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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2 08:13:25

치무대

治無戴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미디어 믹스

1. 개요

중국 삼국시대 강족의 수령.

2. 생애

정사 강유전에 따르면 촉한 강유가 농서(隴西), 남안(南安), 금성(金城)의 경계로 출병해 위의 곽회, 하후패 등과 더불어 조수의 서쪽지역에서 싸웠다. 이후 호왕(胡王) 치무대(治無戴) 등이 부락을 들어 항복해오자 강유가 이들을 거느리고 돌아와 안처시켰다.[1]

247년에 백호문과 함께 무리를 이끌고 촉나라에 항복해 강유가 맞이하고 치무대는 번현에 거주하게 되었으며, 248년에 곽회와 싸울 때 아하, 소과, 아차새, 벌동 등에게 호응해 이들이 하과와 백토의 옛 성에서 싸우고 있을 대 무위를 포위했다.

그의 가족은 서해에 남아있었고 곽회가 서해로 나아가 물자, 귀중품을 습격했으며, 치무대는 무위에서 돌아오다가 곽회를 만나 용이의 북쪽에서 싸우다가 패해 달아났으며, 강유가 석영으로부터 나와 강천을 따라 서쪽으로 치무대를 맞이했다.

3. 미디어 믹스

삼국전투기에서는 수염이 덥수룩하고 보라색 모자를 쓴 인물로 등장. 기반 패러디는 불명.

낙곡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위나라의 삽질 때문에 이민족들이 거하게 죽어나가자 자기 백성들을 짐수레로 쓰다가 다 죽였다며 위나라에게 이를 가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했다. 다만 이 때는 이름이 나오지는 않았고 그저 이민족의 수장 중 하나로서 등장했다.

국산 전투 편에서는 무위를 포위하고 있었으며, 무위를 구하고 싶다면 올라오면서 대평원이라 숨을 곳도 없고 보이는 순간 밀어버린다고 했는데, 이는 급하게 이동해온 곽회군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밀어버리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병사에게 곽회가 무위를 지나 서해로 향한다는 보고를 받자 놀랐다. 서해에 치무대의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 치무대는 급하게 곽회군을 쫓으려고 달려가지만 곽회에게 패해 달아나고 강유에게 부하를 보내서 구원을 요청했다.

위나라에서 진태가 이끄는 군사가 국성을 공략할 때 구안이 출동해 도로, 수원을 수복하라고 하자 왜 어려운 것은 다 우리만 시키냐면서 정예 위군에게 우리는 그냥 밥이라면서 이럴 때 니들이 나가서 활약해야 우리도 안심하고 활약하고 따른다고 따졌으며, 이에 구안은 당황하면서 자기들도 많은 병력이 온 게 아니라고 했다.

소설 삼국지 마행처우역거에서는 딸을 강유와 결혼시켜 강유의 장인이 되었으며, 강유가 북벌의 협력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러 오자 위나라의 장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죽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강유가 미당과 손잡기 위해 교섭하려고 하자 미당에 대해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서도 굳이 막지는 않았으며, 강유에게 마유주를 줘서 대접했다.

촉한과 위나라가 양주의 이민족들과 회합하는 자리에 참석하면서 위나라에 붙은 다른 이민족들과 싸움을 하려다가 강유가 달랬으며, 미당과 함께 강유에게 다른 강족들과 위나라의 사정에 대해 알려주면서 도움을 줬다.


[1] 정황상 화양국지의 곽회-하후패를 이긴 기록과 정사 강유전의 곽회-하후패를 상대로 싸우고 치무대를 항복시킨것은 같은 기록으로 보이므로 이를 종합하면 강유가 곽회와 하후패를 이겼기에 치무대 등이 귀순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246년에 곽회-하후패를 이기고 247년에 또 싸워 치무대를 귀순시킨것 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