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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6 06:46:49

장바티스트 세

파일:Jean-Baptiste_Say.jpg
풀네임 장바티스트 세
(Jean-Baptiste Say[1])
출생 1767년 1월 5일, 리옹
사망 1832년 11월 14일 (향년 65세), 파리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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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고전주의 경제학자. 세이의 법칙으로 유명하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으로는 1803년에서 1826년에 걸쳐 발행된 정치경제학론 (Traité d’économie politique)이 있다. 그는 이 책을 아담 스미스 국부론보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경제학을 소개하려는 의도로 썼다고 한다. 이 책은 유럽 및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으며, 그는 1815년에 프랑스의 첫 정치경제학[2] 교수가 되었다.

세이는 아담 스미스와는 달리 노동이 아닌 효용이 가치를 뒷받침한다고 여겼다. 이는 주관적인 효용으로, 경제학자들은 도덕이 아니라 보이는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하는 데이터라고 했다. 또 세이는 스미스보다 기업가들에 대해 좀 더 좋은 평가를 내렸다. 그의 책에서 소개된 세이의 법칙[3]은 경제학사에 오랜 기간 큰 영향을 끼쳤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2. 생애

리옹의 개신교 도매상 집안에서 태어났다. 19세에 산업혁명의 초기에 있던 영국으로 건너가 평생 동안 영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지롱드파에 들어가 프랑스 혁명을 열렬히 지지했다. 1803년에 정치경제학론 (Traité d’économie politique)을 썼으나, 나폴레옹 시절의 전시경제와 보호주의에 비판적인 자유주의적 면모 때문에 출판되지 못했고, 공직에서 퇴출당했다. 1815년 부르봉 왕정복고 시절 이후 유명해져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가 된다. 1832년에 파리에서 사망했다.
영국 유학파 출신으로 로베스피에르-나폴레옹 시기에 대놓고 정부를 비판하고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던 반골 인사.
[1] 영어 발음인 '세이'로 더 유명하다. [2] 당시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라 불렸다. [3] 혹자는 세이의 법칙의 원 저자가 세이가 아닌 제임스 밀(James Mill)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출판된 내용 중에서 밀이 처음 세이의 법칙과 비슷한 내용을 다룬 것은 1804년 The Literary Journal에서 어떤 책을 리뷰할 때였고, 이는 세이가 자신의 책을 출판한지 1년 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