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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7-06-30 20:35:39

전원책/칼럼


1. 개요

2004년 8월 3일 전원책 이 조선일보에 썼던 칼럼으로 친일파 진상규명을 비판했다. 친일파들은 그 이전의 어떤 행위와 상관없이 일제에 부역한 이들을 일컫는 것인데, 이를 정면으로 부인한 내용으로 많은 논란이 되었다. 추가적인 칼럼이 있으면 내용 추가바람.

2. 내용

누가 광장의 단두대에 죽은 이들을 세우는가


나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사건들과 인물들에 대해 솔직히 학문적 관심을 넘어선 관심이 없다.
그것들은 역사 속에 있는 것들이다. 동학(東學)운동이 혁명으로 정의되든 난(亂)으로 불리든 그것은 역사학자들의 몫일 뿐이다. 동학교주가 이제 다시 신원(伸寃)된다면 그건 왕조 시대에나 있었던 넌센스다. 마치 우리가 이성계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을 두고 반역이다 창업이다 하는 식으로 단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역사는 시각에 따라 양면(兩面)을 가진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다고 명백한 역사적 사실의 왜곡을 덮자는 것은 아니다. 저 장대한 고구려사가 중국의 변방사로 훼손되는 것은 시각의 차이가 아니라 조작(造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과거사를 정리한다고 한다. 나날이 살림살이는 어려워져 이제 좀 민생을 국정의 최우선순위에 놓을 때가 된 것도 같건만 아직은 아닌 모양이다. 과거사를 전부 규명해야만 사회 기강이 서고 미래가 있다는 말도 언뜻 들으면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규명되어야 할 과거사에 시각의 차이가 존재하는 사건이 있다면 그건 정부가 나서야 될 일은 아니다. 만약에 정권적 차원에서 역사를 해석한다면 그것은 또다른 오류를 낳을 뿐이다. 학문적 영역에서조차 신원되지 않는 역사적 사실들을 정부가 나서 단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이 일들이 갑자기 불거진 것은 친일파 청산문제부터였다. 16대 국회 막판에 통과되었던 ‘일제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나를 웃겼다. 친일파를 미워하지 않고 역사를 읽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조직폭력배로 전락할 수도 있는 김두한이란 인물을 종로의 독립군으로 만들어낸 드라마의 코드도 이런 친일에 대한 민족적 증오심 때문이다. 그러나 광복이 되고 60년이 다 되어 대부분의 관련자들이 죽고 없는 지금, 과거의 증언들과 남아 있는 서증(書證)들 만으로 특정인과 특정사건을 심판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데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문인력이 투입된 과학수사 끝에도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예를 우리는 종종 본다. 방금 일어난 범죄를 수사하는 것도 이렇게 어렵거늘 항차 60년이 지난 일들을 제대로 규명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더욱 당사자들은 어떤 소명조차도 할 수 없는 사자(死者)들이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변소할 수 없는 사자들을 단죄한다는 것인가. 진상규명이 목적이지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는 말에는 그저 기가 막힌다. 죽은 이들에 가해지는 명예형은 처벌이 아닌 것인가. 나는 조선왕조실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인 한명회에 대한 평가가 연산군조에 이르러 부관참시된 것으로 다하고 있다고 역사를 읽고 있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에게서 증언을 채취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 사람이 썼던 글 몇 편이나 몇 마디의 연설이 진실의 전부일 수는 없다. 민족을 위한 수많은 일을 했음에도 본의가 확인되지 않은 몇 개의 부역 흔적만으로, 정부가 나서서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몰아간다면 그것은 또하나의 범죄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한술 더 떠 시행도 해보지 않은 그 법을 다시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이왕 친일파를 찾아내고 그 진상을 규명한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여당은 아무런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둘러대지만 친여 매체 조차도 박정희 전대통령과 조선 동아 두 신문의 창업주를 조사하게 되었다고 하고 있으니 야당이 그 정치적 목적을 의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옥스포드 대학을 나오고 영국의 변호사가 되었던 간디도 이 법의 잣대라면 자칫 매국노로 될 판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일제와 군사독재 냉전이라는 과거의 유산을 극복하기 위해 과거사의 진상을 전부 규명하겠다고 일을 키우고 있다. 우리가 진정한 통합과 화해로 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청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그 과거사에는 100년도 넘은 동학운동과 일제 때의 친일행위는 물론 제주 4.3사건, 거창사건, 5.18 민주화운동, 노근리사건 그리고 삼청교육대와 각종 의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쉽게 말해 한국현대사를 전부 새로 쓰겠다는 것이다. 그 표현이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것이다. 마침내 우리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3백년이 넘는 소수 백인지배를 끝낸 뒤 설치했던 ‘진실위원회’를 가질 모양이다.
역사적 진실 규명과 화해는 독일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페루 등에서 추구됐고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아마 우리도 통일이 된다면 북한의 독재와 인민 착취 그리고 역사 왜곡을 파헤치기 위해서 진실위원회를 만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광복 후 반민 특위를 섣불리 해체하여 오늘날까지 친일 논란에 국력을 소모하는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우리가 찾을 ‘진실’이라는 것이 견해를 달리할 위험성이 있거나 시간의 경과로 인해 또다른 왜곡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미 역사의 장으로 들어간 사실(史實)은 학자들과 후손들의 평가에 맡길 일이다. 그것이 역사를 역사로 서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굳이 역사를 다시 쓰겠다고 한다. 다들 큰 관심이 없던 일들이 어느 날 신문의 앞 면에 넘치고 있다.
무엇이 역사를 다시 끌어내고 있는가. 학문의 장이 아닌 정치의 장으로 누가 역사를 끌어내는 것인가. 누가 광장의 단두대에 죽은 이들을 세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