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메즈 국립 고고학 박물관
알 카킴 영묘
테르메즈 | ||
1. 개요
우즈베크어: Termiz러시아어: Термез
영어: Termez
우즈베키스탄 남부, 수르한다리야 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182,800명(2021년)이다.
도시 이름은 그리스어로 "더운 곳"[1]을 뜻하는데 이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 곳을 정복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에는 박트리아와 소그드를 연결하는 최단 교역로 상에 위치한 핵심 도시였고, 현재는 아무다리야강 줄기를 따라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군사전략상의 요충지다.
2. 역사
2.1. 고대
올드 테르메즈 (old termez) 유적지
고대의 테르메스는 현재의 도시 북쪽 8km에 있는데 폐허화 되어있다. 기원전 329년 알렉산더 대왕은 소그디아나로 알려진 곳의 주변 지역을 정복하였고, 셀레우코스 제국의 통치 기간 이후 테르메스는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다 박트리아 왕국이 월지족에 의해 멸망하자 테르메즈 역시 월지족이 세운 쿠샨 왕조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이후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쿠샨 왕조의 영향으로 테르메즈의 시내 각 구역에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대규모의 불교사원이 출연하며 대승 불교의 중심지가 되고, 크게 번성하게 된다.
그러나 4세기 쿠샨 왕조가 점점 쇠퇴하자, 테르메즈 역시 사산 왕조의 페르시아와 에프탈의 공격에 허물어져갔다. 도시의 규모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기능도 성내 구역으로 한정됐다.
2.2. 이슬람 시대
이어 676년에는 우마이야 칼리프에 의해 정복되었고,이후 아바스 왕조 등 이슬람 세력들의 지역이 된다.2.3. 몽골 제국의 등장
1220년 가을, 칭기즈칸 군대에 포위당한 테르메즈 주민들은 열흘간 격렬히 저항했다. 이에 분노한 칭기즈칸은 도시 전체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살육했다. 전쟁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은 옛 도시를 버리고 도시에 물을 공급했던 수로의 상류 쪽으로 이동해 현재 위치에 새로운 테르메즈를 세웠다.현대에 있는 테르메즈가 이때 새워진 도시다. 이후, 티무르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어, 16세기에 독립 부하라 토후국의 일부가 될 때까지 영토를 유지했다.2.4. 러시아 제국과 소련시기
2.5. 21세기 아프간 분쟁과 여파
3. 역사 및 고고학 유적지
7세기에는 불교 승려이자 여행자인 현장이 인도로 가던 도중 이곳을 들르게 되는데, 대당서역기를 보면, 이 도시를 달밀국(呾 蜜國)으로 칭하며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달밀국은 동서로 600여리, 남북으로 400여리, 도성의 둘레는 20여리에 달하며 동서로 길고 남북으로 좁은 모양이다. 이곳에는 10개 이상의 사원이 존재하며, 스님들은 1000여명에 이른다. 사원에는 수많은 탑과 불상이 있는데 매우 신기하고 기이하며 영험이 있다.”
[1]
실제 여름철에는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길 만큼 무더운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