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劉眞道(? ~ 443년)
유송의 장수로 유회숙의 조카이다.
2. 생애
유진도의 본적은 팽성군(彭城郡) 팽성현(彭城縣) 안상리(安上里)로, 유회숙의 동생 유회경(劉懷敬)의 아들이었다. 처음 전당현령(錢唐縣令)을 지냈다.436년, 양주에 기근이 들어 문제 유의륭이 양주(揚州) 치중종사사(治中從事史) 심연지(沈演之)를 파견하여 양주를 순시하도록 명했다. 심연지는 조정으로 돌아와 유진도와 여항현령(餘杭縣令) 유도석(劉道錫)이 대처를 잘 했다고 문제에게 보고했고, 문제는 유진도를 보병교위로 발탁했다. 437년, 양남진2주자사(梁南秦二州刺史)로 전출되었다.
441년, 후구지의 양난당이 한중(漢中)을 침공하자, 유진도는 군대를 지휘하여 양난당을 물리쳤다. 그러나 양난당의 침공이 끊이지 않자, 조정에서는 용양장군(龍驤將軍) 배방명(裴方明)에게 금병 5,000명을 주어서 유진도의 지휘를 받게 했다.
442년, 배방명이 무흥(武興)에 이른 뒤 담곡(潭谷)에 당도하였다. 한편 양난당은 건절장군(建節將軍) 부홍조(苻弘祖), 담원(啖元) 등을 난고(蘭臯)를 수비하도록 명했고, 진북장군(鎭北將軍) 부덕의(苻德義)와 자신의 아들 무군대장군(撫軍大將軍) 양화(楊和)을 유군으로 삼았으며, 배방명은 탁수(濁水)에서 구지군과 전투를 벌이고 부홍조를 비롯한 3천여 명을 참수하였다. 또한 유강조를 파견해 추격하여 부덕의를 물리쳤다. 배방명은 수성(修城)을 수비하는 양화, 양림(楊林), 요헌(姚憲)을 물리치고 적정(赤亭)까지 추격했다. 이에 양난당이 북위로 망명했고 양난당의 3남 양호(楊虎)는 민가로 도망쳐 숨었다가 붙잡혀 처형되었다. 유진도는 건위장군(建威將軍), 옹주자사(雍州刺史)로 전임되었다.
443년, 유진도와 배방명은 구지를 정벌할 때 노획한 금은보화와 말을 독점한 죄로 투옥되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