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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3 01:13:44

정신혁



1. 개요2. 생애3. 수훈4.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3대, 5대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2. 생애

1920년 4월 6일, 함경남도 원산부 철산동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외의 이력에 대해서는 대단히 알려진 것이 없는데 1977년, 3대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인 강장수가 사망한 이후 새로운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중앙선거위원이 되었으며,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83년 1월, 강량욱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6년 5월 조국전선 의장,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그러다가 최덕신이 월북하면서 그에게 중앙위원장 자리를 물려주었으나 최덕신이 8개월 만에 사망하자 1990년 1월, 5대 중앙위원장으로 재선출, 조선종교인협의회장도 맡았다. 최덕신이 중앙위원장으로 있던 동안은 제1부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남북천도교 교류 사업에 나섰다. 1990년 4월, 중앙선거위원이 되었으며 선거 결과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상설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92년 4월, 김일성 팔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93년 7월, 천도교청우당 6기 24중전회에서 류미영이 신임 중앙위원장에 선출되면서 중앙위원장에서 물러났고 1993년 12월 최고인민회의 9기 6차 회의에서 상설회의 의원에서 소환되었다. 이후 조평통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정두환과 함께 대남 외교 활동에 나섰다. 1989년 11월, 최덕신 장의위원, 1991년 5월, 허담 장의위원, 1991년 6월, 허정숙 장의위원, 1993년 1월, 리계백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5년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그러다가 2003년 12월 27일, 14시에 83세로 그간 알려진 정신혁이 아닌 정신영의 이름으로 사망했다. 북한은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와 조평통의 공동명의로 부고를 발표, "선생은 다년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의 중책을 지니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적극 기여하였다. 선생은 나라와 민족앞에 세운 공로로 하여 공화국의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과 조국통일상을 비롯한 많은 국가표창을 받았다. 정신영선생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었으며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기 위하여모든것을 다바쳐왔다. 정신영선생은 비록 서거하였으나 조국과 민족앞에 세운 그의 공적은 길이 남아있을것이다."라고 좋게 말해주었다. 전후임 중앙위원장 최덕신, 류미영과 함께 험한 꼴 안 보고 곱게 잘 죽은 셈이 되었다.

3. 수훈

4.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