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E30A17 50%, #E30A17 50%)"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지방(Bölge) | 도(İl) |
중앙아나톨리아 |
<colbgcolor=#fff,#1c1d1f> 앙카라 · 에스키셰히르 · 카이세리 · 키르셰히르 · 코니아 · 네브셰히르 · 시와스 · 요즈가트 · 악사라이 · 카라만 · 니으데 · 찬크르 · 크르칼레 | |
마르마라 |
이스탄불 · 발르케시르 · 부르사 · 차낙칼레 · 에디르네 · 테키르다 · 얄로바 · 크르클라렐리 · 아다파자르 · 빌레지크 · 코자엘리 | |
에게해 |
이즈미르 · 아피온카라히사르 · 아이든 · 데니즐리 · 퀴타히아 · 마니사 · 우샤크 · 무을라 | |
지중해 |
안탈리아 · 아다나 · 부르두르 · 하타이 · 으스파르타 · 메르신 · 카라만마라슈 · 킬리스 · 오스마니예 | |
동남아나톨리아 |
가지안테프 · 바트만 · 디야르바크르 · 마르딘 · 시이르트 · 샨르우르파 · 아드야만 · 시으르낙 | |
흑해 | 삼순 · 아마시아 · 아르트빈 · 바이부르트 · 볼루 · 초룸 · 뒤즈제 · 기레순 · 귀뮈쉬하네 · 카스타모누 · 오르두 · 리제 · 시노프 · 토카트 · 트라브존 · 종굴다크 · 바르튼 · 카라뷔크 | |
동아나톨리아 |
아르다한 · 빈괼 · 비틀리스 · 엘라즈으 · 에르진잔 · 에르주룸 · 햐카리 · 카르스 · 말라티아 · 무쉬 · 반 · 으드르 · 아으르 · 툰젤리 | }}}}}}}}} |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세운 성채와 구도심
둠르프나르 대학
1. 개요
1. 개요
Kütahya [1]튀르키예 중서부의 도시. 에스키셰히르에서 서남쪽으로 50km, 우샤크에서 동북쪽으로 70km, 부르사에서 동남쪽으로 80km 떨어진 분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25만명으로, 튀르키예에서 29번째로 큰 도시이자 퀴타히야 도의 주도이다. 고대에는 라틴어로 코티에움(Cotyaeum) 혹은 그리스어로 코티에온(Κοτύαιον)이라 불렸고, 14세기에는 아나톨리아 베이국들 중 하나인 게르미얀 왕조의 수도가 되었다. 이어진 오스만 제국 시기에는 가장 중요한 속주 중 하나였던 아나돌루 에얄레트의 주도가 되며 번영하였고, 쉴레이만 1세의 4남 바예지트 황자가 1553-58년 산작베이 (총독)를 지내기도 했다. 1833년 메흐메트 알리가 일시 점령했으나 조정과의 협상 후 물러났다. 전통적으로 이즈니크 타일과 함께 쌍벽을 이룬 도자 산업이 발달하였고, 19세기 말에 이미 12만 인구를 자랑하였다. 다만 8천이 넘었던 기독교도 인구는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튀르키예-그리스 인구 교환으로 소멸되었다.
튀르키예 독립 전쟁 시에는 격전 끝에 1921년 7월 그리스 군이 점령했으나 이듬해 8월 둠루프나르 전투 후 튀르키예군이 수복하였다. 포르수크 강과 산지의 사이에 동서로 길게 뻗은 시가지의 중서부 구도심에는 성채, 울루 자미, 고고 박물관을 비롯한 14-19세기 옛 건축물이 많다. 서남쪽 30km 지점 차브다르히사르에는 제우스 신전으로 유명한 아이자노이 유적이 있다. 서북쪽 8km 지점에는 쿼타히야 둠르프나르 대학교가 있고, 동남쪽 아피온카라히사르 방면으로 30km 가면 자페르 공항이 나온다. 시가지 북부에는 공단이 있는데, 도자 산업 외에도 일대에서 생산되는 사탕무를 이용한 설탕 정제업 등이 이루어진다. 해발 970m에 위치하여 기후는 서늘하다. 여름에도 35도 이하고,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진다.
[1]
튀르키예어 표기법 시안의 "ş, v, y의 '시, 우, 이'는 뒤따르는 모음과 결합할 때 합쳐서 1음절로 적는다"는 규칙에 따라 '퀴타흐야'라고 적는다. 실제 발음도 /cyˈtahja/로 '퀴타흐야'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