 테미의 시체를 없었던 그 방법으로 처리했다.

파울은 1992년 4월 16일 학교가 끝나 집으로 가던 15살 크리스텐 프렌치(Kristen French)를 납치해 집으로 데려왔다. 크리스텐을 칼로 협박해 차에 태웠는데, 차 안에는 칼라가 있었다. 둘은 3일 동안 크리스텐을 강간하고 이 모든 장면을 녹화하여 그것을 보며 성적 쾌락을 느꼈다. 후에 크리스텐은 탈출을 시도하다가 파울에게 붙잡혀 가죽벨트로 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죽었다. 파울은 시신을 기찻길에 버렸는데, 2주 뒤 경찰이 발견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 역시 미해결사건으로 남았다.

5.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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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텐 프렌치 살인 사건 이후 경찰은 파울을 위험인물로 판단하고 계속 감시했지만, 사건의 범인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정말 황당하게 결말이 났다. 파울은 주변에 더 이상 폭행하고 강간할 만한 여자가 없자 칼라를 폭행하기 시작했고, 칼라의 어머니는 사위 파울을 경찰에 신고하고 고소하였다. 칼라는 자기가 폭행을 당하자 사랑이 떨어졌는지 크리스텐 프렌치 강간살인 사건의 범인이 남편 파울이라고 자백했다. 그 이후 레슬리 마하피 살인 사건 역시 파울의 소행이라고 자백하고 그때까지 녹화했던 비디오를 모두 공개한다. 칼라는 레슬리와 크리스텐 사건의 살인범이 파울이라고 재판에서 자백하면 형량을 10년으로 해주겠다는 사법거래를 받아들여 모든 것을 자백했다. 하지만 2005년 칼라가 석방되는 날까지 '경찰이 악마와의 거래에 합의했다.'고 대대적으로 캐나다 언론과 여론이 맹비난하였다. 칼라는 단순공범이 아니라 사건의 적극적인 가담자였기 때문에 여론이 더 거셌던 듯. 이 와중에 태미 호몰카 실종사건마저 파울과 칼라의 합작한 살인강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형량에 2년이 추가되어, 최종적으로 칼라는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파울 베르나르도는 체포 이후 처음에는 강간사실을 부인하며 오히려 경찰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칼라가 자백했고 비디오가 경찰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고는 범행사실을 인정했다. 파울은 살인ㆍ강간ㆍ협박ㆍ무기소지ㆍ시체훼손 등 여러 가지 혐의로 기소되어 1993년 캐나다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도받고 킹스턴 감옥에 수감되었다.

1995년에는 위험한 범죄자라는 판결을 받아서 실날같던 가석방 가능성마저도 사라졌다. 같이 범죄를 저지른 칼라 호몰카가 2005년 7월 4일에 석방된 것과는 다른 케이스.

한편 칼라는 석방 이후 다른 남자[4]랑 재혼하여 아이 3명을 낳고 잘 산다. 그러나 칼라는 사건의 적극적 가담자이며 친동생마저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데, 경찰과 거래를 통해 12년형밖에 안 받았다는 사실에 여론은 매우 분노했다. 칼라가 출산할 때에는 산부인과의 간호사들조차 치료하길 거부했다고 한다. 이후 칼라 부부는 이사를 갔고, 칼라는 개명신청을 했지만 기각되었다. 이후에도 신상과 주소지가 계속 알려지는 등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듯하다. 칼라의 자녀들이 재학 중인 학교 학부모들이 매우 꺼림칙해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고... 여론조사 당시 63.27%가 칼라의 주소지가 대중에 공개되는 것은 정당하다고 투표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칼라가 법원에 신청하기만 하면 범죄기록 조회를 법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여론은 또 한 차례 분노했는데, 모든 정당이 합의하여 칼라 같은 범죄자들이 쉽게 범죄행적을 감추고 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당국의 확답이 있었다.

2017년 5월 31일, 칼라 호몰카가 몬트리얼에 있는 (자기 자식들이 다니는) Seventh-day Adventist Greaves Academy 사립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한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어 또다시 충격을 주었다. #

6. 의문점


칼라 호몰카가 파울 베르나르도의 요구에 복종을 했다거나 단순 공범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범죄를 주도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술했듯이 이 사건은 증거 부족으로 칼라 호몰카와의 형량 협상을 통해 해결되었기에, 사건의 개요는 칼라 호몰카의 주장에 기반해 작성되었다. 파울 베르나르도는 자신이 강간만 저질렀고 살인은 칼라 호몰카가 했다고 주장했는데, 칼라 호몰카가 범행의 책임을 파울 베르나르도에게 대부분 전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새디스트와 마조히스트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마조히스트가 관계의 주도권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에 대한 관점을 볼 때, 파울 베르나르도의 일관적인 범행 패턴은 강간과 폭행을 하고 그대로 자리를 뜨는 거였는데, 칼라를 만난 이후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은 칼라가 주도권을 행사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칼라가 동생의 사망에 대해 가족에게 쓴 편지 또한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편지에서 칼라는 파울이 태미에게 사랑에 빠졌었다는 등, 부자연스러운 주장을 통해 사건의 모든 책임을 파울에게 미루고 자신을 전형적인 피해자로 위치시키고 있다. 배상훈 교수는 팟캐스트 크라임에서 이 편지를 두고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글이라고 평가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 그리고 로리
이 편지는 내가 이제껏 썼던 어떤 편지보다 고통스럽고 힘들게 쓴 편지예요. 당신들은 이 편지를 읽으면 저를 미워하게 될 거예요. 저는 이것을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간직해 왔어요. 그렇지만 저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요. 파울과 저는 태미의 죽음에 책임이 있어요. 파울은 그녀를 '사랑'해서 그녀와 자고 싶어 했어요. 그는 제가 그것을 돕기를 원했어요. 그는 제가 병원에서 수면제를 가져오길 바랬죠. 그는 제가 거절하면 협박했고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괴롭혔어요. 그가 어떻게 했는지 어떤 말로 이해시킬 수도 없어요. 너무도 바보같이 저는 그에게 동의했어요. 그런데 그녀가 그날 먹은 음식들 때문인지 그녀가 토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서 아주 노력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그러나 어떤 말로도 그녀를 다시 살려낼 수 없겠죠. 그럴 수만 있다면 제 삶과 바꾸고 싶어요. 저는 당신들이 저를 용서하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저를 결코 용서할 수 없으니까요.
칼라.

[1] 켄은 바비인형의 남자친구 이름이다. [2] 당시는 결혼 전 [3] 이는 칼라와 파울의 주장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4] 자기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의 동생이라고 한다... 심지어 해당 변호사가 중매를 서줬다고. 흠좀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