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fix]
1. 개요
육경(六卿)이란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정치·군사 제도로 진문공이 진군을 상, 하 이군에서 중, 상, 하 삼군으로 증설한 데에서 시작된다. 각 군에는 장과 좌, 즉 대장과 보좌가 있었고, 이들은 모두 경(卿)이었다. 중군장, 중군좌, 상군장, 상군좌, 하군장, 하군좌 순으로 지위가 높았다. 중군장을 원수, 집정이라고도 하며 중군장이 타국의 재상 역할을 했다. 항상 삼군 육경 체제였던 것은 아니나 경의 수와 관계없이 제도의 원리는 일정했다.헌공 ~ 문공 시기 일어난 계승 분쟁 이후 진나라는 국군의 대를 이을 태자 외에 다른 아들은 외국으로 보내 일을 하게 했다. 이로 인해 공실이 점점 약해져 육경이 권력을 장악했으며 결국 조, 위, 한 세 가문이 곡옥, 강을 제외한 모든 땅을 차지하고 제후로 자립한다.
2. 역사
진양공 대에 신상군, 신하군을 증설하여 10경이 되었다가 곧 육경으로 돌아온다. 진경공 대에 신중군, 신상군, 신하군을 증설하여 6군 12경이 되었다가 신군으로 병합해 4군 8경이 되었다. 그 뒤에 진도공이 삼군 제도로 복귀했다.진평공 대부터[1] 육경은 조趙씨, 한韓씨, 위魏씨, 지智씨, 범范씨, 중항中行씨가 독점했으며 육경이란 말은 이 여섯 가문을 말하기도 한다. 진정공 대에 범씨와 중항씨가 축출되어 사경만이 남았고 마지막으로 남은 지씨가 조씨, 위씨, 한씨한테 망하면서 전국시대로 접어든다.
3. 역대 중군장
진(晉)의 정경(正卿)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초대 극곡 |
2대 선진 |
3대 선저거 |
4대 호야고 |
5대 조선자 조돈 |
6대 극성자 극결 |
7대 중항환자 순림보 |
8대 범무자 사회 |
|
9대 극헌자 극극 |
10대 난무자 난서 |
11대 한헌자 한궐 |
12대 지무자 순앵 |
|
13대 중항헌자 순언 |
14대 범선자 사개 |
15대 조문자 조무 |
16대 한선자 한기 |
|
17대 위헌자 위서 |
18대 범헌자 사앙 |
19대 지문자 순력 |
20대 조간자 조앙 |
|
21대 지양자 순요 |
22대 조양자 조무휼 |
}}}}}}}}}}}}}}} |
- 극곡(郤縠) 기원전 633년 ~ 기원전 632년
- 선진(先軫) 기원전 632년 ~ 기원전 627년
- 선저거(先且居) 기원전 627년 ~ 기원전 622년
- 호야고(狐射姑) 기원전 622년 ~ 기원전 621년
- 조선자 조돈(趙宣子 趙盾) 기원전 621년 ~ 기원전 601년
- 극성자 극결(郤成子 郤缺) 기원전 601년 ~ 기원전 597년
- 중항환자 순림보(中行桓子 荀林父) 기원전 597년 ~ 기원전 594년
- 범무자 사회(范武子 士會) 기원전 594년 ~ 기원전 592년
- 극헌자 극극(郤獻子 郤克) 기원전 592년 ~ 기원전 587년
- 난무자 난서(欒武子 欒書) 기원전 587년 ~ 기원전 573년
- 한헌자 한궐(韓獻子 韓厥) 기원전 573년 ~ 기원전 566년
- 지무자 순앵(知武子 荀罃) 기원전 566년 ~ 기원전 560년
- 중항헌자 순언(中行獻子 荀偃) 기원전 560년 ~ 기원전 554년
- 범선자 사개(范宣子 士匄) 기원전 554년 ~ 기원전 548년
- 조문자 조무(趙文子 趙武) 기원전 548년 ~ 기원전 541년
- 한선자 한기(韓宣子 韓起) 기원전 541년 ~ 기원전 514년
- 위헌자 위서(魏獻子 魏舒) 기원전 514년 ~ 기원전 509년
- 범헌자 사앙(范獻子 士鞅) 기원전 509년 ~ 기원전 501년
- 지문자 순력(知文子 荀躒) 기원전 501년 ~ 기원전 493년
- 조간자 조앙(趙簡子 趙鞅) 기원전 493년 ~ 기원전 475년
- 지양자 순요(知襄子 荀瑤) 기원전 475년 ~ 기원전 453년
- 조양자 조무휼(趙襄子 趙無恤) 기원전 453년 ~ 기원전 443년
4. 주요 가문
4.1. 난(欒)씨
희성(姬姓)이다. 진정후의 서손인 난빈(欒賓)의 후손이다.난(欒)씨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직계 | 계통 불명 | ||
난빈 | ||||
난성 | ||||
난지 | ||||
난돈 | ||||
난서 | 난경려 | |||
난염 | 난침 | 난규 | ||
난영 | 난방 | 난락 |
4.2. 극(郤)씨
희성(姬姓)이다. 진헌공 대에 공족인 극표(郤豹)가 극(郤) 땅을 식읍으로 받아서 씨로 삼았다.극(郤)씨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극표 | ||||||
극예 | 극의 | 극곡 | 극진 | ||||
극결 | 극양 | ||||||
극극 | 보초 | 포성작거 | 극주 | ||||
극기 | 극지 | 극의 |
4.3. 호(狐)씨
성이 없고[2], 융적 부락 출신이다. 호돌(狐突)의 후손으로 진문공의 외가이다.4.4. 선(先)씨
성에 대한 기록이 없다. 선진(先軫)의 후손이다.선(先)씨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선단목 | 선우 | ||
선진 | 선복 | 선멸 | 선도 | |
선저거 | ||||
선극 | ||||
선곡 |
4.5. 서(胥)씨
성에 대한 기록이 없다. 서신(胥臣)의 후손으로 진나라의 공족이다.4.6. 조(趙)씨
영성(嬴姓)이다. 조숙대의 후손으로 조최의 후손이 대종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세 가문 중 하나이다.조(趙)씨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조숙대 | |||||||
··· | ||||||||
공명 | ||||||||
조숙 | 조최 | |||||||
공맹 | 조돈 | 조동 | 조괄 | 조영제 | ||||
조천 | 조삭 | |||||||
조전 | 조무 | |||||||
조승 | 조성 | 조획 | ||||||
조오 | 조앙 | |||||||
조직 | 백로 | 조무휼 | 조라 | |||||
조조 | 조주 | 조가 | ||||||
조완 | ||||||||
조나라 국군 |
4.7. 위(魏)씨
희성(姬姓)이다. 필만의 후손으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세 가문 중 하나이다.위(魏)씨·영호(令狐)씨·여(呂)씨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필만 | ||||
망계 | |||||
위주 | 위수여 | ||||
위도자 | 위과 | 위기 | |||
위강 | 위힐 | 위상 | |||
위서 | |||||
위취 | 위무 | ||||
위만다 | |||||
위구 | |||||
위나라 국군 |
4.8. 한(韓)씨
희성(姬姓)이다. 곡옥환숙의 아들이자 곡옥장백의 동생인 한만(韓萬)의 후손으로 한만이 한(韓) 땅을 식읍으로 받아 씨로 삼았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세 가문 중 하나이다.한(韓)씨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한만 | |||
구백 | ||||
한간 | ||||
자여 | ||||
한궐 | 한천 | |||
한무기 | 한기 | |||
한양 | 한수 | |||
한불신 | 한고 | |||
한경 | ||||
한호 | ||||
한계장 | ||||
한나라 국군 |
4.9. 사(士)씨
기성(祁姓)이다. 요의 아들 단주의 후손인 두백(杜伯)이 주선왕한테 죽은 후 두백의 아들인 습숙(隰叔)이 진(晉)나라로 도망쳐서 사사(士師)가 되어서 사(士)를 씨로 삼았다.사(士)씨·범(范)씨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두백 | |||||
습숙 | ||||||
사위 | ||||||
성백결 | 사곡 | |||||
사목자 | 사회 | |||||
사악탁 | 사섭 | 사방(체씨) | 사견(유씨) | |||
사약 | 사개 | |||||
사개 | 사앙 | |||||
사경백 | 사길사 | 범고이 |
4.9.1. 범(范)씨
사(士)씨의 일파로 사회(士會)가 범(范) 땅을 식읍으로 받아 씨로 삼았다.4.10. 순(荀)씨
자성(子姓)이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A8D5E, #009770)"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순식 | ||||||
서오 | |||||||
순림보(중항씨) | 순추(정씨) | 순수(지씨) | |||||
순경 | 정계 | 순앵 | |||||
순언 | 정정 | 순삭 | |||||
순오 | 순영 | ||||||
순인 | 순력 | ||||||
지신 | 지과(보씨) | 지서오(도씨) | |||||
지요 | 지소 |
4.10.1. 중항(中行)씨
순(荀)씨의 일파로 순림보가 중항을 지휘했기 때문에 중항을 씨로 사용했다.4.10.2. 지(知)씨
순(荀)씨의 일파로 순수가 지(智) 땅을 식읍으로 받았기에 씨로 삼았다. 조씨, 위씨, 한씨와 함께 마지막까지 남은 네 가문 중 하나이다. 춘추시대 말에 지씨가 네 가문 중 가장 강성했으나 위씨, 한씨와 연합하여 조씨를 공격하던 중 조씨의 회유에 넘어간 위씨, 한씨의 배신으로 패배하고 멸망한다. 지백 요가 죽을 때 지씨 일족도 함께 몰살당했는데, 씨를 보(輔)씨로 바꾼 지과(智果)와 진(秦)나라로 망명한 몇몇 인물만이 살아남았다.4.11. 기(祁)씨
희성(姬姓)이다. 기성(祁姓)과는 관계가 없다. 대표적인 인물로 기해가 있다.4.12. 양설(羊舌)씨
희성(姬姓)이다. 진무공의 아들인 백교의 후손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숙향, 즉 양설힐이 있다. 양설씨가 몰락할 때 양설식아가 양(楊)씨로 바꾸어 살아남았는데, 홍농 양씨는 양설식아의 후손이다.양설(羊舌)씨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백교 | ||||
공손문 | |||||
양설돌 | |||||
양설직 | |||||
양설적 (백화) |
양설힐 (숙향) |
양설부 (숙어) |
양설호 (숙호) |
? (계숙) |
|
? (자용) |
양식아 (백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