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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7-08 22:39:31

잔나/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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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문 배경2. 장문 배경3. 심호흡4. 강철과 유리의 도시5. 구 배경
5.1. 장문 배경

1. 단문 배경

"변화의 바람을 두려워 마세요. 당신에겐 언제나 순풍일 겁니다."

고대의 신비로운 바람의 정령 잔나는 자운의 약자들을 보호해 왔다. 대부분 잔잔한 바람이나 맹렬한 폭풍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천상의 형상으로 나타나 핍박받는 이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먼 옛날부터 여러 문명의 흥망성쇠를 목격해 온 잔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등대가 되어 주고 있다.

2. 장문 배경

바람의 힘을 숭배하는 이들은 고대부터 존재해 왔다. 맑은 하늘을 기원하는 선원들부터 핍박받으며 변화의 바람을 갈망하는 이들까지, 인간들은 룬테라 대륙을 휩쓰는 폭풍과 바람에 자신의 소원을 실어 보냈다.

놀랍게도 바람은 가끔 기도에 응답하는 듯했다. 순풍이 불기 전 밝은 깃털의 파랑새가 나타나거나 폭풍이 닥치기 직전 휘파람 소리가 경고처럼 울려 퍼진다는 등 소문이 퍼질수록 새를 봤다는 목격담은 점점 자주 들려 왔다. 심지어 새가 여자의 모습으로 변하는 걸 봤다는 이들도 있었다. 증언에 따르면 뾰족한 귀와 물결치는 긴 머리카락을 한 이 수수께끼의 여인은 바다 위를 떠다니며 지팡이를 휘둘러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미신을 믿는 자들은 이 바람의 정령을 '잔나렘'으로 불렀다. 고대 슈리마어로 '수호신'을 뜻하는 이 단어는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김없이 나타나는 이 존재에 딱 어울리는 듯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잔나렘'은 '잔나'가 되었다.

잔나의 존재는 슈리마 대륙 전역에 알려졌다. 가장 열렬한 신봉자는 오쉬라 바자운의 뱃사람들이었다. 바다가 잔잔해야 도시의 항구로 무역선들이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조각상과 사당을 세워 잔나의 은총에 보답했다. 슈리마 제국이 도시 주변을 장악한 뒤로도 잔나를 향한 숭배 행위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슈리마 제국의 황제가 '그릇된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를 금지하자 잔나의 조각상은 모조리 파괴되었다. 대신 초월체 신성전사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 갔다.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몰래 잔나에게 기도를 올렸다. 제아무리 신성전사라 하더라도 폭풍으로부터 선박을 지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파랑새의 모양을 본뜬 목걸이를 하고 다녔다. 눈에 띄지 않게 잔나를 모시기 위한 그들 나름의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나는 도움을 청하는 자들에게 손을 뻗었다. 슈리마 대륙은 대변동을 맞이했지만, 잔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변하지 '않은' 것은 오직 '변화의 바람'뿐이었다.

위대했던 슈리마 제국이 멸망하자 남은 초월체들이 일으킨 전쟁과 혼돈으로 인해 신록으로 넘실거렸던 땅은 황폐화되었다. 하지만 잔나는 훗날 자운으로 불리게 될 그 도시를 무사히 지켜 냈다.

이후 수 세기가 흐르는 동안 잔나는 자운의 야망이 커져 가는 것을 보았다. 자운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무역이 활발한 항구 도시였지만, 이들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결국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협에 운하를 건설해 발로란 대륙과 슈리마 대륙을 둘러싼 바다를 하나로 연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막대한 인력과 자금, 시간이 운하 건설에 투입되었다. 잔나를 향한 믿음은 점차 사그라들었고 많은 자운 시민이 운하가 가져다줄 편리함을 열망했다.

하지만 운하 공사가 진행되면서 자운의 도시 지반 대부분이 크게 손상되었고, 결국 필트강 유역 전체가 서쪽 해수면 아래로 침하하고 말았다. 수천 명의 사람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발버둥 쳤다.

죽음에 직면한 가엾은 영혼들은 구원을 바라며 고대부터 자신들을 지켜 주었던 수호신의 이름을 외쳤다.

바로 잔나였다.

비록 자신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인간들이었지만, 잔나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한 잔나는 도시를 향해 거대한 돌풍을 날렸다. 공기의 장벽이 밀려드는 바닷물을 막아 내는 동안 시민들은 폐허가 된 집에서 빠져나와 살기 위해 도망쳤다. 동시에 바람이 맹렬한 기세로 불어와 화재로 인해 발생한 독성 연기를 날려 보냈다. 잔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잔나의 은총을 직접 목격하고 살아남은 많은 이들은 두 번 다시 자신들의 수호신을 잊지 않았다.

급속도로 성장한 필트오버와 많은 문제점을 지닌 채 현대화된 자운이 공존하는 오늘날까지도 잔나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파랑새 모양의 목걸이를 착용함으로써 바람의 힘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잔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약하고 선한 사람들을 지킨다. 모든 자운 시민들은 알고 있다. 잿빛 대기의 독성 구름 속에서 숨을 헐떡이거나, 잔혹한 화공 남작들의 폭력에 맞서거나, 예상치 못한 위협에 직면하더라도 잔나는 그들을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3. 심호흡

필트오버는 자운을 패배자들의 도시로 여길 뿐이다.

그러나 대놓고 그렇게 말할 자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굳은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자운 없이 필트오버가 어떻게 존재하겠냐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을 게 뻔하다. 자운의 성실한 노동자들! 그 생기 넘치는 시장들! 겉으로는 아닌 척, 뒤로는 너도나도 사재기하는 자운의 마법공학 용품들까지! 이런 이야기를 죽 늘어놓으며 자운은 필트오버에 없어서는 안 될 커다란 문화의 축이라고 입에 발린 소리를 늘어놓을 것이다.

물론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다.

필트오버에서는 자운을 그저 바보들이나 가는 곳으로 생각한다. 필트오버의 골든 타워에 들어 갈 수 없는 바보 같은 사람들 말이다.

바로 나 같은 사람들.

지난 몇 달간 오로지 빛을 다루는 일에만 골몰한 끝에 나는 홀로란 가문의 견습생 모집에 지원할 수 있었다. 기계 장치 설비에 관한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구해 열심히 공부했다. 읽고 또 읽으며 책의 모든 내용을 섭렵했다. 그러면서 손목이 부러졌거나 관절염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동성을 한층 개선한 교정 장치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오직 필트오버의 견습생이 되겠다는 일념 하에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 결과 한 단계 한 단계 선발 과정을 통과해 결국 최종 관문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마지막은 간략한 신원 조회 단계로 보스웰 홀로란과의 면접만 통과하면 이제 그토록 고대하던 필트오버에 입성할 수 있게 될 터였다.

선발 담당자들 역시 마지막 면접은 그저 형식상의 절차에 불과하다고 했다. 견습생 최종 선발을 축하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보스웰 홀로란은 방 안으로 들어서며 잿빛으로 얼룩덜룩한 내 옷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실소를 지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우린 하수구 쥐새끼를 뽑으려던 게 아닌데 말이지.”

그는 심지어 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
당연히 난, 자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명의 바보가 추가된 셈이다.

잿빛 거리는 다시금 나를 환영해 주었다. 평상시의 잿빛 대기는 그다지 짙게 깔려있지 않아서 깊게 숨을 들이쉬어도 피를 토해낼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모두가 ‘잿빛 천지’라고 부르는 그런 날이다. 숨을 쉴 때마다 질식할 것 같은 스모그. 가슴은 꽉 조이는 듯 답답하고 내 눈앞의 손조차 흐릿하게 보일 정도다.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지만 갈 곳이 없다. 잿빛 도시 전체가 나를 에워싼 채 점점 내 목을 조여오는 것만 같다.

이럴 때면 나는 잔나에게 기도를 한다.

자운의 모든 이들이 잔나의 존재를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만큼은 잔나의 독실한 신자였다.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던 날, 창밖을 서성이던 파랑새가 한 마리 있었노라며 나의 앞날이 평탄할 것임을 전해준 이가 바로 잔나라고 믿고 있었다. 어머니의 믿음은 아주 강했다.
물론 나에 대한 잔나의 예견은 맞지 않았다. 너무도 힘겨운 시간을 보냈으니까 말이다. 몇 해 전, 어머니는 지하동굴 채집 중에 발생한 사고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이후 나는 오직 어머니가 남긴 장치 몇 개에 의지한 채 일어서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친구를 잘 사귀는 재주도 없었고 못된 놈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기 일쑤였다. 또 내가 좋아하던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무엇이든 열심히 해보려 노력했고 필트오버로 가겠노라 다짐하며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어머니가 그토록 믿었던 잔나는 나를 잊은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어머니에게서 받은 펜던트만큼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어머니가 봤다는 파랑새가 새겨진 나무로 된 펜던트. 지금처럼 힘들고 어려운 때를 위해 갖고 있던 것이다.

벤치 같은 건 찾아볼 새도 없이 나는 그저 젖은 땅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셔츠 안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어 늘 지니고 다니던 펜던트를 꺼내 들었다. 나는 이내 잔나에게 말을 걸었다
.
물론 입 밖으로 크게 소리 내 말하지는 않았다. 굳이 약 기운에 취한 녀석이라고 손가락질받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아무튼 난 그렇게 잔나에게 말을 걸었다.

잔나에게 뭘 달라고 요구한 건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의 내 일상을 풀어놓았다. 오늘은 어땠는지, 어제는 무얼 했는지, 아무런 가치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 얼마나 두려웠는지,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이 잿빛 도시의 지하동굴 밑으로 말없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말이다. 때로는 숨이 탁 트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고 매일 두려움에 질려 울기 직전까지 겁을 내며 살아야 하는 삶을 벗어나고 싶은데, 사실 나보다 훨씬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이런 투정을 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 싫다는 것. 그래서 가끔은 그냥 지하동굴 아래로 빠져 엄마처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생각을 한다는 솔직한 심정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 보였다. 지하동굴에 빠지면 비록 내 폐는 물로 가득 차겠지만, 결국 모든 것은 죽음이라는 두 단어로 말끔히 해결될 테니 말이다. 그러면서 난, 잔나만큼은 괜찮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디에 있든, 잔나만은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 순간, 부드러운 바람결이 마치 내 뺨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잔잔한 바람은 가볍게 일렁이듯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 얼굴과 머리를 감싸듯 스쳤다. 하지만 순식간에 세찬 돌풍으로 변해버렸다. 입고 있던 내 외투 자락이 펄럭일 정도였다. 나는 마치 강력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 느껴졌다.

자운의 잿빛 공기는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강력한 소용돌이와 함께 금세 맑아졌다. 중간층에 있는 다른 행인들이 스모그가 걷히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바람이 멈췄다.

그리고 잿빛 하늘도 맑게 개었다.

휴우- 이제 숨을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공기의 느낌은 여느 때와는 전혀 달랐다. 살며시 조심스레 몰아 쉬는 그런 숨이 아니었다. 폐 안쪽 깊숙한 곳으로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가득 채워지는 듯 느껴졌다. 자운은 더 이상 잿빛 하늘에 가려져 있지 않았다. 필트오버 꼭대기를 비추던 강렬한 태양은 이제 자운으로 향하고 있었다.

필트오버 사람들은 언짢은 듯 유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눈에서 자운을 가려주던 그 잿빛 하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필트오버의 높이 솟은 수많은 교량과 난간 위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맑고 선명하게 자운의 모습이 보였다. 갑작스레 바뀐 현실에 필트오버 사람들은 당황한 듯했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하 빈민가 위에 살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몇몇은 노골적으로 쏘아보기도 했다.

바로 그때, 나는 한 사람과 다시 마주쳤다. 보스웰 홀로란이었다. 케이크 하나를 손에 든 그는 이번에도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도저히 못 봐주겠다는 역겨움의 표현인 것 같았다.

경멸하는 듯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 이번에는 나도 질세라 같이 쏘아보았다. 그러던 중 문득 어깨 위를 감싸는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괜찮아. 괜찮아.” 그녀가 말했다.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잔나였다.

내 어깨를 따뜻하게 어루만진 후 무릎을 꿇은 그녀는 나를 꼭 끌어안았다.

“다 괜찮을 거야.” 그녀가 말했다.

잔나의 머리칼이 내 어깨 위로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마치 오랜 비가 내리고 난 뒤의 공기 같은 익숙한 내음이 풍겨오는 듯했다.

“지금은 힘들 수도 있어.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괜찮아. 앞으로 네게 일어날 모든 일이 언제, 어떻게 왜 생겨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언젠가는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행복해질 거야.” 그녀가 말했다. 내 얼굴은 금세 따스한 온기와 눈물로 가득 채워졌다. 언제부터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자 마치 흐린 구름이 걷히듯 눈앞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난 후 그녀의 팔을 붙잡고 선 내게 그녀는 연신 ‘내가 여기 있으니 괜찮아. 앞으로는 나아질 거야.’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꼭 안아주었다.
얼마나 오래 그렇게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내 자운의 중간층과 필트오버 난간에서 있는 모두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이렇게 말했다. “저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저 너 자신의 행복만을 생각하렴. 날 위해 그렇게 해 줄 수 있지?”

뭔가 대답하려 했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고마워.”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눈물로 젖은 내 뺨에 입을 맞춘 후 마지막으로 짧은 포옹을 했다.

서둘러 일어선 그녀는 미끄러지듯 내 옆을 스쳐 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녀의 온전한 모습을, 나는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어깨를 감싸고 포옹을 하는 등 그녀가 나를 직접 만지지 않았더라면 결코 상상할 수도 없었을 천상의 모습이었다. 길고 뾰족한 모습의 귀, 땅에 닿지 않는 발, 바람 한 점 없는 곳에서도 흩날리는 머리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차갑게 느껴질 만큼 짙고 푸른 눈동자. 그녀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나는 그저 꿈만 같았다.

이후 잔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윙크를 하고선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야.”

이내 강력한 돌풍이 불어 닥쳤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강렬하게 밀려든 탓에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두 눈을 가려버렸다. 다시금 눈을 떴을 땐 그녀는 이미 떠난 후였다. 하지만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다. 이제 바람의 방향은 필트오버, 그리고 얼이 빠진 듯 우리를 바라보는 필트오버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다.

바람의 속도와 크기는 겉잡을 수 업이 커져갔다. 필트오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피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극한의 강도에 치달은 돌풍에 사람들의 옷은 찢겨 나갔고 머리칼은 금세 뽑혀나갈 듯 제멋대로 헝클어졌다. 보스웰 홀로란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람에 밀려 서 있던 난간에서 떨어진 그는 공포에 사로잡혀 비명을 질러댔다.

그는 마치 죽음의 터널로 곤두박질치는 듯 보였다. 이내 또 다른 돌풍이 그를 향해 불어 닥쳤다. 그러자 어찌 된 일인지 강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이번 돌풍은 마치 그에게 죽음의 길을 친절히 안내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보스웰 홀로란이 발악하는 꼴을 봤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래로 떨어지는 내내 쇳소리를 내며 있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좀처럼 들어주기 힘든 괴성이었다. 품위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퍼-얼럭! 퍼-얼럭! 그가 입고 있던 옷은 위를 향해 펄럭이며 물웅덩이로 떨어지기 직전까지 그의 얼굴을 세차게 강타했다.

“난……” 그가 입을 열자마자 바람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엉덩이부터 철퍼덕 빠져 버리자 제법 비싸 보이는 옷가지는 전부 엉망이 돼버렸다. “으악!” 그러고는 성난 아이처럼 물속에서 텀벙거리며 놀람과 고통, 분노가 섞인 비명을 질러댔다.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보려 노력했지만 그럴 때마다 미끄러져 주저앉을 뿐이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 보스웰 홀로란, 그는 이제 세상에 다시 없는 바보처럼 보였다.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4. 강철과 유리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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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구 배경

세상에는 학습을 통해 익힐 수 있는 마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어떤 이들은 대자연의 원초적 힘을 발견하고 그것의 도움으로 마법을 사용한다. 바람의 여신 잔나도 정확히 그런 종류의 마법사다.

잔나는 혼잡한 자운시의 길거리에서 고아로 성장했다. 거리의 삶은 그녀같이 어리고 예쁜 소녀에게는 무척 고달프고 위험한 것이었다. 때로는 꾀를 써서, 꾀가 통하지 않을 때에는 물건을 훔쳐가면서 그녀는 그렇게 하루하루 연명하듯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잔나는 마법의 힘을 이용해 자신을 보호하고, 출셋길도 열어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녀는 특히 공기의 정령 마법에 유독 끌렸는데 타고난 것처럼 불과 몇 달 안에 마법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말하자면 하룻밤 새 거리의 부랑자에서 공기 마법의 화신으로 거듭난 것이었다. 그녀는 곧 가르친 스승들의 힘을 뛰어넘는 실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잔나의 외모는 다른 세계의 존재 같은 분위기를 풍기게 되었다.

이제 잔나는 자신이 겪어왔던 세상의 부조리, 특히 자운의 광기와 싸우고자 한다. 그녀는 리그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기 시작했고, 얼마 안 있어 마법 실험의 규제를 대변하는 목소리이자 마법기계공학 발전의 아이콘이 되었다. 덕분에 잔나는 필트오버시와 그곳의 훌륭한 마법 기계공학사들과 일종의 동맹 전선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녀는 리그의 팬들에게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때때로 열리는 행사와 팬 미팅 등의 기념 이벤트에서 관심의 중심에 서게 된다. 하지만 잔나에게는 쉽사리 건드리기 힘든 위엄이 있고, 바람처럼 빠르게 마음이 바뀌기도 한다.

부디 잔나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지 말기를… 바람과도 같은 그녀는 순식간에 끔찍한 파괴의 여신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5.1. 장문 배경

룬테라의 돌풍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닌, 그러나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잔나. 그녀는 이제 폐허가 되어버린 자운을 지키는 바람의 정령이다. 그런 그녀를 두고 떠도는 이야기는 많다. 그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설은 바로 수호신으로서의 잔나. 악천후 속에서 폭풍우를 뚫고 나아가며 부디 순항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룬테라 선원들의 간구 속에서 등장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잔나가 남다른 애정으로 자운의 선원들을 보호한다고 믿었다. 잔나와 자운, 이 둘의 관계가 결코 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진 데에는 바로 이러한 사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잔나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모든 자운 사람들에게 있어 마치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 그녀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어김없이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미신 한 두 가지쯤 믿지 않는 룬테라 선원들은 거의 없다. 그것도 제법 특이하고 흔치 않은 것이 대부분. 그도 그럴 것이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어떤 선장은 갑판에 소금을 뿌려 놓으면 자신이 탄 배가 해변가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바다가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믿는다. 또 바다의 자비를 구하며 가장 먼저 잡은 고기는 그대로 놓아주는 사람도 있다. 모쪼록 온화한 바람과 고요한 바다, 맑은 하늘이 지속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기에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바람의 정령 잔나는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에서 탄생한 존재라고 전해진다.

사실 잔나도 시작부터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새에 불과했다. 출항 후 바람의 세기가 점점 강해질 즈음이면 선원들은 반짝이는 파랑새 한 마리를 발견하곤 했다. 또 돌풍이 몰아치기 전에는 경고음이 울리는 것처럼 휘파람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마치 누군가 곁에서 선원들을 지켜주는 것만 같았다. 이 같은 전조 현상에 대한 소문이 급속하게 퍼져 나가자 파랑새 목격담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파랑새가 여자의 형상으로 변했다는 소문과 함께 가느다란 귓불과 부드러운 머리칼을 가진 이 신비의 젊은 여성은 바다 위 높은 곳에서 자신의 마법 지팡이로 바람의 길을 안내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전해졌다.

이후 선원들은 죽은 바닷새의 뼈와 굴 껍데기로 허술하게나마 일종의 성전을 만들어 뱃머리 깊숙한 곳에 넣고 다니고는 했다. 더 형편이 좋은 배의 경우 호사스럽게 꾸민 성전을 선수상으로 만들어 돛대에 달고 자신들의 믿음을 과시하면서 바람의 정령이 순풍으로 보답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얼마 후 룬테라의 선원들은 이 바람의 정령에게 ‘잔나’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이는 고대 슈리마 언어로 ‘수호신’이라는 뜻이었다. 점점 더 많은 선원들이 잔나의 존재를 믿고 그녀의 자비를 구했고, 제물도 정성껏 준비해 올렸다. 그럴수록 잔나의 힘은 점점 더 강력해졌다. 초행길을 나서는 선원들의 여정을 늘 함께하는가 하면 암초에 걸린 배를 단숨에 끌어내기도 했다. 또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면 고향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선원들의 어깨를 따스한 바람으로 감싸곤 했다. 그런가 하면 해적이나 침입자 같은 불순한 의도를 지닌 이들은 돌풍과 폭풍우로 완전히 쓸어 버렸다.

잔나는 이런 자신의 역할에 매우 만족해했다.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응징이 필요한 사람에게 벌을 내리는 것도, 잔나는 룬테라의 바다를 지킬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했다.

발로란의 동쪽 바다와 서쪽 바다는 한 지협에 의해 둘로 갈려있었다. 그래서 서에서 동으로, 다시 동에서 서로 이동하려면 모든 배는 남쪽 대륙의 꼭짓점을 끼고 넘어가는 긴 형태의 극도로 위험한 바닷길을 지나야만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원은 제법 강한 순풍이 불어와 이 돌덩이로 가득한 해안가를 빨리 지나갈 수 있길 소망하며 잔나에게 제물을 바치곤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지협 연안의 상업 도시 행정관들은 남쪽 대륙 주변의 선박 감시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혹시 사고가 발생하진 않았는지 늘 주의 깊게 살펴봐야 했기 때문이다. 보통 선박 한 대가 항해를 시작하면 몇 달씩 이어지곤 했다. 그래서 도시 행정관들은 당대의 가장 혁신적인 과학자들을 기용해 최근 발견된 풍부한 화학 자원을 이용, 발로란의 주요 바다를 하나로 잇는 거대한 운하 건설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운하 건설에 대한 이야기는 선원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운하가 들어서면 교역 기회가 무수히 많이 생겨남은 물론, 위험천만한 바닷길도 한결 수월하고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게 될 터였다. 또 항해 시간도 대폭 줄어 변질되기 쉬운 제품의 운송도 가능해질 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절벽을 무사히 통과하는 데 있어 선원들은 더 이상 잔나의 도움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정성스러운 제사를 올릴 필요도, 거칠게 일렁이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파랑새의 출현을 주시할 필요도 없다. 선박의 안전과 속력은 이제 운하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에 좌우될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신적 존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될 터였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지난 수십 년간 운하 건설이 진전되면서 사람들이 잔나에게 자비를 구하는 횟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그녀를 위한 성전은 바닷새의 먹이로 전락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이 변해버리고 말았다. 물살이 세고 파도가 거칠어지는 겨울 날씨에도 잔나의 이름이 불리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잔나 스스로도 자신의 존재는 물론 마법의 힘이 약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는 마법 지팡이로 돌풍을 소환하려 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 시들한 바람뿐이었다. 또 바닷새로의 변신 마법을 쓰면 고작해야 몇 분 정도 나는 것에 그쳤다. 그러고는 이내 힘없이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불과 몇 년 전과 판이한 현실에 잔나는 너무나도 애통해했다. 안전한 항해를 바라며 그토록 간절하게 자신의 도움을 구했던 사람들. 그들의 변심을 잔나는 좀처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운하의 완공이 가까워질수록 잔나는 점점 더 무력해졌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잔나의 슬픔은 더욱 깊어갔다. 이제 그녀에겐 남은 건 시들시들 아무 힘없는 바람뿐이었다.

운하의 개통식은 모두가 기뻐하는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수천 개의 마법공학 장비들이 지협을 가로질러 배치되었다. 도시 행정관들은 물론 전 세계 여행자들이 참석하여 행사를 지켜보았다. 환한 웃음을 띤 그들의 얼굴에서 상당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바다의 수호신은 필요 없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든 것은 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개통식과 함께 마법공학 장비들이 작동되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녹아내린 바윗덩이에서 그을음이 피어올랐다. 쾅! 지협 사이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절벽에 금이 가고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르르 콰르르 맹렬히 퍼붓는 물소리와 함께 쉬익 쉬익 가스 새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바로 그때,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꺄악!’

행사장은 이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전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그 후 몇 년이 흐른 뒤에도 이 재앙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화학 폭탄의 불안정성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설계자들의 계산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그날의 폭발은 연쇄 지진을 일으켰고 지협의 지축을 뒤흔들었다. 도시 전체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인구의 절반은 동쪽과 서쪽의 충돌하는 해류 속에서 필사적인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순식간에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남은 이들은 애걸복걸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그 속에서 모두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 늘 함께하던 그 이름. 바닷속에서 위험을 만날 때면 여지없이 떠올리던 존재.

잔나였다.

갑작스레 밀려드는 구원 요청과 마주한 잔나. 그녀는 스스로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으로 무장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수많은 사람이 이미 목숨을 잃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유독성 화학 가스가 도심 거리 곳곳의 갈라진 틈에서 새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칫하면 수백 명의 사람이 독가스에 질식할 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잔나는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알고 잘 있었다. 역시 그녀였다.

잔나는 새어 나오는 가스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자욱하게 퍼져있는 매캐한 가스 냄새가 무력한 시민들의 영혼까지 소리 없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대운하의 탄생을 지켜보았을 뿐, 아무 죄 없는 무고한 시민에 불과했다. 마법 지팡이를 높이 든 잔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녀의 주위로 강한 바람이 소용돌이치듯 일었다. 돌풍의 위력이 얼마나 거셌던지 잔나의 이름을 소환했던 이들은 자신들마저 강풍에 휩싸여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지 두려움에 떨었다. 잔나의 지팡이는 점점 더 밝은 파란 빛을 띠었다. 지팡이를 꽝! 하고 바닥에 내려놓자 유독 가스는 이내 거대한 소용돌이와 함께 말끔히 사라졌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잔나의 도움을 간구했던 이들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들의 생명을 구해준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다시는, 다시는 잔나의 존재를 잊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슈욱! 도심 거리 사이로 일어난 강력한 바람과 함께 잔나는 또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이후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전해졌다. 아주 밝은 파랑새 한 마리가 철과 유리로 된 첨탑 위에 둥지를 틀고는 도시 전체를 관망하고 있다고 말이다.

자운이 재정비되고 그 위에는 빛의 도시 필트오버가 세워졌다. 이후에도 도움이 절실한 순간 나타났다 금세 사라지는 바람의 정령 잔나에 관한 이야기는 무수히 전해져 내려온다. 자운의 잿빛 대기가 짙어질 때면 사람들은 잔나가 나타나 단숨에 쓸어버리곤 이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했다. 또 화공 남작들의 행실이 극으로 치달아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할 때 갑자기 무시무시한 돌풍이 골목을 휩쓸어버리면 그 역시 잔나가 내민 도움의 손길이라고 생각했다.

잔나는 그저 신화 속에나 존재하는 인물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자운 사람들이 잔나를 통해서나마 작은 희망을 가져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잔나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무리들이 있다. 도시의 좁은 거리를 뚫고 달리는 바람 속에서, 각종 고철과 기계 장비로 만든 잔나의 성전을 바라보며 이들은 잔나의 존재를 느낀다. 또 바람결에 문이 덜컹거리고 줄에 널린 빨래가 휙 날아가는 순간이면 잔나가 다녀간 게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이들은 ‘진보의 날’이 되면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집 안에 있는 모든 문을 활짝 열어 잔나를 맞이한다. 그래서 그녀로 하여금 묵은 공기는 모두 날려버리고 상쾌한 공기를 들여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잔나를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파랑새가 자운 거리로 날아드는 것을 볼 때면 기분이 한껏 좋아진다. 잔나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또 과연 나타나기는 할 것인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 한 가지만은 모두가 인정한다. 나를 늘 보호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큰 힘이 된다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