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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3 17:29:08

제레미 툴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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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툴랄랑의 역임 직책
{{{#!folding ▼
AS 모나코 주장
에릭 아비달
(2013~2014)
제레미 툴랄랑
(2014~2016)
라다멜 팔카오
(2016~2019)
}}} ||
제레미 툴랄랑의 수상 이력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1200px-Logo_UNFP.svg.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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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前 축구선수
파일:Toulalan(16-17).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제레미 툴랄랑
Jérémy Toulalan
출생 1983년 9월 10일 ([age(1983-09-10)]세)
프랑스 낭트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 77kg
직업 축구선수 (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 은퇴)
소속 선수 FC 낭트 (1998~2001 / 유스)
FC 낭트 (2001~2006)
올랭피크 리옹 (2006~2011)
말라가 CF (2011~2013)
AS 모나코 (2013~2016)
FC 지롱댕 드 보르도 (2016~2018)
국가대표 36경기 ( 프랑스 / 2006~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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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2. 클럽 경력

2.1. FC 낭트

지역 축구 클럽 FC 낭트 유스 출신으로 2001-02 시즌 스타드 렌 FC와의 브레티니 더비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하였다. 2002-03 시즌과 2003-04 시즌 경기 출전 기회가 적었지만 2004-05 시즌에는 신체 능력이 뛰어난 미드필더로서의 입지를 확립하고, RC 스트라스부르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클럽은 강등 라인 직전의 17위에 그쳤지만 개인의 활약은 평가되고 리그앙 최우수 영플레이어와 리그앙 베스트 일레븐에 선출되었다.

2.2. 올랭피크 리옹

2004년 여름 리그앙 3연패의 올랭피크 리옹이 이적료 1,000만 유로를 제시하여 툴랄랑의 획득을 노렸으나 낭트는 거절했다. 2005-06 시즌 종료 후에는 마하마두 디아라 제레미 클레망을 동시에 잃은 리옹이 다시 툴랄랑에 제안을 내고 2006년 5월 19일에 이적료 750만 유로의 4년 계약으로 이적하였다. 낭트에서 등번호 17번을 착용했지만, 2003년의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사망한 카메룬 대표 마르크비비앙 푀의 번호였으므로 28번을 선택하였다. 개막 친정 팀 낭트 전에서 데뷔해 풀타임을 소화하였다.

2007-08 시즌에는 리그 최우수 선수상 후보에 있었지만 팀 동료 카림 벤제마가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2008년 여름에는 많은 클럽들이 툴랄랑 영입에 나섰고, 파트리크 비에라의 대역을 예상한 아스날 FC 파리 생제르맹 FC으로 이적한 클로드 마케렐레의 후계자를 찾고 있던 첼시 FC 등이 강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툴랄랑은 리옹에 잔류하길 원했고, 5월 7일에는 2013년까지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2010년 1월 13일, 리그컵 FC 메스전에서 이적 후 첫 골을 넣었다. 2010년 여름 장 알랭 붐송이 그리스의 파나티나이코스 FC로 이적했기 때문에 2010-11 시즌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고 주장을 맡았다.

2.3. 말라가 CF

2011년 6월 17일, 스페인의 말라가 CF에 약 1100만 유로의 4년 계약으로 이적하였다. 이적 후 주로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하였고, 2시즌동안 59경기 5골을 기록하였다.

2.4. AS 모나코

그러나 말라가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빠지자, 2013년 7월 6일, AS 모나코로 이적하였다.

2.5. FC 지롱댕 드 보르도

2016년 여름, 모나코를 떠나 FC 지롱댕 드 보르도에 합류하여 주장에 선임되었으나, 2018년 1월 18일, 조셀린 구르방네크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임하자 자신도 감독을 따라 운명을 같이하겠다며 보르도와 계약 해지를 하고 떠났다. 툴랄랑이 이런 선택을 한 이유로는 마우콩 시우바를 비롯한 브라질 일부 젊은 선수들의 구르방네크 감독의 훈련 지시 거부와 경질 이후 SNS에서의 조롱을 이유로 꼽고 있다. 마우콩은 결국 사과하고 징계를 받았는데 툴랄랑은 이런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보고 참을 수 없었고, 특히 마우콩은 남들의 말을 듣지 않고 훈련 때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선수단은 분열되었고, 툴랄랑은 부진한 성적이 감독의 잘못이 아니라 이들의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3. 국가대표 경력

2000년 첫 세대 대표되는 U-17 프랑스 대표에 소집되었다. 2006년에는 U-21 프랑스 대표로 UEFA U-21 유럽 선수권에 출전해 준결승에서 네덜란드에 패하였다.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출되었다. 2006년 8월 24일, 프랑스 A매치 에 첫 소집되어 UEFA 유로 2008 예선의 페로 제도와의 경기에 풀타임 출전해 데뷔하였다. 이후 유로 2008의 프랑스 대표팀과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랑스 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하지만 월드컵 당시 프랑스는 심각한 내부분열로 인해 역대 최악의 성적으로 전대회 준우승에서 조별리그 광탈의 굴욕을 겪으며 크나큰 상처를 받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를 참고바람.

4. 여담

전체적인 경기 스타일은 강한 피지컬과 활동량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스타일. 스피드가 느린 게 단점이지만, 체격이 다부진 편이라 몸싸움 및 공중볼 다툼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지 않다. 게다가 태클도 상당히 잘하는 편이다. 이런 스타일로 인해 카드 수집이 잦은 편이고 공격 능력이 수비형 미드필더인걸 감안해도 상당히 안 좋은게 흠. 프로 커리어 통산 599경기를 출전했는데 득점이 10골[1]도 안될 정도니 말 다했다.

리그앙에서 손꼽는 노안으로도 유명하다. 아르연 로번이 탈모로 고생하는 스타일이라면 툴랄랑은 급격한 새치로 인한 흰머리가 하얗게 센 스타일.

파일:external/idata.over-blog.com/toula.jpg
낭트 시절만 해도 미남은 아니지만 평범한 프랑스 청년의 모습이었으나

파일:external/www2.pictures.zimbio.com/Olympique+Lyonnais+v+Monaco+FC+Ligue+1+wkzFtc8KA6_l.jpg
리옹 시절(20대 중~후반)부터 약간 노안의 징후가 보이더니

파일:external/www3.pictures.zimbio.com/Leicester+City+v+Monaco+Pre+Season+Friendly+92tAludO5KCl.jpg
말라가, 모나코 시절(30대 초~중반)에는 이게 선수인지 코치인지 분간이 안 갈정도로 폭삭 삭았다.

상당히(?) 연륜있는 외모로 친근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반대로 성격은 상남자 스타일인데 정이 많아 의협심이 넘치고, 자신이 보기에 이건 정말 아니다 싶으면 할 말은 하는 성격이라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스타일이다. 또한 과거 복싱을 한 적이 있어 기본적으로 싸움 실력은 상당한 편이라 선수들이 툴랄랑 앞에서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프랑스 대표팀 내에서 벌어진 요앙 구르퀴프 왕따 사건에서 구르퀴프를 거의 유일하게 편들어줬던 사람이 툴랄랑임이 대표적인 예.[2] 성격 개판이였던 아넬카도 구르퀴프는 엄청 무시했지만 툴랄랑한테 개기지도 못했고 에브라도 구르퀴프랑 얘기할거면 차라리 툴랄랑하고 해라할정도로 툴랄랑을 무시하진 못했다.

파일:vlvk2ㅁㅊ.jpg
피파온라인 2에서 '토우란란'이라는 이름을 영어 그대로 읽은듯한 해괴망측한 이름으로 표기된 적이 있다.
[1] 무려 7골(…)이다. [2] 설령 구르퀴프 왕따 사건이 없었어도 프랑스는 조별리그 통과도 버거웠을것이다. 이미 선수단 선발부터가 개판이였는데 서로 사이가 안좋은 선수들은 둘 중 하나만 뽑거나 뽑지도 않았고 불화도 없고 활약 좋았던 선수들은 도메네크가 그냥 안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