拓俊臣
(? ~ 1126)
1. 개요
고려의 무신. 척준경의 동생이다.2. 생애
2.1. 여진 정벌
예종 시기 고려의 여진 정벌에 형 녹사 척준경을 따라 낭장으로 참전한다. 예종 3년(1108) 1월 윤관과 오연총이 고려군 8천을 이끌고 가한촌에서 병향(甁項, 병목)의 좁은 길로 나아가다 여진의 복병에 당해, 병사들은 흩어지고 윤관 등은 포위되기에 이른다. 척준경이 정예병 10명을 이끌고 둘을 구해오겠다며 떠나려는데, 척준신은 형을 말린다.적진은 견고해서 깨뜨릴 수 없습니다. 개죽음은 도움될 것이 없습니다![1]
그러나 척준경은 동생에게 너는 돌아가서 늙은 아버지를 모셔도 된다. 나는 나라를 위해서라면 몸을 돌보지 않을 것이니, 의(義)에 따라 멈출 수 없다.[2]
라고 말하고는 소리를 지르며 적진으로 돌격한다. 척준경은 윤관을 구하는데 성공했고, 이후 여러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다.2.2. 벼락출세와 몰락
동북 9성을 반환하는 것으로 여진 정벌은 끝을 맺는다. 척준경은 승진해 문관직을 얻고 중앙 정계에 진출하며, 예종-인종대의 권력자 외척 이자겸의 아들, 이지원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손을 잡음으로 재상인 평장사까지 이르게 된다. 척준신도 형의 권세에 힘입어 하급 무관 출신임에도 병부상서에 임명될 수 있었다.그러나 이 인사는 척준신에게 비극을 불러온다. 상장군 최탁을 비롯한 여러 대장군과 장군들은 자기 윗자리에 출신성분이 낮은 이가 올라온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동지추밀원사 지녹연이 이자겸·척준경의 제거를 모의할 때 이들 장군들도 적극 참여하는 계기가 됐으니, 인종 4년(1126) 2월 25일 초저녁 궁궐에 들이닥친 병사들에 의해 척준신과 조카 척순, 그리고 여러 친당이 죽임을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