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이십이사([ruby(二十二社, ruby=にじゅうにしゃ)])는 헤이안 시대 후반 11세기에 일본 조정이 무언가 신령에게 긴급히 고할 일이 생겼을 때 폐백(幣帛)[1]을 올리며 제례를 바치기로 정했던 신사이다. 일본 각지의 주요 신사들에게 동시에 고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주로 수도인 헤이안쿄와 그 주변 긴키 지역에 한정하여 영험하다 싶은 신사들을 골랐다. 처음에는 등급이 아니었지만 점차 해당 신사의 명예이자 등급으로 바뀌었다. 이십이사 내에서도 다시 삼등분하여 상칠사(上七社)·중칠사(中七社)·하팔사(下八社)로 등급을 매겼다.2.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이런 관습은 10세기에 나타났다. 포함된 신사는 숫자가 늘었다 줄었다 하다가 헤이안 시대 후기 고스자쿠 천황의 치세인 조랴쿠(長曆) 3년(1039)에 스물두 번째로 히에 사(日吉社)[2]가 추가되었고, 고시라카와 천황의 치세인 에이호(永保) 원년(1081)에 제도로 확립되었다. 이때부터 일본 조정은 꾸준히 이십이사에 폐백을 올렸지만, 무로마치 시대인 호토쿠(寶德) 원년(1449)을 마지막으로 관습이 사라졌다.그 뒤 에도 시대에도 일시적으로 상칠사에 봉폐(폐백을 바침)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잠깐의 일로 끝났을 뿐 관습으로 부활하지는 못했다. 이후로도 이십이사는 사격으로서 남아 있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근대사격제도 자체가 폐지된 현재에는 공식적인 분류는 아니다.
3. 목록
이십이사(二十二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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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는 『이십이사주식(二十二社註式)』 기재순 | |
상칠사 (上七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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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칠사 (中七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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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팔사 (下八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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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 폐백(幣帛)이란 높은 사람이나 신령에게 바치는 비단을 가리킨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종묘제례에서는 제사 때 신령들에게 비단을 올리는 절차를 지킨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비단 아닌 다른 옷감이나 그 외의 물품이더라도 신령에게 바치는 예물이라면 모두 '폐백'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물품이 아니라 그냥 돈을 올릴 경우에도 폐백이라고 인정할 정도.
[2]
현재의 일본
시가현
오츠시에 있는 히요시 대사(日吉大社)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