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원수(張元壽) |
생몰 | 1905년 5월 28일 ~ 1974년 3월 7일 |
출생지 | 경상북도 대구부 칠성정 |
사망지 | 대구광역시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원수는 1905년 5월 28일 경상북도 대구부 칠성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구상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7년 10월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 김봉구(金鳳九)·현철수(玄鐵洙)·정수광(鄭壽光) 등과 함께 항일민족운동의 방안으로서 사회과학을 연구하고 공산주의 활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신우동맹(新友同盟)에 참가하여 제2그룹 책임자 및 대구상업학교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이후 1928년 2월 회원 상술상(尙戌祥)의 집에서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신우동맹을 적우동맹(赤友同盟)으로 변경했으며, 재정부위원을 맡았다. 적우동맹은 회원을 각 그룹별로 나누어 사회과학을 연구하고 매월 1회 월례회(月例會) 등을 개최하면서 활동했지만 2달 만에 해산되었다.이후 장원수는 1928년 4월 말 다시 사회과학연구를 목적으로 한 일우동맹(一友同盟)을 조직하여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했으며, 일우동맹의 출판부위원을 맡았다. 또한 대구고등보통학교에서 동맹 휴학운동을 주동했다. 그러나 일우동맹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면서 그의 활동이 드러나고 말았고, 결국 1928년 11월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1930년 3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지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언도받았고, 대구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4년 3월 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장원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3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