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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42:32

천승률

성명 천승률(千承律)
생몰 1882년 ~ ?
출생지 함경북도 길주군 길성면 길북동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천승률은 1882년생이며 함경북도 길주군 길성면 길북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간부로, 1918년 말 서울에서 천도교 교주 손병희를 만나 세계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김용수(金龍洙)와 박용한(朴庸漢)이 길주로 돌아온 후 회의를 소집할 때 참여하여 후일에 대비할 것을 당부받았다. 이후 1919년 3월 11일, 천승률은 손병희가 독립선언서를 발표했고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길주면 길북동에 거주하는 박서룡의 집에서 이용서(李容瑞), 원세율(元世律), 전용희(全用熙) 등과 만나 독립만세시위를 결행할 것을 결정했다.

1919년 3월 12일, 천승률 등은 1,000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길주 읍내를 행진했다. 성밖에서도 미리 연락을 받고 성내로 들어오려던 군중의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후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천승률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