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장 7세 다르쿠르 Jean VII d'Harcou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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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369년 | |
프랑스 왕국 아르쿠르 | ||
사망 | 1452년 12월 18일 | |
프랑스 왕국 샤텔로 | ||
아버지 | 장 6세 다르쿠르 | |
어머니 | 카트린 드 부르봉 | |
형제자매 | 샤를, 루이, 블랑슈, 이자벨, 잔, 마리, 마르그리트 | |
아내 | 마리 달랑송 | |
자녀 | 장 8세, 마리, 잔 | |
직위 | 아르쿠르 백작, 오말레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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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에서 잉글랜드군에 맞섰다.2. 행적
1369년경 프랑스 왕국 아르쿠르에서 제3대 아르쿠르와 오말레 백작 장 6세 다르쿠르와 제2대 부르봉 공작 피에르 1세 드 부르봉과 발루아 백작 샤를의 딸 이자벨의 딸인 카트린 드 부르봉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본래 형 샤를 다르쿠르가 백작위를 계승할 예정이었지만, 1384년에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했기 때문에 그가 제4대 아르쿠르와 오말레 백작이 되었다.1390년 튀니지를 거점으로 삼고 지중해 각지를 약탈하는 무어인 해적을 토벌하기 위한 제노바 공화국의 십자군에 가담하고자 군대를 일으킨 부르봉 공작 루이 2세 드 부르봉에게 가세했으며, 타일부르 공방전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선보인 뒤 루이 2세에 의해 기사 작위를 받았다.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도 참가해 용맹을 드러냈으나 잉글랜드군에게 사로잡혔다.
1418년 잉글랜드군이 아르쿠르 백국과 오말레 백국을 장악했고, 아르쿠르 백작과 오말레 백작 칭호는 제13대 워릭 백작 리처드 뷰챔프와 엑서터 공작 토머스 보퍼트에게 주어졌다. 이후 프랑스 왕실로부터 노르망디 총사령관 칭호를 받고 매년 1,000파운드의 연금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에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다가 1452년 12월 18일 샤텔로에서 사망했고, 샤텔로의 코르들리에 수녀원에 안장되었다.
그는 1389년 3월 17일에 알랑송 백작 피에르 2세 달랑송의 딸 마리 달랑송과 결혼해 아들 장 8세 다르쿠르와 두 딸 마리, 잔을 낳았다. 장 8세 다르쿠르는 노르망디 방면 사령관을 맡았고, 프랑스 국왕 샤를 7세 휘하에 들어가 프랑스군 원수로서 잉글랜드군에 맞섰다. 그러나 1424년 베르뇌유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렇게 유일한 아들이 사라지면서, 그의 영지는 두 딸 마리와 잔에게 넘어갔고, 1476년 유일하게 살아있던 마리가 사망한 뒤 손자 르네 2세 드 로렌이 할머니의 영지를 그대로 인수하면서 아르쿠르 가문은 단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