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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5 00:37:28

정태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태륜
鄭泰侖, 鄭泰倫
<colbgcolor=#0047a0> 출생 1888년 3월 30일
경상도 단성현 도산면 장죽리
(현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장죽리)
사망 1923년 6월 29일 (향년 35세)
경상남도 산청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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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태륜은 1888년 3월 30일 경상도 단성현 도산면 장죽리(현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장죽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8일 김영숙(金永淑)·김상호(金相浩)· 권숙린·김선림(金善林)·김상문(金相文)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산청군에서 벌이기로 결의하했다. 그들은 <통고문>, <독립선언서>, <격문> 등을 여러 집 담벽에 부착하고,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기를 만들었다.

이후 3월 20일에 신등면 단계하 장터에서 김상준(金相峻) 등과 함께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고 군중 6~700명을 규합한 뒤 단성면 성내리 장터까지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튿날 3월 21일 오후 1시경 단성면 성내리 장터에 다시 모여 천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위하다가 체포되었다. 이에 군중은 주재소로 달려가 그의 석방을 요구했으나, 일제 헌병대와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인해 해산되었다.

이후 1919년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2년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과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 형이 확정되어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23년 6월 2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정태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2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