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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7 18:30:56

이순신(로스트사가)

1. 설명2. 스토리3. 기본기4. 스킬
4.1. 기백4.2. 돌격거북선4.3. 돌격대4.4. 궁수진영
공식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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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여성

T...TS !!!

1. 설명

모티브는 두말할 것도 없는 충무공 이순신. 출시 당시에는 자체 스펙도 괜찮았는데 최초로 기본기로 회피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한때 자신의 몸을 바쳐 조국을 지킨 영웅의 이름에 온갖 육두문자가 붙어 로스트사가 채팅창에 난무하는 불상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채용하지 않고 가지고 있어도 꺼낼 일이 적은데, 왜냐하면 악세사리까지 출시된 마당에 멀쩡한 콤보를 걸기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 다들 콤보를 버리고 드랍위주 플레이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출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너프를 먹었다. 이순신으로 플레이하는 본캐 하사가 준장을 때려잡고 다녔을 정도였으니...

100레벨 칭호는 '성웅'.

6월 1일 패치로 디꾹의 충전속도가 감소했고 피격시 차는 게이지도 4에서 3으로 감소해서 성능이 크게 깎였다. 출시 당시 피격시 충전되는 게이지량이 6이었으므로 절반이나 감소한셈.그래도 계속 쓰인다. 일반,프리미엄,레어를 훑어도 얘만한건 없으니까.

2. 스토리

1590년 무렵부터, 일본이 조선을 침공해 온다는 불길한 소문이 파다했다. 나라를 걱정했던 이순신 장군은 조정의 극심한 당파싸움에 휘말려, 상관의 죄값을 대신 받고 백의종군을 하는 등 고난의 연속을 겪는다. 백의종군 끝에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우국충정으로 편치 않은 나날을 보내던 와중,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뛰어난 장수들을 최전선에 배치하려는 나라의 뜻, 비변사의 무신들을 불차채용한다는 결정. 그리해서 이순신 장군은 정읍현감 자리에 올라 고을을 다스렸다.

1591년 2월, 이순신 장군은 진도군수로 승진했고, 부임하기 전 가리포첨절제사, 이어서 다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초수된다. 이순신 장군은 부임하자마자 전쟁에 대비하여 각 진의 실태를 파악하고, 군대를 다시 육성하고 군량미를 확보하며 거북선을 개발하고 배를 건조하는 등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1592년 5월 26일, 좌수영에 일본군이 침략했다는 원군의 공문이 도착했다. 이순신은 휘하 병력을 비상소집해 검열하고, 방비를 갖추도록 지시하고는 소속 함대를 수영 앞바다에 전부 집결시킨다. 그러던 중 이순신은 원균의 지원 요청을 받는다. 당시의 원균은 전선과 무기들을 수장시키고, 수군 1만 명을 해산시키고, 육지로 피신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라에서 충청까지 이르는 해로의 목줄인 옥포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이순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수군을 해산시키고 무기들을 바다 속에 수장한 원균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옥포를 수비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6월 15일 새벽, 판옥선 스물 네척, 협선 열 다섯 척, 포작선 마흔여섯 척으로 구성된 좌수영 함대를 이끌고 원균의 경상 우수영 함대와 합류한다. 이순신이 지휘하는 연합함대는 옥포에 정박중이던 일본의 수군 함선 오십여 척을 발견하였고, 선봉장이 돌격을 감행해 맹렬히 화포사격을 퍼붓자 기습당한 일본 수군은 혼비백산해 도망치기 바빴다. 이순신 장군은 전열을 갖추지 못한 일본 수군의 퇴로를 봉쇄하고, 총통과 화살로 무차별 공격을 퍼부으며 선단을 해안선 쪽으로 압박하였다.

그 결과 일본 수군들은 산 속으로 도주하기에 이른다. 7월 8일 이순신은 판옥선 사십여 척과 함께 거제를 출발하여 노량에서 원균과 합류해, 사천 선창에 있는 일본군의 정보를 물어 사천으로 추격에 나선다. 일본군은 상륙하고는 산 위에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순신은 단병접전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계책을 사용했는데, 일본군이 배에 승선하여 함대를 쫓아오게 만든 후 바다에서 뱃머리를 돌려 맹렬히 화포사격을 퍼부었다. 특히 선두에 거북선을 앞세웠다. 돌격장 이언량, 이기남이 돌격하며 일본 수군 사이를 헤집고 다녔고, 판옥선들이 후미에서 화포를 퍼부었다.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이순신의 왼쪽 어깨에 총탄이 박혔으나, 고통을 참아낸 이순신은 의연한 모습으로 전투가 끝나기까지 더 우렁찬 목소리로 전장을 지휘했다.

7월 7일 저녁, 이순신은 목동 김천손에게 일본의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함대 74척이 견내량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접한다. 이는 일본군의 주력 함대로써 격파하지 않는다면 불리한 정황이 더욱 불리해질 것이 불보듯 뻔했다. 따라서 이순신의 48척의 전선과 원균의 함선 7척을 합쳐 55척의 전력으로 출진하였다. 견내량에는 암초가 많아서 주력선인 판옥선이 운신하기에 좁은 해협이었다.

반면 한산도는 거제도와 통영의 사이에 있어 사방으로 헤엄쳐 나갈 길도 없고, 한산도는 무인도였다. 이순신은 한산도 앞바다로 일본 함대를 유인해 격멸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리하여 적을 유인한 대여섯 척의 함대를 견내량으로 보내 일본군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였고, 그들이 한산도 앞바다에 다다르자 유인 중이던 함대가 180도로 선회하면서 총포를 쏘아 대었고, 대기하고 있던 본대가 적선을 포위하며 온갖 총포를 적선에 퍼부었다. 그들은 당황하며 우왕좌왕하였고, 반 이상의 적선이 불타거나 파괴되었다. 후방에 있었던 여섯 척의 배만이 겨우 살아남아 퇴각하였다.

8월 8일, 이순신은 일본군이 김해와 양산 등으로 도주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이에 적의 본거지가 된 부산을 직접 공격하려는 계속을 세웠다. 8월 24일에 4차 출진에 나섰다. 부산으로 향하는 길목인 화준구미에서 큰 배 5척, 다대포 앞 바다에서 큰 배 8척, 서평보 앞바다에서 큰 배 9척, 절영도에서 큰 배 2척을 만나 전부 바닷속으로 수장시킨다. 이윽고 이순신이 부산 앞바다에 이르자 적선 400여 척의 모습이 보였다. 포격을 개시하라는 우렁찬 고함과 신호연을 효시로 포격이 시작되었다. 몇 번의 패전으로 사기가 꺾인 일본 수군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주해 버린다. 그리하여 적선 100척을 파괴할 수 있었다. 이틀 동안 전투를 벌였으며, 모두 부수면 일본군이 돌아갈 방법이 없으므로 일부만 남겨 두고 후일을 도모하기로 하였다.

아군은 별다른 피해가 없었지만, 이순신이 신임하던 녹도 만호 정운은 전사하고 말았다. 대승을 했지만 아끼는 부하를 잃어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순신이었다. 1593년 2월 10일, 웅천현 웅포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은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는 육지에 성을 쌓고 버티는 전술로 방향을 틀었다. 지리한 공방전 양상으로 전투가 전개되었고, 소탕하기 위한 전투는 3월까지 계속되었다. 이순신은 7월, 한산도로 좌수영을 옮겨 전열을 정비하고 돌산도에 피난민들을 위한 터전을 개간하였다.

8월 15일 이순신은 삼도 수군 통제사에 임명된다. 이순신은 견내량에 방어선을 설정하였고 일본 수군은 거제도의 영등포와 제포 사이를 방어선으로 설정해 서로 대치하였다. 전세가 교착화되고 강화 회담은 지리멸렬했다. 전쟁은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근과 전염병이 군대를 괴롭혔고, 가뜩이나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역병이 겹치니 전장에서보다 더 많은 수천 명의 장졸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회담이 진행되면서 전선이 교착화되자,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적극적으로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순신은 부산으로 출정하였고, 김응서의 63척과 부산 앞바다에서 무력 시위를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은 소규모 부대였고, 저항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날이 저물고 절영도로 후퇴했는데, 이중 첩자인 요시라가 찾아와 가토가 조만간 부산 앞바다로 싸우러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러나 위험 부담이 크게 때문에, 이순신과 김응서는 회항을 하기로 결정한다. 회항을 하던 도중 가덕도에 정박을 했는데, 일본군이 기습하여 병사들을 죽이고 5명을 포로로 잡아가 버린다. 가덕의 성에 포화를 퍼부었고 포로들을 전부 돌려받았다. 이순신은 회항하던 도중 고니시 유키나가라는 적장이 이끄는 일본 수군과 맞닥뜨린다. 그러나 이미 이순신의 명성이 널리 알려져있었고, 이를 두려워한 적장은 진군하지 않겠다고 이순신에게 전언을 보냈다. 이순신의 함대로 상대하기엔 상대의 전선이 많았으며 진이 잘 짜여있어 그를 보내주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이순신은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투옥되었다. 사형을 당할 처지였으나, 우의정 정탁의 상소로 사형을 면하고 도원수 권율의 밑에서 백의 종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순신은 본진을 찾아가는 길에 아산 본가에 잠시 머무르며 몸을 추스렀다. 이순신의 석방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올라오던 이순신의 어머니는 도중에 별세하고 말았다. 뒤늦게 임종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매우 슬퍼하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그러나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아군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조선 수군의 300여 척 전함이 사라지는 등 수군 대부분이 증발해 버렸다. 이에 조정에서는 다시 이순신을 수군통제사로 임명했으나, 대부분 전선이 소실되고 남해의 제해권은 일본에 넘어가버린 최악의 상황이 되어 버린 뒤였다. 조정에서는 수군을 해산하고 육군으로 편입하는 건 어떠냐는 장계가 내려왔다. 그러나 이순신은 싸우기로 결심하고 장계를 올린다.

'지금 신에게 아직 열두 척 전선이 있사옵니다. 전선이 비록 적으나, 미천한 신이 죽지 않았으므로 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스토리가 이 문서의 절반이다.

3. 기본기

4. 스킬

4.1. 기백

기백을 주변으로 발산하여 상대를 공격. 충격파를 한번 일으킨후 D를 2번 누르면 작은 충격파를 날리고, 이어서 D를 누르면 강력한 충격파 한 방을 날린다. 피격 도중에도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반격기 및 탈출기로 사용하기 좋다. 쓰러진 상태에서는 사용 불가능. 공중 사용은 가능하다. 모션은 A D꾹과 동일하며 그 다음은 똑같다. 땅을 지르밟는 모션과 공중 사용 시 칼을 꽂는 모션은 가드 가능하지만, 그 이후의 전방으로 날리는 충격파들은 가드파괴 판정을 가지고 있다.

4.2. 돌격거북선

일정 시간 동안 자동으로 화포를 발사하는 거북선을 지휘한다. 방향키로 움직일 수 있고 A키로 상승, S키로 하강한다. 조준점은 없지만 거북선의 좌, 우현에 각각 3개씩 위치한 포에서 매우 짧은 사거리를 가진 화포를 발사하기 때문에 거북선 아래쪽이 사정권이라 생각하면 된다. 한 발만 쏘는 것도 아니고 한 번에 여섯 발을 쏘기 때문에 공중 폭격 수준이다. 좁은 범위 내에서 많은 인원이 전투 중일 때 만약 자기 팀원이 수세에 몰려 있다면, 이 스킬을 써서 도망칠 기회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꼭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인원을 분산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 본격 아군 조종하는 스킬 인원수가 많은 데스매치에서 사용한다면 학살극이 벌어진다(...). 한 번 당해보면 거북선의 위엄을 깨닫게 된다.

4.3. 돌격대

일정 시간 동안 돌아다니며 상대를 공격하고 아군의 이동 속도와 공격력 증가 버프를 걸어주는 수군 4명(근거리 2명, 원거리 2명)을 소환한다. 이들은 대부분 방어할 수 있는 공격을 하지만, 근거리 수군은 가끔씩 방어파괴 공격을 한다. 수군은 약 5초 간 돌아다니다 사라지며, 약 10.5초 간 버프 효과는 지속된다. 넘어지면 모든 수군은 사라지나, 버프는 사라지지 않는다.
몬던에서 상당히 좋다.

4.4. 궁수진영

자신의 전방에 수군과 함께 불화살을 발사한다. 조준점은 방향키로 조종이 가능하며, 자동으로 전진이동함. 파워스톤에서 쓸만한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