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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1년 1월 걸그룹 카라와 소속사인 DSP미디어 사이에 벌어난 법정 공방.DSP 이호연 대표가 2010년 3월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그의 부인 최미경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후 여러가지 병폐의 발생, 카라와 신뢰관계가 있던 이호연 대표의 부재 등이 겹치면서 카라 사태가 촉발됐다.
가요계는 물론 연예계에 큰 파장을 미쳤으며, 제2의 한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리더 박규리와 구하라는 사건에 합류하지 않아 제2의 동방신기 사태가 되지 않을지 우려가 있었으며 제2의 한류가 치명타를 입지 않을까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다행히 2011년 4월 28일자로 DSP와 카라 3인이 극적인 합의를 보며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2. 경과
2.1. 제1차 분쟁
2.1.1. 1월 19일
2011년 1월 19일, 카라에 소속된 한승연, 정니콜, 구하라, 강지영 4명의 멤버가 법무법인 랜드마크 홍명호 변호사를 통해서 소속사인 DSP미디어를 상대로 전속계약해지 통보했다.빠져있던 박규리의 입장은 곧 밝혀졌는데 라디오 스케줄(새벽 2시에 끝난다)로 바빴기에 멤버들과 따로 있다고 이야기했으며, 멤버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기사 그리고 당분간 라디오 DJ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사
한승연, 구하라가 19일 오전, 태국 스케줄을 끝내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모습이 잡혔다. 기사
소속사에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한 네 멤버가 일주일 전부터 숙소에서 짐을 빼며 이탈을 준비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 박규리가 타 멤버의 계약해지 통보를 미리 알 수 없었단 사실의 반증이 될 수 있다.
처음에 4인에 이름이 올랐던 구하라는 곧 19일 오후 계약 해지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사
세 멤버측의 입장이다. 기사, 보충기사
DSP의 입장이다. 기사
DSP 측에서는 내보낸 기사는 나머지 세명의 멤버들을 은근히 배신자로 규정하고 있다. 평소 소속사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팬덤의 반응은 상당히 부정적. 관련기사
2.1.2. 1월 20일
정니콜 모친이 2011년 1월 20일 새벽 3시 40분경에 트위터에 올린 글.
세 멤버측은 소속사가 개선된다는 전제하에 소속사에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DSP 측에서는 2차 공식 발표를 하였다.
2.1.3. 1월 21일
2011년 1월 21일 3시에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는데 랜드마크에서 변호사 하나만 달랑 나와서 예전에 했던 말을 반복해 카덕들의 어이를 상실케했다. 랜드마크측의 모순에 대해 분석한 포스팅또 이날 뜬금없이 김광수 대표가 카라사태에 입을 열었다. "카라 3인은 DSP로 돌아가라"고. # 카덕들의 반응은 '돌아오는 게 맞긴 하나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또한 정태원 대표가 카라 사태의 배후로 지목받았다.
2.1.4. 1월 22일
인터뷰에서 배후로 지목되었던 정태원 대표는 카라 5명이 활동하는게 최우선 목표라며 깨진 소속사와 신뢰관계가 문제라고 강조했다.2.1.5. 1월 23일
젊은제작자연대(젊제연)에서 투명성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발언했다.2.1.6. 1월 24일
김광수 대표가 젊제연에게 강력 대응 의사를 밝히고, 젊제연에서는 유감을 표명했다.3인측 부모가 요구사항에 대해 회의를 벌인 뒤, 소속사에 내일 만나자고 통보했다.
2.1.7. 1월 25일: 배후의 폭풍
김광수 대표는 젊제연과 나 모두 사태에서 빠지자고 발언했다.3인측 부모는 협상전 기자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표명하였고, 랜드마크 측 홍 변호사는 DSP에 부모들의 요구 사항을 담은 서류를 전달하였다. DSP 측에서는 원만한 해결을 위해 협의 중이며 저녁 6시에 랜드마크 측에 답변하겠다고 발표.
홍 변호사는 협상 결렬을 통보하고, DSP측의 협상 태도가 불성실 했다고 토로했다. DSP측에서는 랜드마크 측의 요구사항과 답변 전문을 공개하고 자신들의 노력을 호도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이하 연제협) 측에서 중재 선언과 함께 카라 사태의 배후세력과 그 문자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히면서 강경조치를 취할 것을 발표했다. 기사
연제협은 "카라와 소속사인 DSP미디어는 다함께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카라와 소속사의 분열이 국가와 문화산업에 큰 손실이라 생각하고, 본 협회는 이 문제에 적극 참여하여 해결할 나갈 것이다." 라고 밝혔으며, "이런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본 협회는 계약의 당사자이자 산업의 원천이며, 전부인 연예인을 대중음악산업의 핵심기술로 정의하고 앞으로 소속사와 전속계약중인 연예인을 불순한 목적으로 교섭하거나 유혹하여 산업을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자들은 민·형사상의 법적 대응은 물론 연예산업계에서의 퇴출 등 강경하게 조치해 나갈 것이다." 라고 밝혀서 사태를 악화시킨 배후세력에 대한 강경한 대응 의지를 표출했다. 그와 동시에 배후세력이 있다는걸 나타내는 증거로 멤버에게 보낸 문자메세지를 공개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2.1.8. 1월 26일
연제협에서 배후 세력으로 의심받은 J씨는 배후임을 부정하였고 문자는 업무상의 문제로 보낸 것 뿐이라고 말했다.김광수 대표는 배후세력에게 "연예계를 떠나라"라는 발언을 하였다. #
연제협에서 배후로 지목된 J씨, 아니 조현길 씨는 배후세력으로 몰려서 억울하게 의심받느니 당당히 나서겠다며 카라 3인을 돕겠다고 자처했다. #
DSP에서는 계약의 부당 파기를 유도했다면서 명예훼손, 손해배상 등으로 조현길에게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나섯다. 조현길 측에서는 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후견인 자리를 맡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자신을 배후세력으로 몰고간 것에 대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DSP에 소송을 걸겠다고 말했다.
랜드마크 측에서는 배후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1차 협상 결과에 따라, 일본에 계약되어 있는 우라카라 촬영을 시작으로 일본 내 활동은 예정대로 재개한다고 밝혔다. (이미 12회까지의 촬영은 모두 마친 상태다. 방영만 하면 됨.)
2.1.9. 1월 27일: 불씨를 남겨놓고 임시 봉합
연매협, 가수협, 문산연 등 여러 단체에서 카라 사태의 배후를 비난하였고, 배후로 지목된 인물들은 하나같이 부인하였다.또한 이 사태에 숟가락 하나 얹히려는 곳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연제협을 시작으로 듣도보도 못한 연매협(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과 이들 2곳이 소속된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이하 문산연)이 배후세력을 축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표방했다. 기사
카라 3인측과 DSP은 다시 협상에 나서 27일 마라톤 협상 끝에 5명이 함께 활동을 재개하는데 합의 했다. 기사
3인측 부모님 중 한명인 강지영 아버지는 연예매체의 인터뷰에서 '카라 해체는 없다' 라고 말하고, 트위터에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팬들을 안심시켰다. 기사
그리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저건 절대 해결된 것이 아니다. 동방신기 루트를 그대로 밞고 있는 중, 예정된 일본 스케줄 위반시 물어야할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뒤늦게 인지한 카라 3인측에서 일단 예정된 스케줄(3월까지)까지 활동하는데 황급히 합의를 한 것이다. 그 다음 일은 아무도 모른다. 동방신기도 소송을 낸 3명이 예정된 스케줄을 모두 소화한 후 팀에서 탈퇴했다.
하여간 이제 향방은 3월 이후로 넘어갔으며 미봉책이기는 하지만 합의를 보기는 했으니 거의 2주 가까이 시끄러웠던 카라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2.2. 일본활동: 휴식기
일본 활동을 위해 다섯 명이 공항에서 찍힌 사진이 포착되었다. 사진 상으로는 다시 화목한 사이로 돌아간 듯. 근데 비행기 좌석표가 무언가 심란하다.. 단순한 자리배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 사실 저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사 막판의 내용. 부모가 일본까지 따라가 감놔라 배놔라 할 계획이란다. 본격 치맛바람 인증카라 사태를 100분 토론에서 다룬다고 한다. 농담이 아니라 이번 사태는 비단 카라와 DSP미디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래 전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오던 연예인과 소속사 간의 계약 문제이기 때문이다. 10여년 전에도 MBC 프로그램 시사매거진 2580에서 이 계약 문제를 취재함으로써 연예계를 크게 뒤흔들었다. 자세한 상황은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 항목 참조. 그러므로 100분 토론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자리를 마련할 만한 이슈라 볼 수 있다....일 줄 알았는데 파토났다. # 패널들이 출연을 보류했다는 게 이유...
2.3. 제2차 분쟁
2.3.1. 2월 14일: 분쟁 재개
그리고...다시 카라 3인측이 계약이 부존재함의 확인을 구하는[1]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 아예 끝장을 보려고 작정을 한듯 하며 사실상 카라는 끝났다고 봐도 무방한듯 하다.연예계의 시각 대부분은 카라 3인측에 대해 그리 곱지 않은듯 하나, 3인의 부모가 주장하는 바와 DSP의 주장만 믿기에는 이들도 소속사 내부의 정황을 자세히 모르는 듯 하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 때까지 지켜봐야할 상황. #
한승연이 부상을 당했는데도 활동을 강요한 것이나 수익금 중 월 14만 원만 지급했다는 노예설이 계속 나오자 이제 반응은 박규리나 구하라도 맞다 아니다를 확실히 제시하라는 반응이 대세를 이룬다.
카라, 음원 수익 1인 13만원 논란 #
2.3.2. 2월 15일
한승연의 아버지가 일본 후지TV에서 "리더 박규리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인터뷰 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일부 팬들은 "오보다. '리더'라는건 DSP의 여사장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실드를 쳤으나, 자막에 규리라고 써있다. 그 다음 실드는 '한승연의 아버지는 '리더'라고만 말했고 자막은 후지TV가 임의로 넣은 것이다' 였지만 이것도 박살났다.
2.4. 4월, 분쟁 종료
2011년 4월 드디어 협의가 완료되는 분위기다. 가수협회장인 태진아씨가 양측 중재안을 절충해서 전달했고, 정리가 되고 있는 모양.[2]3. 양측의 주장 정리
3.1. 전문성이 없는 경영진
- 랜드마크 : 이호연 대표의 부인은 업계 일을 해보지 않은 비전문가라 멤버들의 입장보다는 회사의 입장만 내세워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 했다.
- DSP : (무응답)
- 랜드마크 : 부모와 신뢰관계가 있던 이호연 대표가 투병을 시작한 시점부터 소속사와 신뢰가 깨졌다. 이 대표가 입원 한 곳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호연 사장을 직접 만나게 해달라.
- DSP : (무응답)
- 랜드마크 : 카라 매니지먼트 팀 구성 및 개선된 케어 방안 요구.
- DSP : 멤버들이 요청했었던 일어 가능한 전담 직원, 변호사, 회계사를 적극 지원하겠다.
3.2. 일본 전속 계약서 문제
- 랜드마크 : 일본 전속 계약서를 일본 아티스트 등록 서류로 속인채 서명하게 했으며, 서명 후 사본을 요구했으나 거부했다.
- DSP : 일본 전속 계약서 문제는 멤버 부모님들과 미팅을 통해 원어와 번역본을 함께 제공했고, 직접 확인을 받은 후 사인을 받았다.
- 랜드마크 : 번역본을 보여줬지만 내용 파악이 어려웠고 서명이 끝난 뒤 사본을 요구했으나 주지 않았다.
- 랜드마크 : 약속된 정산에 대한 확인
- DSP : 계약서 및 정산자료에 부모님이 직접 확인하고 도장찍는 등의 방안을 실행할 의사가 있다.
3.3. 수익 분배의 문제
- 랜드마크 : DSP JAPAN과 DSP의 수수료 이중 공제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
- DSP : DSP Japan은 DSP와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현지 법인. 전속계약에도 명시 되어 있으며, 당사와 협력할 의무가 있다.
- 랜드마크 : 멤버들과 체결한 계약서, 구체적 업무 일정, 정산 자료 제공
- DSP : (무응답)
3.4. 카라야 사업의 추진
- 랜드마크 : DSP미디어 대표이사가 쇼핑몰의 대표이사로 되어있으며, 그 가족이 경영진으로 포진하고 있어 멤버들을 이용하여 소속사의 이익만을 챙기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 DSP : 제안 당시 카라 멤버들 모두에게 의견을 물어본 후, 본인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그 중 제안에 동의한 3명에 대하여만 진행하게 되었다. 카라의 광고 모델료 보다 높은 금액을 월급제로 통상적인 수익배분 비율 보다 훨씬 많은 회사 수익의 80%를 지급하고 있다.
- 랜드마크 : 카라야는 3명의 멤버에게 "BEST FUCKIN FIVE"라고 쓰인 옷을 입혀 사진을 찍어 인터넷 쇼핑몰에 올려서 팬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등 문제를 야기시켰다.
- DSP : 욕설이 기재된 옷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 건은 소속사와 사전협의 없이 진행돼 소속사가 이에 대해 적극 항의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확인서를 받기까지 했다.
3.5. 계약 기간
- 랜드마크: 멤버들의 계약기간은 일본 유니버셜 계약 종료 시점인 12년 8월 말로 한다.
- DSP : 소속사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잇는 사안은 아니나, 복귀 후 협의 가능하다.
3.6. 5인의 카라
- 랜드마크 : 5인 카라를 원한다. 중요한 것은 카라의 활동이지, 회사 문제는 그 다음이다. 멤버들 사이에 불화설은 없다. 소속사에서 멤버들 사이를 이간질 하지 말라.
- DSP : 5인 카라는 DSP 안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카라 부모측은 랜드마크의 전문성 부재 문제로 로펌을 연예계 소송 전문 로펌쪽으로 바꾸었고, 그 이후엔 더 조용하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4. 이것저것
4.1. 박규리 왕따설
박규리는 왜 참여하지 않았나?박규리의 부모님은 "계약해지에 대해 처음 들었다." 라 밝혔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
박규리의 어머니가 중견 성우 박소현 씨이기 때문에 연예계의 생리를 잘 알아서 참가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다. 기사 참조
박규리의 아버지도 국군방송PD이고 사장 이호연 일가와 가족끼리 막역한 관계라고 한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박규리는 처음부터 소송에 참여할 가능성이 없어 배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2월 10일 오후 박규리는 왕따설에 대해서 그런 일 없다, 비행기 좌석 배치는 우연일 뿐이고 멤버들 사이는 좋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추가 소송이 일어났으니 말짱 황. 게다가 2월 15일에는 한승연 아버지가 박규리에 대한 공격성 발언을 해서 분위기는 더욱 을씨년스러워졌다. 헌데 분위기를 보면 부모들 의견 따로, 멤버들 의견 따로 인 듯 한 부분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 때문에 멤버들 사이엔 문제가 없지만, 정작 일부 부모들은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인 박규리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박규리의 어머니가 중견 성우인 박소현씨이기 때문에, 일부 부모들끼리 담합해서 일을 벌이는 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일 확률이 매우 높다, 특히 구하라와 그 부모들이 소송 멤버에서 빠진 상황에서는 더욱 더.
사태 진화 후 박규리는 라디오스타, 강심장 등의 예능에 출연해 왕따설 관련 질문을 받자 " 저는 제가 세상을 왕따시켰으면 시켰지 왕따를 당하지는 않아요."라는 발언을 하면서 왕따설을 완전히 잠재웠다. 사실, 애초부터 카라의 안티팬들마저도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아니지 않냐?" 라고 믿지 않는 반응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
4.2. 멤버 불화설
2010년 7월경에 방송된 하하몽쇼에서 한승연이 밥솥을, 정니콜이 냉장고를 따로 쓰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이를 미루어 그 전부터 카라 내부에서 분열이 있었을 거라는 억측이 나돌고 있다. # 하지만 당시 이는 멤버들의 식습관 (잡곡밥 등의 호불호)와 멤버 개인 스케줄이 갈리기 시작하면서 함께 식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멤버들이 언급한 바 있다.정작 멤버들은 공항에 갈 때 까지 매니큐어 색을 맞추고, 우라카라 마지막 방송때 한 공연에서는 서로 대성통곡까지 했다. 더불어 멤버들이 기회가 되는대로 자신들끼리 모여서 카라 존속을 위한 회의까지 했었다는게 알려지면서, 멤버 불화설보다 DSP vs 부모들 쪽으로 방향이 바뀌는 듯.
4.3. 팬덤 분열
디시인사이드 카라 갤러리를 중심으로 3라라는 신조어가 등장, 박규리와 구하라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을 신나게 까고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 한승연을 이번 사태의 배후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판국. 사실 멤버들이 불만을 가진 걸 사실이라 쳐도 사태를 이지경까지 끌고 온 건 멤버들의 부모님이 아닐까 싶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특히, 트위터에 글을 올린 그분이... 반면에 3인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1:4의 완벽한 구도를 깨뜨리고 사건을 장기화시켰다는 점에서 구하라를 신나게 깐다. 처음에는 DSP를, 나중에는 3인을, 두 번 배신했다 하여 배신의 아이콘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 게다가 구하라의 출신 지역( 광주광역시)까지 문제 삼아 전라도는 배신을 잘한다는 속설을 증명했다느니 하는 지역감정 드립까지 치고 있는 형편이다(...)사태 발발 시점부터 임시 봉합 합의 결정 동안 카라 갤러리는 사태가 터진 걸 보고 가십거리 물어 뜯으러 온 이용자들이 몰려들어와 평소 상주하던 갤러들은 다 대피한 상태였다. 당시의 카라 갤러리는 카라 팬덤의 의견이라고 보기 힘들었으며 오히려 기타 프로그램 갤러리에 가까웠다. 이후 다시 카라 갤러리로 복귀한 갤러들은 멤버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글이나 3라같은 단어를 싫어한다. 카라티, 다음, 네이버 대표 팬카페등을 위시한 대다수의 제대로 된 카라 팬덤은 현재 사태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라는 추세. 여기서 '3라' 같은 개드립 날리는건 금기시된다.
5. 분석
5.1. 일본의 반응
유명한 우익 방송인 테리 이토가 카라 해체 반대 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했다.JPNEWS의 유재순 기자의 기사. # 일본 현지에서 비춰진 카라 사태와 카라 사태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 및 시각, 그리고 카라 사태로 인해 위기에 직면한 신한류 사업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이 기사를 요약하자면 일본에서는 흔히 사무라이 정신이라 하는 의리 정신, Perfume처럼 실전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간과하고 벌어진 일이라는 것.
한국 연예기획사의 갈등을 구조적 문제로 분석한 기사도 있다. 日 "한국 연예인 소송, 배경엔 가족주의" #
헌데 무서운 점은 아이돌로서 치명적인 스캔들에도 불구, 급격히 상승하는 차트 성적이다. 정규 앨범 걸즈 토크는 발매되고 한 달도 넘어서 다시 오리콘 1위를 찍었으며, 뮤직비디오를 모은 DVD는 13만 장 넘게 팔리고 있다. 항간에서는 이 사건이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으로 작용했고, 다음 싱글에서 카라가 사고를 치는 게 아니냐는 말 까지 나오는 모양. 그리고 결국 카라는 해외 여성 그룹 최초로 오리콘 위클리 1위 획득. 한국가수로는 보아,동방신기에 이어 3번째 오리콘 1위 가수가 되었다.
5.2. 손실
여담으로 만약 카라가 해체된다면 경제적 손실이 최소 220억 원이나 된다고 한다. # 통계라는 것 자체가 실제와는 차이가 많을 수도 있는 예측에 불과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사건이 지금껏 한국 가요계와 한류를 책임지던 아이돌 그룹에 대한 시선 자체를 뒤바꿔놓을 수 있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카라 사태 때문에 오히려 카라가 무려 500억 원의 홍보 효과를 봤다고 한다. #
5.3. 치맛바람
팬들은 부모들이 앞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도 불쾌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소위 치맛바람이 앞서고 있다는 것. 부모들이 일본 활동에 따라가서 매니지먼트를 한 것에 대해서도 이미지가 좋지 않다. 성인이 되도록 자립심이 없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반대로 일부 팬들은 부모들의 오해와 지나친 행보가 어쨌든 DSP의 방만경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DSP에 모든 탓을 돌리고 있기도 하다.팬들은 니콜과 강지영의 부모님이 합심해 이번 일을 주도했다고 보고 있다.
정니콜의 어머니는 트위터 이후 욕 먹는 것을 인지한 듯 언론에의 노출을 자제하고 있지만 강지영의 아버지는 16일 방송된 일본 후지TV '슈퍼뉴스'와 인터뷰하면서 카라의 월급 1만엔설을 주장하는 등 사태를 파국으로 모는데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3]
여기에 더불어 정작 멤버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회의를 하거나, 심지어 막내인 강지영은 울면서 부모님을 뜯어말리기까지 했다는 게 김형우 기자 덕분에 알려져 부모들을 향한 비난은 극렬화되었다. 멤버들은 이런 상황에 자기들 까지 전면에 나설 경우 진흙탕 싸움이 커질 까봐 왔다갔다 하면서 말리고 있었던 모양. 역시 불화는 멤버들 간이 아니라 소속사와 부모들 간에 있었다는 게 확실해졌다.
6. 결과
결국 이 사태는 2011년 4월 28일 극적합의에 따라 99일간의 분쟁이 마무리되었다. 카라는 이후 다시 정상적으로 활동을 진행했다.사태 이후 카라에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평가. 이후 카라는 일본에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으며, 한류는 싫으나 카라는 좋다는 평까지 생길 정도로 독자적인 팬층을 구축하였다. 또한 국내에서도 이 사태 이후로 이후 정규 3집 《STEP》이 DSP의 적극적인 프로모션 및 팬클럽 창단 행보는 소속사에 편견을 가지고 있던 팬들에게 그나마 위안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