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철호(張喆鎬) |
이명 | 장치욱(張致旭), 장철호(張哲浩), 장수만(張守萬) |
생몰 | 1892년 2월 6일 ~ 1945년 2월 2일 |
출생지 | 평안북도 의주군 광평면 하광리 |
사망지 | 미상 |
매장지 | 애국렬사릉 |
추서 | 건국훈장 독립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철호는 1892년 2월 6일 평안북도 의주군 광평면 하광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의 친구였다고 하며,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뒤 간도로 망명하여 광제청년단(廣濟靑年團),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 등에 참여했다고 한다. 1920년 초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 제2영 제5대장으로 임명되어 무장독립운동에 참가하여 활동하였으며, 동년 겨울 일본군이 간도 참변을 단행한 후 중국 동삼성 일대 독립운동단체의 정비를 위한 대표자회의에 박태열(朴泰烈)과 함께 광복군총영 대표로 참가하여 통군부(統軍府)를 결성했다.1924년 통군부가 통의부(統義府)로 개편되자 통의부의 헌병소대장과 5중대 2소대장을 겸임하여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1925년 정의부(正義府)가 조직되자 제2중대장에 임명되어 활동했다. 한편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1926년 10월 17일 15살의 김일성이 만주 화전면에서 '타도제국주의동맹'. 일명 'ㅌ.ㄷ'를 결성했을 때 김형직의 친구였던 장철호가 도와줬다고 한다. 그러나 학계는 이 주장의 신빙성이 매우 낮다고 간주하고 있다.
1928년 신민부, 정의부, 참의부 3부가 통합되어 국민부가 결성되자 제5중대장에 임명되었으며, 1929년 창설된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의 제1반 제2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유격대 제8소대장이 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부대는 통화현 일대의 교민 보호와 밀정 처단 등 일련의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으며, 애국렬사릉에 마련된 그의 묘비에 따르면 1945년 2월 2일에 사망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장철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