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진규(張振奎) |
생몰 | 1875년 8월 9일 ~ 1928년 1월 21일 |
출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 |
사망지 | 경상북도 영덕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진규는 1875년 8월 9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9일 창수동에서 독립만세시위가 발발한 뒤 권재형으로부터 참여 권유를 받고 곧바로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해 오후 4시경 창수 경찰주재소에 이르렀다. 그는 군중과 함께 주재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기물과 서류를 파괴했으며, 객사 및 주임순사 타카기 이사부로(高木伊三郞)의 숙소와 소유물, 조선인 순사보 송상구(宋相九), 권찬규(權燦奎)의 비품 등을 파괴했다. 또한 권총 3정과 대검 2개를 빼앗아 파기한 후 일본인 순사의 가구, 의류, 식기까지 완전히 파기하고 오후 7시경 자진 해산했다.그러나 이후 일제의 대대적인 검속 때 체포되었고,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및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영덕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28년 1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장진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6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