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자의식 과잉(自意識過剩)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남의 시선 따위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경우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2. 학술적인 접근
정식 심리학 용어가 아니며, 일본의 서브컬쳐 계에서 은어의 형식으로서 자주 쓰이는 일본식 표현이다. Fenigstein(1975)의 자의식에 대한 정의를 이용해 학술적으로 표현하자면 '지나친 공적 자의식이 야기한 사회적 불안'으로 보면 된다. 그에 따르면 자의식은 사적 자의식, 공적 자의식, 사회적 불안의 세 하위 요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공적 자의식은 다른 사람에게 인식되는 사회적 대상으로서의 자기에 주목하는 성향으로, 인상형성, 개인의 외현적 행동 방식, 예의 등으로 구성되며 자기표현 등과 관련된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다.사회적 불안은 주로 공적 자의식의 결과로 생기는 것으로 대인관계 상황에서 불안해하고 적절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지나치게 높은 공적 자의식과 사회적 불안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인상을 긍정적으로 조절하려는 욕구를 증가시켜 대인관계에서 외현적으로는 적응적인 양상을 보일 수 있으나, 내적으로는 자신을 과도하게 억압하게 되어 부정적인 정서를 증가시키고 자존감에 역기능을 준다.[1]
자의식(self-conscious)이라는 단어 자체가 갖는 의미는 간단히 말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 갖게 되는 의식'이다. 이건 대개의 인간들이 자연히 갖게 되는 의식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대개 사회적이고 공적인 상황에서 내적으로 문제가 된다. 단적으로는 '내가 이러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 줄까?' 따위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인데, 학술용어로는 인상관리(impression management)가 과도하다고도 표현된다. 그 결과, 남들 보라고 겉으로만 치장하느라 바빠서 정작 자기 마음 속이 썩어들어가고 불행해지는 것도 모른다. 위에서 소개한 논문에서 조절, 역기능, 적응적 등으로 표현한 것도 같은 의미로, 심리학 논문에 흔히 등장하는 대표적인 '업계 은어' 들이다.
자의식에 관련된 감정 상태들을 심리학계에서는 자의식 정서(self-conscious emotion)라고 부른다. 학계에서 주로 꼽히는 것은 대개 4가지로서, 각각 당혹감(embarrassment), 수치심(shame), 죄책감(guilt), 자긍심(pride)이 그것이다.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이것이 사실상 전부 다 '사회적 상황', 즉 인간이 타인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2] 자의식 과잉에 빠진 사람들은 이런 자의식 정서들을 굳이 안 경험해도 될 상황(=사회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수시로 경험한다. 즉, 이들은 남들보다 당혹감, 수치심, 죄책감, 자긍심을 더 많이 느낀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까지 편의상 '과잉'이라는 단어를 적당히 가져다가 썼지만 실제 학계에서는 이 과잉이라는 단어에도 정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과잉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 자체가 어떤 '적절함'에 대한 기준이 있음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의식이 역기능적이게 된다'는 이상야릇한 은어를 쓰게 된다.
2.1. 자의식 개념에 대한 오해
흔히 자의식 과잉을 '안 해도 될 걱정을 한다', '지나치게 불안해한다', ' 피해망상이나 감시망상에 빠져 있다' 같은 식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이는 자의식이라는 개념에 비추어 보면 다소 부적합한 사례다. 자의식이 과잉되었다는 개념은 '누군가가 지금 나를 지켜보고 있을까 아닐까'의 여부를 의식적으로 처리한다기보다는 '만약 누군가가 나를 지켜본다면 그들은 나를 뭐라고 생각하게 될까', 즉 자신에 대한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남들보다 더 자주, 더 심하게 염려하는 것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 차이에서 많은 오해가 발생한다.개념적 이해를 위해, 아무도 없는 길에 휴지를 버리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물론 이 상황에서 '누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를 의식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며, 자의식이 건강하게 활성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휴지를 남몰래 버려 놓고 하루종일 남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다닌다면 그건 특이한 사례가 될 것이다. 정반대로, 자의식 과잉의 사례 중에는 남몰래 휴지를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이유로 하루종일 목에 힘을 주고 다녀서 남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무도 없을 때 남의 집 담을 넘는 범죄행동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물론 자의식이 일시적으로 과잉되기는 하지만, 이 상황에서 자의식은 '내가 담을 넘는 것이 누군가에게 적발되는 건 아닐까?', '혹시 CCTV가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지금 내 월담을 본다면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까?'라는 생각 때문에 과잉된다.
모든 자의식 과잉이 도덕윤리적 상황에만 한정하여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다 큰 어른이 방구석에서 혼자 전투기 장난감을 들고 어린애처럼 피슝피슝 소리를 내면서 신나게 논 뒤,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이불을 마구 걷어찬다고 생각해 보자. 도덕적인 잘잘못을 가리는 상황이 당연히 아니지만, 이 경우에도 여전히 자의식이 과도하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이처럼 자의식 과잉은 도덕성(morality)보다는 일종의 '가정된 사회성'의 차원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으며, 타인과의 어울림에 스스로를 적응시키는 과정 중의 시행착오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기서 초소형 몰래카메라가 내 월담을 다 지켜보고 있으면 어쩌지?', '누군가 나한테 휴지 버리지 않았느냐고 추궁하면 어쩌지?', '남들이 나를 고발하려고 들면 어쩌지?' 같은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자의식 과잉이라기보다는 개념적으로 다소 다른 상황이다. 이는 강박증 내지는 불안장애의 개념으로 다가서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자신이 남들보다 대단한 존재라고 믿는다거나, 자신의 영향력이 대단하다고 믿는다든가, 자신이 여기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될 것처럼 생각한다거나, 누군가가 자신을 음해하고 있다고 믿는다거나 하는 것 또한 일반적인 개념의 자의식 과잉과는 약간 다른 (어쩌면 더 심각한) 자아도취, 소위 말하는 나르시시즘에서 파생된 문제라고 보는 게 바람직하다.
[1]
경희대 석사학위논문, 자의식과 비합리적 신념이 커뮤니케이션 불안감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박소정,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2016 참조.
[2]
예컨대 당혹감은 친구들의
몰래카메라로 인해 경험할 수 있으며, 수치심은 남들 앞에서 바지가 벗겨졌을 때 느낄 수 있고, 죄책감은 타인에게 뭔가 잘못을 했을 때 밀려들게 되고, 자긍심은 반 친구들 앞에서 표창장을 받았을 때 친구들의 선망과 찬사를 기대하며 흐뭇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