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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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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지 않는 미수복 지역은 자치 기능이 없는 명목상 행정 구역이므로 실질적인 기초자치단체가 아니다. }}}}}}}}}

1. 삼국시대2. 조선시대3. 대한민국

1. 삼국시대

549년에 '태백현'이 이 근방에 설치된 바 있었다.

2. 조선시대

그러다 1390년대 말 안동도호부, 삼척으로 바뀌었다.

3.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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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성은 장승을 음차한 것이라고 한다. [2] 삼척군은 이후로도 동해시, 삼척시 등을 뱉어냈는데, 1995년 도농통합 당시 삼척시와 삼척군만 통합되면서 지금에 이른다. [3] 아울러 해당 링크에서 지금과는 다른 태백시의 시경계선을 확인할 수도 있다. [4] 만원권 지폐가 막 등장했을 당시에 만원권 지폐 몇장이면 번듯한 직장인 월급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 [5] 물론 전국 기준으로는 그랬겠지만 강원도 내에서는 제3의 도시였다. 1970년 태백(당시는 삼척군 장성읍)의 인구는 102,255명이었는데, 이는 춘천시(120,517명)나 원주시(110,188명)에 맞먹는 규모였으며, 영동 지방에서는 강릉시(72,920명)나 동해시(당시는 명주군 묵호읍+삼척군 북평읍, 92,463명)를 제치고 1위의 인구였다. [6] 석탄 성수기에는 타 지역 노동자들을 몇 달이나 몇 주 단위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태백시로 갓 승격될 무렵인 1981년 4월 3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더라도 승격 예정 지역의 인구 11만 2천여명 중에서 무려 95%가 외지인이고, 그 외지인들의 출신 지역 역시 전국의 모든 행정구역 중에서 딱 2개 면만 빼고 다 있었다고 할 정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 비하적으로 표현하자면 뜨내기의 비중이 높았다. 게다가 그런 외지인들의 다수가 '정착할 생각은 없다'(=돈 좀 모이면 고향이나 다른 곳으로 돌아가 살 거다)는 입장이어서 시 승격 무렵에는 "시로 승격되어 인프라가 갖춰지면 외지인들도 정착 의사를 보여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가 나왔다고 할 정도이다.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향촌 귀속 의식이 많이 약해진 21세기 이후에도 "외지 출신 이주자(=나쁘게 말하면 뜨내기)가 많은 지역은 사람들의 애향심이 약하고 분위기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올 정도인데 하물며 1970~80년대 기준으로는 어떻게 여겨졌을지 생각해 보자. [7] 이는 비록 태백시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었지만 옆동네에서 일어난 사북사건 항목만 봐도 알 수 있다. [8] 공교롭게도 인근에 있던 삼척MBC도 2015년에 강릉MBC와 통합하여 MBC강원영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