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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하 추존 황제
유고승원 | 劉誥升爰 |
|
<colbgcolor=#26619c> 묘호 | 없음 |
시호 | 원황제(元皇帝) |
성 | 유(劉) |
휘 | 고승윈(誥升爰) / 훈두(訓兜) |
부친 | 거비 |
생몰 | ? ~ 309년 |
재위 | 제2대 철불부 수령 |
272년 ~ 309년 |
[clearfix]
1. 개요
서진 시기 흉노 철불부의 수령으로 유훈두(劉訓兜)라고도 한다. 전임 수령인 유거비(劉去卑)의 아들이며 오호십육국시대 후기 북하를 세운 혁련발발의 고조부이다.216년 7월에 호주천이 그의 명왕을 데리고 오면서 조조에게 항복한 후 업성에 자리잡고 살면서 빈객의 예우를 받았는데, 이때 호주천이 우현왕 거비에게 자신을 대신해서 나라를 통치하도록 했다.
유표가 흉노를 합병할 때 위나라 조정에서 등애가 올린 상소에서 거비의 자손이 사업을 이을 수 없어서 자손들에게 고귀한 칭호를 더해 주어 안문에 거주하도록 하면서 흉노의 나라를 분리해 세력을 약하게 하라고 했는데, 유고승원은 흉노를 약화시키기 위한 정책으로 인해 안문에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272년, 흉노의 우현왕 유맹(劉猛)이 서진에 대항했다가 피살당하자 유고승원은 그의 무리들을 통합하여 철불부의 수령이 되었다. 사실 '철불부'라는 명칭은 그의 아들인 유호 대에 명명된 것이나 그 기원은 유거비와 유고승원이기에 유고승원을 제2대 수령으로 간주한다. 《 위서》에는 유호를 유맹의 종자, 즉 유고승원을 유맹의 사촌형제로 기록했으며 《 신당서》에서는 유맹을 유거비의 동생, 유고승원의 숙부로 기록했다.
309년, 유고승원이 사망하자 아들 유호가 뒤를 이었다. 이후 현손인 혁련발발이 북하를 세우자 유고승원은 원황제(元皇帝)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