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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9 18:19:0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수상



1. 개요2. 법적근거3. 연혁4. 역대 내각수상

1. 개요

1948년 9월부터 1972년 12월 사이에 존재한 북한의 정부수반, 사실상의 국가수반.

헌법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에서 선거되었다.

2. 법적근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제3장 최고주권기관
제2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57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다음의 임무를 가진다.
⑥ 최고인민회의 휴회 중 수상의 제의에 의한 상의 임면 및 이에 대한 다음번 최고인민회의의 승인의 요구.

제4장 국가중앙집행기관
제1절 내각
제125조 내각의 결정채택은 다수가결로 한다.
내각에서 채택된 결정은 수상 및 관계상이 서명하여 공표한다.
제58조 내각은 다음의 성원으로 구성한다.
① 수상
제59조 수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수석이다.
수상은 내각회의를 소집하며 지도한다.
부수상은 수상의 지도 밑에 있으며 수상이 유고할 때에는 부수상이 그를 대리한다.
부수상이 수상을 대리하는 경우에는 수상과 동등한 권한을 가진다.
제60조 내각은 자기 사업활동에 있어서 최고인민회의에 복종하며 그 휴회 중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앞에 책임을 진다.
제61조 수상, 부수상, 상은 최고인민회의 앞에 다음과 같은 선서를 한다.
<나는 조선인민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충실히 복무하며 각원으로서의 자기활동에 있어서 오직 전체 인민과 국가의 복리를 위하여 투쟁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과 법령을 엄중히 준수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주권과 민주주의적 자유를 보호하는 데 자기의 모든 력량과 기능을 다할 것을 선서한다.>
제62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내각 또는 상에게 질의할 수 있다.
질의를 받은 내각 또는 상은 최고인민회의가 규정한 내부절차에 의하여 해답을 주어야 한다.

3. 연혁

1948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1기 1차 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이 채택되면서 규정되었다. 9월 9일, 김일성이 초대 수상으로 추대되어 1972년에 직함이 폐지될 때까지 재임하였다.

조선대백과사전은 "사회주의나라들에서 내각수상은 국가주권의 최고행정적집행기관의 수위로서 최고인민대표제 주권기관의 매기 제1차회의에서 선거되였으며 행정, 경제, 사회문화, 외교 등 국가관리전반을 책임지고 통솔하였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소련은 각국 공산국가들에게 더 이상 서기장 직함을 쓰지 못하게 하고 당의 수장이 정부수반 직함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이에 따라 상당수 국가들의 서기장들이 직함을 제1서기로 고치고 수상에서 퇴임하거나 역으로 제1서기에서 퇴임하고 수상으로 옮겼지만 김일성은 2차례나 매우 강력한 하야 압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내각수상 직함을 겸직하였다.[1] 1966년 10월, 2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개편된 이후 당연히 총비서와 겸직하였다. 1960년대 이후에는 아예 내각수상을 정부수반을 넘어서 국가수반으로 호칭하는 이후에 존재한 정무원총리, 내각총리에 비해서는 완연한 실세 자리였다. 물론 김일성의 실권은 수상보다는 당과 군을 장악한 데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당시 정부 수반으로서의 수상의 의미도 결코 작지는 않았다. 1940년대 후반에 북한 언론에서 김일성을 '김일성 수상'이라고 호칭한 사례가 있을 정도이다. 당이 정부 위에 있는 공산주의식 정치에 익숙하지 않았던 초기 북한 주민들에게는 정부의 수반이라는 위치가 당의 수반보다 더 와닿았을 것이다.

1972년 12월 27일, 최고인민회의 5기 1차 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이 채택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총리에 대체되어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이후 1998년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에서 내각이 부활했을 때도 내각수상이 아니라 내각총리 직함을 사용했는데, 이는 수상=김일성이란 공식이 설립되어서 감히 수상 직함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4. 역대 내각수상

대수 성명 임기 비고
1 김일성 1948년 9월 9일 ~ 1957년 9월 18일 최고인민회의 1기 1차 회의에서 선출
2 1957년 9월 18일 ~ 1962년 10월 22일 최고인민회의 2기 1차 회의에서 재선
3 1962년 10월 22일 ~ 1967년 12월 14일 최고인민회의 3기 1차 회의에서 재선
4 1967년 12월 14일 ~ 1972년 12월 27일 최고인민회의 4기 1차 회의에서 재선, 국가주석으로 이동

[1] 1950년대 중후반 스탈린 격하 운동, 8월 종파 사건이 있던 시기에 수상 직을 김일에게 넘기는 것을 검토한 적이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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