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 회순왕 주재견 | ← | 8대 주익거 | → | 9대 주상청 |
<colbgcolor=#bf1400><colcolor=#f9d537> 명 제8대 회왕
주익거 | 朱翊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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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없음 |
봉호 | 회왕(淮王) |
성 | 주(朱) |
휘 | 익거(翊鉅) |
부왕 | 회순왕(淮順王) 주재견(朱載堅) |
모비 | 불명 |
왕비 | 진비(陳妃) |
생몰 | 16세기 ~ 1616년 |
재위 | 명의 회왕 |
1598년 ~ 161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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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명나라의 황족으로 홍희제의 황자 회정왕(淮靖王) 주첨오(朱瞻墺)의 후손이자 회순왕(淮順王) 주재견(朱載堅)의 왕자, 남명의 비정통 황제 동무제의 부왕이다. 주재성(朱載墭)의 왕자 형공왕(荊恭王) 주익거와는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인이다.2. 생애
1598년 회왕직을 세습받아 즉위하는 과정 중 그는 여러 구설수에 시달렸다. 그가 회왕에 오르기 전에 기생 왕애(王愛)와 가깝게 지내다가 회왕에 즉위 후 그녀를 첩으로 받아들였으며 다른 사람 사이에서 본 서자 주상홍(朱常洪)을 양자로 삼게 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회왕세자이자 훗날의 주상청 및 주익거의 왕비였던 진비(陳妃)는 총애를 잃었고 주익거는 아예 그들을 폐위시켜 왕애의 양자인 주상홍을 세자로 삼으려 하였다.하지만 회왕국의 관리들이 황제 만력제에게 이러한 일을 고발하자 만력제는 주상홍에게 자결을 명하였다. 주상홍이 당숙뻘인 주익선(朱翊銂)과 공모해 왕궁의 옥책과 어보, 재물을 훔쳐서 아버지인 주익거의 정변에 적극 가담한 것이 반영된 것이다. 주익선은 황제의 명으로 무기한 금고형에 처해졌으며 변란의 주모자인 회왕 주익거는 감봉 4년에, 주상청을 회왕세자로 다시금 인정할 것을 끝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다만 그의 첩 왕애는 죽음을 면하였다.
주익거는 1616년 사망했으며 장남 주상청이 회왕직을 승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