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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0353c> 충북은행 忠北銀行 | The ChungBuk Ban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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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 1971년 |
해산 | 1999년 |
업종명 | 국내 은행업 |
본점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직대로 343 ( 영동)[1] |
종목 코드 | 007240 |
상장 시장 | 유가증권시장 |
은행 코드 | 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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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1~1999년까지 충청북도를 거점으로 존속했던 지방은행으로 현 신한은행 충북영업부. 행화는 모란.2. 역사
1971년 충북 출신 재일사업가 박승국, 김우현 청주상공회의소 회장, 김종호 한국도자기 사장 등 발기인 15명이 모여 충북은행을 설립했다. 1974년 기업공개를 하였고 1976년 서울지점을 설치하였으며 1977년 신사옥으로 이전하였다. 1979년 제2차 오일쇼크로 경제가 침체되면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경영합리화를 도모하고 당국으로부터 특별자금을 지원받으며 점차 추스렸다. 1985년 전 점포 온라인화 완료 후 1988년 비자카드 발급 업무 및 CD기 가동을 개시했다. 1989년 자회사 중앙리스를 세우며 지원자금을 상환해 10개 지방은행 경영평가 결과 1위를 달성했다. 1992년 자회사로 충북창업투자를 설립하고 1994년 흥업백화점으로부터 흥업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하였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로 경영개선조치를 받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1999년 조흥은행에 흡수합병되었다.
3. 기업정신
- 경영이념
친절한 은행, 깨끗한 은행, 건전한 은행, 활동하는 은행
- 행훈
인화단결, 창의개발, 책임완수
- 행가: 작사는 변상훈, 작곡은 장일남이 맡았다.
(1절)소백산 정기 받아 앞서는 터전 / 지역사회 부름 받고 일어선 기수 인화단결 친절봉사 힘을 합쳐서 / 우리 모두 키워보세 도민의 은행 (후렴)그 이름 영광스런 충북은행 / 그 이름 자랑스런 충북은행 (2절)하면 된다 전진하는 기름진 땅에 / 도민생활 살찌우는 금융의 횃불 창의개발 책임완수 정성을 다해 / 우리 모두 키워보세 도민의 은행 |
4. 역대 은행장
- 김재원 (1971~1973)
- 김재헌 (1973~1979)
- 박정서 (1979~1986)
- 황창익 (1986~1992)
- 민형근 (1992~1997)
- 곽원영 (1997~1999)
- 김연일 직무대행 (1999)
5. 자회사
- 중앙리스: 1998년 신규법인 한국리스여신에 P&A로 넘어간 후 2000년 폐업.
- 충북창업투자: 현 충북투자. 신흥강판 계열.
- 신충은상호신용금고: 구 흥업상호신용금고. 2000년 영업정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