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 300)
서진 시기의 인물이며 자는 원명(元明)으로 장로[1]의 후손.
예주 패국 상현 사람으로 검소하게 생활하고 집 안에 일이 있으면 묵묵하게 있으면서 조용히 처리하고 끝내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집안 사람들은 그 노력에 의한 것임을 아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또 10명의 자제들을 양육해 가르쳤으며, 물러나 조용히 거처하는 것을 즐기고 영화로움을 끝내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부귀한 위치에 있으면서 넘침이 없고 화려하고 번다한 것을 없앴으며, 300년 3월 25일에 사망했다.
그 해 11월 15일에는 289년 11월 15일에 먼저 사망한 아내와 합장했다.
그의 자식들은 꽤나 부귀한 지위에 오른 것으로 추정되는데, 금인자수를 착용하거나 책명, 사부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 있다. 금인자수는 제후들에게 분봉된 것이므로 그의 자제들 중에는 제후에 임명된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책명은 삼공, 제후왕 같은 최고위의 관리 또는 제후만이 수여받는 것이며, 사부는 군대의 통수권을 허락받은 관료만이 수령받은 것으로 진나라에서는 동진의 안제 때 유우에게 수여한 것이 유일한 사례인 것으로 볼 때 실제로 수여받았다기보다는 그 정도로 높은 직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1]
張老, 춘추시대 진(晉)의 대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