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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5 16:47:28

중앙아파트

1. 개요.2. 역사3. 현재 상태4. 화재와 변화5. 구조

1. 개요.


파일:중앙아파트_배치도_저작권표시.png
중앙아파트는 해방 후 한국에서 민간 자본으로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 중 하나이다. 이 아파트는 서울 중구 주교동 230번지 및 230-2 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2. 역사

중앙산업 (대표 조성철)이 사원용 주택으로 서울 중구 주교동 230번지에 중앙아파트(구관)를 건설했다. 이 건물은 현재도 그 자리에 있으며, 3층 구조이다.

1998.09.10 에 출판된 '한국 최초 101장면' 가람 기획 도서 내용에 따르면, 주교동 중앙 아파트 구관의 경우 '한국 최초의 아파트' (해방후) 라고 한다.[1] 당시 건축 자재를 생산하던 중앙산업의 기술은 서독의 기술 제휴에 의해 건설 기술이 도입됐다. [2]

아래 사진은 중앙아파트 구관 준공 당시 모습 중앙가족60년사에 실려있는 사진이다.

파일:구관옛모습.jpg
중앙산업이 6층짜리(지하 및 옥탑 별도로 있음) 또 다른 중앙아파트(신관)를 지어 주거용도로 분양했다. 이 건물도 현재 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아래는 중앙 아파트 신관 분양 동아일보 분양 광고다.

파일:중앙아파트 분양 자료.jpg
중앙산업 중앙가족 60년사 자료집에 따르면 1946년 중앙 산업 창립 이후 건축자재를 생산해오던 중앙산업은 1957년 사원수가 250명에 달하였는데, 창립초기 일본에서 우수한 재일 동포 학생들을 선발해 채용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 중 우수 사원을 대상으로 사택 제도를 운영하였는데, 그 직원용 아파트가 바로 이 중앙아파트 구관이다. 당대 주거용 건물 기준 고층 건물이었던 7층 규모의 중앙 아파트 신관의 경우 일본의 기둥식 고층 맨션 건축 기술이 도입됐을 것으로 보인다.[3] 이후 1959년 충정로 개명아파트를 시작으로 중앙아파트신관, 여의도 시범단지 등의 편복도식 단지형 건축이 확산됐다.

3. 현재 상태

현재 주교동 230번지에는 1957년에 지어진 구관과 230-2번지에는 1969년 분양입주한 중앙아파트 신관이 위치하고 있다.
중앙산업 사원용 주택으로 지어졌다가 개별 호실별로 분양되었다.
1층부터 6층까지 모두 주거용도로 분양되었으며, 지하층 및 옥탑층이 있어 전체 7층 규모이다.

4. 화재와 변화

1970년대 한 화재로 인해 소방도로가 뚫리면서 한 개의 큰 필지였던 주교동 230번지가 세 개 필지로 나누어졌다. 230번지는 구관, 230-1번지에는 소방도로, 230-2번지는 신관 세 필지로 나누어졌다. 두 개 동 한 개 단지가 각각의 건물로 분리되었다. 그 후 230번지의 중앙아파트 구관동은 중앙 프라자라는 이름으로 근생 상가 건물화되었다. 230-2 번지 중앙아파트 신관동 역시 여전히 주거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5. 구조

중앙아파트(신관)는 기둥식 구조로, 편복도식 아파트 중 가장 초기의 형태로 알려져 있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청계 고가도로 복개 당시 준설토 및 자갈로 지어져 있다. 못이 박히지 않을 정도로 콘크리트의 강도가 높다고 한다. 수세식 변기 냉온수가 나오는 당대 신식구조로 지어져있으며 오늘날에는 개별 호실별로 리모델링되어 사용되고 있다.


[1] 중앙 건설 산업은 1957년 중앙아파트 구관 건축에 자신감을 얻고 2년뒤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서대문구 충정로에 개명아파트를 건설 분양했다. [2] 한국 최초 101장면 가람 기획 도서 내용에 따르면 당시 주민들은 "몇 백년을 이 집에서 살려고 이렇게 짓느냐, 누가 살건데 이렇게 짓느냐" 라고 말했다고 한다. [3] 한국 최초 101장면 가람 기획 도서 내용에 따르면 당시 중앙산업은 해당 건물을 지을 때 서독의 최신 건축 기술을 들여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