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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5-12 13:52:11

최복연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수산 테크노크라트.

2. 생애

1934년 3월 10일에 함경남도 정평군 정평읍의 빈농가에서 출생했다. 나남고급중학교 졸업 이후 6.25 전쟁 중에는 나남역 철도공으로 일하면서 전시 수송 업무를 담당했다. 1955년 7월, 청진 제2고급중학교 졸업 이후 1959년 7월, 원산농업대학교 수산학부를 졸업하여 함경남도 인민위원회 수산관리국 기술부지도원으로 배치되었다.

1960년 11월, 함경남도 당위원회 수산담당지도원으로 배치, 1969년 2월, 신포시 경제비서에 임명되었으며 1973년 12월, 함경남도 수산부장에 임명되었다. 1977년 3월, 함경남도 홍원군 인민위원장에 임명, 1978년 9월에 강원도당 제2경제비서에 임명되었다. 1982년 8월에 강원도 인민위원장에 이르렀다. 1984년 11월 강원도 친선대표단장으로 중국을 방문하였으며 1986년 불가리아를 방문했다. 1985년 강원도 행정경제지도위원장으로 이임하였으며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정무원 수산위원장에 임명되었다. 이에 따라 1986년 12월 27일에 열린 조선로동당 6기 12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보선되었다.

1987년 4월 2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김일성 75세 생일 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으며 1988년 9월에 수산위원회 대표단장으로 소련을 방문, 미하일 코피아로프 소련 어업장관과 회담하면서 조소 합영기업소 창설을 비롯한 북한-소련 어업협력에 대해 논했다. 1988년, 근로자에 <수산업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을 이룩하는 것은 현시기 우리 앞에 나선 중요한 경제건설과업>이라는 글을 기고하였다.

1990년 5월, 9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 및 수산위원장에 유임되었다. 1990년 12월, 강령수산사업소 소속 30톤급 어선이 풍랑으로 실종되자 한국 내무부장관 안응모에게 수색 협조 요청을 하기도 하였다. 문제의 배는 1991년 1월에 침몰된 상태로 발견되었고, 한국 측은 인양에 필요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북에 통지하였다. 1994년 6월, 정무뭔 수산위원회가 수산부로 개편되면서 수산부장에 유임되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자 장의위원에 위촉되었으며 강희원 장의위원에도 위촉되었다. 그러다가 1994년 11월 15일 8시 35분에 오랜 병환으로 사망하였다. 당중앙위원회와 정무원 공동명의로 "동지는 오랜 기간 중앙과 지방의 여러 기관의 중요한 직책에서 당의 경제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 자기의 지혜와 정력을 다 바쳤으며 수산업을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높이는데 적극 기여하였다."라고 부고를 발표하였다.

이후 그의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