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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17:58

장창(후한)

張昶
(? ~ 206)
1. 개요2. 생애

1. 개요

후한 말의 서예가이자 위나라의 인물이며 자는 문서(文舒)로 장환의 아들, 장지, 장맹의 동생. 양주 회음군 사람.

2. 생애

장초를 잘 써 그 당시에 형 장지와 서로 비슷해 아성(亞聖)이라 불렸으며, 급사 황문시랑을 지냈다.

유송 양흔은 채고래능서인명이라는 책에서 당지 장지의 서예 작품이라고 불렀던 것들은 대부분 장창이 썼다고 해 그 평가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당나라의 장회관은 서단에서 역대 서예가를 신품, 묘품, 능품 등 세 등급으로 분류했는데, 그의 장초, 팔분, 초서 등은 형태를 정교하고 개성 넘치게 그려내는 기법이 뛰어난 것이라고 한 묘품에 분류했지만 예서는 사뮬의 형태를 꼭 빼닮게 해 틀림없이 그려냈다고 하는 능품에 나열했다.

장회관이 장지와 유사하지만 근골이나 자연스러운 자태는 따라가지 못했는데, 화려하고 착실한 미가 있다면 장지를 계승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당나라의 이사진도 장창의 글씨는 부드럽지만 골력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위관의 아들로 서예가인 위항은 장창에 대해 장지의 제자는 그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가를 했으며, 그의 작품으로는 화악묘비 등이 있다.

화악묘비에 205년에 글씨를 적어 그 뒷면에는 종요가 관문 동쪽을 진압하고 이 비 뒷면에 글씨를 이르기를 한나라 급사 황문시랑 회음 장부군 창은 자가 문서로 이 비문을 세웠다고 기록했으며, 비 머리에는 당시 사예교위 시중 동무정후 영천 종요 자는 원상을 쓰다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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