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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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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목록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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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작품 | |||||
관련 인물 | 마광수 · 문익환 · 백석 · 송몽규 · 윤형주 · 이양하 · 정병욱 · 정지용 | ||||
관련 문서 | 윤동주문학관 · 연희전문학교 · 릿쿄대학 · 도시샤대학 | ||||
대중매체/창작물 | 동주(영화) · 시인의 방 · 윤동주, 달을 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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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5년 재판본 기준, 1948년 초판본에도 수록된 시는 볼드체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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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동주가 창씨개명을 하기 닷새 전에 지은 시.[1]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서의 부끄러움, 반성과 성찰 등이 주제로 시를 읽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슬퍼지는 시이다.2. 설명
이 시의 주제는 투철한 역사의식을 동반한 끊임없는 자아 성찰이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는 구절은 바로 이러한 자아 성찰의 자세가 극명히 나타난 것으로, 온몸을 바쳐 자신을 꾸준히 되돌아보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게 하여 절망과 암흑의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화자는, 마침내 욕된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과 철저한 자기 참회의 실존적 자아 성찰을 통해 조국과 민족을 위한 삶의 좌표를 설정하는 것이다.다음은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 속 참회록에 관한 내용이다.
윤동주는 1월 29일에 창씨개명계를 신고했다. 그런데 이 ‘1942년 1월 29일’이란 날짜는 반드시 그의 시 ‘참회록’이 쓰인 ‘1942년 1월 24일’이란 날짜와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그가 창씨개명계를 신고한 날은 ‘참회록’을 쓴지 닷새만이다. 그래서 그 시기와 작품의 제목과 내용, 그리고 상황을 볼 때, 그가 ‘참회록을 씀으로써 자신의 감정과 각오를 일단 정리한 뒤에 연전에다 창씨개명계를 신고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즉, 일본 유학을 결정하고 그걸 위해선 자신의 손으로 창씨개명계를 신고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각오했을때, 그 뼈아픈 욕됨으로 인해 쓰인 것이 ’참회록이라는 주장이다. |
3. 내용
3.1. 전문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3.2. 원문
懺悔錄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속에 내얼골이 남어있는 것은 어느王朝의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懺悔의글을 한줄에 주리자。 ― 滿二十四年一介月을 무슨깁븜을 바라 살아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어느 즐거운날에 나는 또 한줄의 懺悔錄을 써야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웨그런 부끄런 告白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보자。 그러면 어느 隕石 밑으로 홀로거러가는 슬픈사람의 뒷모양이 거울속에 나타나 온다。 一月二十四日。 |
[1]
다만 창씨개명은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위한 자금과 도항증명서를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므로 윤동주를 함부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 윤동주는 평생 동안 일제에 대해 부정적인 시를 지으며 살았고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마지막 최후를 일제의 감옥에서 맞았으며 단 한 번도 일본어로 시를 지은 적이 없다. 수많은 인물들이 변절하던 1940년대에 변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육사와 함께 민족시인으로 추앙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