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47f89><colcolor=#ffffff> 이 순(李 珣) 자(字) 여온(汝溫) |
|
시조(始祖) | 이신우(李申佑) |
관향 | 원주(原州) |
출생 | 1557년( 명종 12) |
사망 | 1623년( 광해 15) |
국적 | 조선 |
관직 | 군자감(軍資監) |
배(配) | 영인(令人) 순천김씨(順天金氏) |
슬하 | 4남 2녀 |
[clearfix]
1. 개요
이름은 이순(李珣)이고 자(字)는 여온(汝溫)이다.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 이영화(李英華)의 현손(玄孫)이요, 증조할아버지(曾祖)는 통덕랑(通德郞) 이인건(李仁健)이며, 할아버지(祖)는 무공랑(務功郞) 이식(李植)이고, 아버지는(父)는 장사랑(將仕郞)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 이승렴(李承廉)이다.
2. 일생
아버지 이승렴(李承廉)과 어머니 양성이씨(陽城李氏) 충순위(忠順衛) 이한(李澣)의 따님사이에서 1557년(丁巳) 명종(明宗 12년)에 7남2여 중 7남으로 태어났다.이순(李珣)은 어려서부터 옛 책이나 서화(書畫)를 즐겨, 많이 모으며 재물(財物)보다는 의리(義理)를 귀하게 여겨 남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일을 처결(處決)함에 있어 막힘이 없었다.
또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언제나 원만(圓滿)하고 당당하며 힘이 셌다.
1578년(戊寅) 선조(宣祖 12)에 무과(武科)에 올라 벼슬에 나아갈 때 변론(辯論)이 능숙(能熟)하고 이론(理論)이 정연(整然)함에 모든 사람들이 심복(心服)하니 유능(有能)한 벼슬아치라고 일컬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임금은 의주(義州)로 피난(避難)하시고 나라 여러 고을이 왜적(倭敵)에 짓밟혀 민생(民生)이 도탄(塗炭)에 빠지니 선비로서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형(兄) 부장공(部將) 이황(李璜)과 더불어 근왕(勤王)의 의병(義兵)을 모아 올라 가다가 금산(錦山)에 이르러 왜적(倭敵)의 포위(包圍)를 받으니 이순(李珣)은 밤의 어둠을 틈타 분격(奮擊)하여 많은 적병(敵兵)을 참획(斬獲)하였다.
임금을 모시러 올라 가다가 도중에서 건재(健齎) 김천일(金千溢)과 만나 같이 강화(江華) 일대의 왜적(倭敵)을 처부수고 의주(義州)의 임금을 모시었다.
선무원종(宣武原從) 2등공신(二等功臣)에 기록(記錄)되고 조봉대부(朝奉大夫) 행군자감(行軍資監) 직장(直長)에 제수(除授)되었다.
3. 가족
배(配)는 영인(令人) 순천김씨(順天金氏) 창신교위부장(彰信校尉部將) 김영종(金永宗)의 따님으로 4남2여를 두었으니, 첫째 아드님은 선무랑(宣務郞) 도원찰방(桃源察訪) 이지정(李之禎)이며 둘째 아드님은 통덕랑(通德郞) 이지헌(李之獻)이고 셋째 아드님은 이유정(李綏禎)이고 넷째 아드님은 통덕랑(通德郞) 이유정(李而禎)이다,첫째 사위는 이응달(李應達)이며 둘째 사위는 조수한(曺壽漢)이다.
4. 추모
향리(鄕里)사람들이 해남(海南) 영산사(英山祠)에 배향(配享)하였다.해남현감(海南縣監) 김숙구(金叔九)가 쓴 찬록(撰錄)이 있다.
5. 참고문헌
원주이씨대동보(1991)원주이씨 강릉공파의 인물과 유산(비천당/김성태 저/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