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飛石
1911년 5월 21일 ~ 1991년 10월 19일 (향년 80세)
1. 소개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동 정씨.[1] 본명은 정서죽(鄭瑞竹)으로 비석은 스승 김동인이 지어준 이름이다.2. 활동
1936년 소설 '졸곡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고 다음해 소설 '성황당'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이후 순수소설작가로 출발해 인기를 끌었다. 일제강점기 말 소설 청춘의 윤리를 시작으로 해방 이후 대중문학으로 선회 1950-80년대까지 30년 간 주로 신문연재를 통해 최고의 대중작가의 위치를 점했었다. 1954년에 쓴 장편소설 ' 자유부인'은 한국 최초의 베스트셀러로 유명하며 1980년대에 출간한 '소설 손자병법'은 이후 '소설 XXXX' 붐의 시작을 알리며 300만부가 넘게 팔렸다. 또한 1979년 처음 출판한 삼국지로도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았는데, 국내에선 이문열 평역본이 등장하기 이전까진 최고 인기 판본이었다. 2011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학술대회가 열렸고, 2013년 한양대 김현주 교수가 그의 단편소설들을 모아 '정비석 문학선집'을 간행했다.소설 외에도 1940년대 초 금강산을 여행하고 돌아와 쓴 수필인 '산정 무한'은 그 특유의 화려한 문장으로 인해 수필 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수필은 1960년대 이후 국어 교과서에 실리며 대학 입시에 가장 많이 출제된 수필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한 때 7차 교육 과정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다.
1991년 10월 19일 새벽 5시에 서울시 용산구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27동 406호 자택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0세였다.
3. 친일 행각
일제강점기 말기였던 1940년 매일신보 기자로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친일 부역자로 전향한다. 한 예로 국민문학에 게재한 '국경'이라는 수필에는 내가 살고 싶은 곳은 내 나라 일본밖에,이 지구상의 단 한 곳의 낙원,조국 일본이 아니면 안된다라는 내용이 있다. 다음은 그가 쓴 대표적인 친일 글들이다.- 「반도민초에 일시동인」
- 「국경」
- 「군대생활」
- 「사격」
- 「희생적 정신의 구현자」
- 「산본(山本) 원수」[2]
- 「조국으로 돌아간다」
- 「개척 전사」
이와 같은 친일 행적으로 인해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13·17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었고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문학 분야에 포함되었다.
4. 여담
가족으로는 아내와 3남 4녀가 있다. 장남인 정천수는 중앙일보 이사를 했다.말년에는 CF에도 몇번 출연한 경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