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8:22:32

이비차 바스티치

FK 아우스트리아 빈
F.K. Austria Wien
파일:Vastic_Profile.jpg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이비차 바스티치
Ivica Vastić
출생 1969년 9월 29일 ([age(1969-09-29)]세)
유고슬라비아SFR 크로아티아SR 스플리트
국적
[[오스트리아|]][[틀:국기|]][[틀:국기|]]
|
[[크로아티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
직업 축구선수( 공격형 미드필더[1]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NK GOŠK Kaštel Gomilica (~1989 / 유스)
RNK 스플리트 (1989~1991)
피르스트 비에나 FC (1991~1992)
SKN 장크트푈텐 (1992~1993)
아드미라 바커 뫼들링 (1993)
MSV 뒤스부르크 (1994)
SK 슈투름 그라츠 (1994~2002)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2002~2003)
FK 아우스트리아 빈 (2003~2005)
LASK 린츠 (2005~2009)
지도자 FC 바이트호펜/입스 (2009~2010)
FK 아우스트리아 빈 아마추어 (2010~2011)
FK 아우스트리아 빈 (2011~2012)
SV 가플렌츠 (2012~2013 / 수석코치)
SV 가플렌츠 (2013)
SV 마테르스부르크 (2013~2017)
FK 아우스트리아 빈 U-16 (2018~2020)
FK 아우스트리아 빈 U-18 (2020~ )
국가대표 50경기 14골( 오스트리아 / 1996~2008)

1. 개요2. 클럽 경력
2.1. SK 슈투름 그라츠2.2. 1년간의 일본 생활, 그리고 다시 오스트리아로 컴백
3. 국가대표 경력4. 지도자 경력5. 수상 경력
5.1. 선수
5.1.1. 클럽5.1.2. 개인
5.2. 감독

[clearfix]

1. 개요

파일:Vastic_Sturm_1.jpg

오스트리아의 前 축구선수이자 現 축구감독.

현재는 FK 아우스트리아 빈 U-18 감독을 맡고 있다.

2. 클럽 경력

바스티치는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로 귀화한 선수로, 크로아티아 1.HNL의 RNK 스플리트에서 프로 데뷔를 한 그는 1991년에 오스트리아로 이주하여 피르스트 비에나와 계약했다. 그 후 그는 SKN 장크트푈텐 아드미라 바커 뫼들링 같은 오스트리아 클럽에서도 뛰었고 독일 분데스리가 MSV 뒤스부르크에서 하프 시즌을 보냈으나 그곳에서 그는 10경기에 출전 무득점에 그쳤다.

2.1. SK 슈투름 그라츠

그는 오스트리아로 복귀하여 SK 슈투름 그라츠와 계약하게 되는데 축구인생의 반환점이 된 시기가 바로 이때부터였다. 그는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약 8년동안 슈투름 그라츠에서 활동하면서 팀이 1998년과 1999년에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를 2회 연속 우승하도록 도왔고, 1996년, 1997년, 1999년에 이뤄낸 오스트리아 컵 우승을 도왔다. 클럽과 함께 1998-99 및 1999-00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 본선무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라츠에서 바스티치는 8년간 250경기 125골을 득점하면서 5년간의 무명생활을 청산하고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남과 동시에 이때부터 국가대표에도 모습을 자주 드러내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다.

2.2. 1년간의 일본 생활, 그리고 다시 오스트리아로 컴백

성공적인 그라츠에서의 8년을 보내고 그의 행선지는 의외로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였다. 1년간 활약한 뒤 그는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FK 아우스트리아 빈에서 두 시즌을 보낸 후 2005년 여름 LASK 린츠에 합류했다.

그는 36살 노장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에스테 리가에서 여전히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에스테 리가에서 62경기에 출전하여 42골을 기록하며 2년 연속 리그 득점왕으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2007년 LASK의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승격을 도운 후 2007-08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시즌에서 6위를 차지했으며 본인도 32경기에 출전하여 13골을 넣어 리그에서 클럽의 최고 득점자로 시즌을 마쳤고 오스트리아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하며 클라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2008-09시즌이 끝나고 2009년 5월 18일, 바스티치는 불혹의 나이에 은퇴를 발표했고 2009년 6월 30일에 정식으로 프로무대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Vastic_National.jpg

바스티치는 그라츠에서 날라다니던 1996년에 오스트리아로 귀화하면서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했고 이후 대표팀에서 뛰기 시작했다.

그의 첫 메이저대회는 1998 FIFA 월드컵이었으며 팀의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한다. 그는 칠레과의 2차전에서 막판 동점골을 기록하며 1:1 무승부를 만들었고 귀중한 승점 1점을 선사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팀은 이탈리아에게 패하며 2무 1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후 2005년까지 대표팀에 종종 소집되다가 2부리그에서 활약하던 2005년 이후부터는 대표팀에 소집되지 않으면서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나 싶었으나...

2007-08시즌 1부리그에서 노장의 파워를 보여준 덕분에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UEFA 유로 2008 본선을 앞두고 최종명단에 깜짝발탁이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39살이었다. 본인의 2번째이자 사실상 마지막 메이저대회가 될 대회에서 그는 주전으로 나서기 보다는 조커로 나설 예정이었고 본선이 시작되고 예상대로 그는 서브 명단에서 출전대기를 했다.

그의 조국이었던 크로아티아와의 1차전 경기, 바스티치는 후반 15분 교체출전했지만 흐름을 바꾸기는 어려웠고 팀은 0:1로 패한다.

2차전 폴란드전에서 그는 후반 19분에 안드레아스 이반시츠 대신 교체투입되며 이번 대회 2번째 출전과 동시에 본인의 50번째 국가대표 출전을 기록한다. 0:1로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시간, 팀은 페널티킥을 얻어내고 키커는 그가 나서게 된다. 몹시 떨리는 상황이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답게 침착한 마무리로 성공시키며 극적인 무승부를 만들며 승점 1점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공교롭게도 본인이 기록했던 국제 메이저대회 모두 추가시간에 터진 동점골이었다. 또한 그는 역대 유럽선수권대회 최고령 득점자으로 기록됐다.

탈락 위기를 간신히 모면한 오스트리아는 하필이면 마지막 경기 상대가 전차군단 독일이었고 결국 전력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하면서 스위스와 함께 개최국임에도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이 날 바스티치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고 2차전 폴란드전이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였다. 그래도 마지막 국대 경기에서 팀을 살리는 귀중한 골을 성공시켰다는게 그나마 그에게는 위안이었다.

대회 종료 후 그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4. 지도자 경력

2010년 1월 오스트리아 레기오날리가의 FC 바이트호펜/입스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바스티치는 코칭 경력을 아주 잘 시작하여 2009/10년에 레기오날리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 여름 FK 아우스트리아 빈 아마추어의 감독으로 옮겼고 2011년 12월에 1군 감독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부진한 성적으로 2012년 5월 21일 경질되었고, 5월 말 계약이 만료되면서 재계약에 실패한다.

이후 2013년 12월에 SV 마테르스부르크의 지휘봉을 잡게 된다. 계약기간은 잔여시즌 종료까지이며 2년 연장계약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이후 완전계약을 채결했고 2014-15시즌 1부리그 승격을 일궈냈다. 그리고 2016년 4월 23일, 그는 친정팀 아우스트리아 빈을 만나 9:0으로 박살나면서 1부리그의 전력을 실감하기도 했다.

2019년부터는 다시 아우스트리아 빈으로 돌아와 U-16 감독을 맡았고 1년뒤 U-18 감독 자리로 승격된 후 현재까지 팀을 맡고 있다.

5. 수상 경력

5.1. 선수

5.1.1. 클럽

5.1.2. 개인

5.2. 감독



[1] 스트라이커도 소화가능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