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원나라의 환관.2. 생애
휘정원사로 공녀 기씨를 순제에게 추천했다.훗날 순제가 그의 신도비를 만들도록 명령했다.
3. 그의 정체는 누구인가
원사 베르케부카(別兒怯不花)의 열전에 따르면 고용보(고용복, 高龍卜)가 1348년에 휘정원사로 역임한 기록이 있고 보현숙성황후와 관련있는 인물이라 그가 고용보와 동일인물이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고려사에는 자정원사로 임명되었다는 상반된 기록이 있고 고용보가 투멘데르와 동일인물인지 명확하지 않다.고려대의 권용철의 논문인 고려인 환관 고용보와 대원제국 휘정원사 투멘데르의 관계에 대한 소고에 따르면 가정집에 실린 한국공 정공사당기에 나오는 휘정공 정독만달이 투멘데르와 동일인물이라 주장했다.
이 기문 자체가 정독만달이 1300년에 원나라에 들어가고 은총을 받아 선조 3대가 추증되었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한 사당을 짓기 위해 이곡에게 부탁해 지어진 것이며, 정독만달은 원나라에서 여러 관직을 거쳤지만 이곡이 휘정공이라 불렀는데, 휘정공은 휘정원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비슷하게 이곡이 규장각대학사인 샤라발(沙剌班)을 규장공이라 불렀다.
이곡이 휘정공이라 부르는 것은 정독만달이 지낸 대표 관직이 휘정원사로 그가 환관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경인외사에서 휘정원사 고려 출신 환관 독만알아(禿滿歹兒)가 고려 여자 기씨를 황제에게 추천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독만달은 1300년 4월에 내시로 충렬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갔다가 성종의 눈에 들어 원나라에 그대로 남았고, 예와 서를 배우게 할 정도로 총명함을 아꼈다고 한다. 야우르바르바다가 즉위하기 전에 그를 섬겼고 전서사에 이르렀다. 성종의 최측근 신하 중 지위가 그보다 높은 사람이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고 하며, 1328년에 장패경이 되었다가 다시 전서사가 되었다고 한다.
원사 하마 열전에서 투멘데르가 나오지만 동명이인으로 송학사기문에 따르면 휘정원사 투멘데르에 대한 신도비를 순제가 직접 명령해 세웠으므로 권력 투쟁에서 밀려 살해당한 하마 열전의 투멘데르에게 신도비 작성을 명령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기에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