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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ệt kiều(越僑)/Overseas Vietnam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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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월교는 베트남 본토를 떠나 해외 각처로 이주하여 현지에 정착, 경제 활동을 하면서 본국과 문화적·사회적·법률적·정치적 측면에서 유기적인 연관을 유지하고 있는 베트남인과 그 자손을 통칭하는 말이다.해외 거주 베트남인은 주로 베트남 공화국계 보트피플들과 그 자손을 주로 일컫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월교도 보통 보트피플들과 그 자손을 일컫는 경우가 많으나, 보트피플은 베트남 공화국 출신 난민들에 한정되어있고 월교는 베트남 공화국과 현재의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이주민들 전체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는 차이가 있다.
2. 역사
프랑스의 경우는 과거 베트남을 식민지로 하고 있었던 관계로[1], 지금도 베트남계 혼혈들이 있으나, 프랑스를 제외한 여타 서유럽 국가들, 호주- 뉴질랜드,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나 그 이외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에서[2][3] 베트남계 주민이 보인다면 대다수가 남베트남 시절 넘어왔거나[4], 남베트남 패망 이후 도망쳐 어떻게든 그 지역까지 흘러들어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비록 미국과 베트남이 수교하면서 본국과의 교류는 자유로워졌기는 했지만 그와 별개로 현 베트남 정부는 그들을 외국으로 도망가게 만든 1등 공신인지라 아직도 공산 베트남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상당한 수준이라고 한다. # 특히 미국에 남아있는 남베트남 시절에 넘어온 베트남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은 네오콘보다 훨씬 극단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5] 반대로 당시 동맹국이자 파병국인 한국에 대해서는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고 넷상 월남참전동지회 페이지에도 미국, 한국, 대만, 호주, 태국 등의 참전용사들에게도 감사를 표하거나 월남군 출신들도 심심치 않게 활동한다.3. 현황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웨스트민스터 리틀 사이공, 베트남계 미국인들이 황저삼선기를 들고 행진하고있다. 원출처의 설명 " A colorful procession of South Vietnamese flags (now a symbol of the Vietnamese-American community) leads the Tet parade in “Little Saigon.”"
남베트남의 국기인 황저삼선기는 현재 베트남계 미국인의 기로서 여러 주에서 공인되었다. 이로 인해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가 정상화된 뒤 미국에 건너온 베트남계 이주민과 베트남 공화국 패망기에 건너온 구 베트남 공화국 출신 이주민들 사이에 반목도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예를 들면 구 베트남 공화국 출신 이주민들이 가게에 황저삼선기(黃底三線旗)를 걸면 현 베트남 출신 이주민들이 뭐라 하고, 현 베트남 출신 이주민들이 현 베트남의 국기인 금성홍기를 걸면 구 베트남 공화국 출신들이 비난하는 등. 다만 구 베트남 공화국 출신이 압도적으로 숫자도 많고 베트남계 미국인들 사이 권위도 더 강하다. 1990년에 반 호치민 시위까지 일어날 정도이니.
한국 웹 사이트 일각에서 아시안 프린스의 노래라고 잘못 알려진 Heart2Exist의 Who i am/25 Years(Tôi Là Ai/25 Năm, 2002)가 바로 이러한 이민자(들의 2세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무래도 앞서 말했듯 남베트남 패망 후 도망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베트남계 미국인은 정치적으로 다른 아시아인들과 달리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편이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아시아계 미국인의 77%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를 뽑았지만 베트남계 미국인 사이에서는 공화당 롬니(54%) 후보의 득표율이 오바마(44%) 후보를 앞섰다. 참조. 다만 이것도 2000년대 초반까지 베트남계 미국인들의 공화당 득표율이 70%대가 나오던 거에 비하면 꽤 내려간 편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더 이상 나라도 없고, 거주하는 나라에 배경도 전혀 없는 관계로 잃을 게 없다는 심정으로 사는 사람도 많다. 베트남계 갱들이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한다거나, 잔인하기로 유명한데는 이런 뒷이야기도 약간 있다. 관련이 있을지 모르지만 블랙 라군의 배경이 되는 도시 로아나프라는 베트남 전쟁에서 패전하여 피난온 군인들에 의해 형성된 도시라고 한다.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미국이나 프랑스같이 규모가 큰 베트남계 이민자 사회가 형성된 곳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보트 피플로서 망명해 온 구세대 이민자들과 1990년대에 서방과 베트남의 관계가 정상화된 이후 유학이나 사업 등의 이유로 정상적으로 이민을 온 전후 세대 이민자들 사이의 갈등이 크다. 1990년대 이후 많은 수의 통일 베트남 출신 베트남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 원래 이민자들의 도시이며 베트남계 이민자 공동체도 큰 뉴욕에 정착하였으나, 이런 저런 문제로 이전부터 뉴욕에 정착해 있던 기존 이민자 사회의 텃세 때문에 위치적으로 가까운 필라델피아로 내려가서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필라델피아에는 상당한 규모의 베트남계 공동체가 생기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통일 베트남 내부에서 남부와 북부 간의 갈등과 그로 인한 지역감정이 심한 것과도 비슷한 양상이다.
4. 실존하는 월교
[1]
모두가 식민지 시절 이주한 건 아니고, 남베트남 시절에도 자주 이주했으며, 패망 당시에도 많은 난민을 받아들였다.
[2]
보트피플들이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홍콩이었다. 홍콩 식민정부는
1979년 베트남계 난민을 정식 수용하고 이들을
구룡성채 내의 난민촌으로 보낸다. 물론 구룡성채도 상태가 안 좋은 곳이었지만 최소 굶어죽진 않았고, 성채 해체 후에는 밖으로 나와 2세 이상은 홍콩화되었다. 태국에는
캄보디아를 거쳐 육로로 도망간 피난민도 많이 건너가
파타야나
라용 주 등에 정착했다. 월남전 당시 독립한 싱가포르는
인구 부족 해결 목적으로 베트남 난민을 정식으로 받아 들이며 이 인연으로 현재도 싱가포르는 베트남과 교류가 많은 편이다.
[3]
물론 비단 홍콩이나
마카오로만 온 건 아니고
중국 대륙으로 온 보트피플도 상당수 있었기는 했으며 육로로 추방된 사람도 있다. 다만 이들 중 대부분은 베트남에서 대대로 거주하던 화교들인데 베트남의 화교 탄압 정책과
중월전쟁으로 인해 추방된 케이스다. 물론 일부 순혈 베트남인도 있었는데 이들은 공산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에 관대한 중도 성향이지만 모종의 이유(예를 들어
친중 성향이거나 완전한 친중은 아니지만 화교들과 친분이 있다든가, 혹은 북베트남 주도의 베트남 통일에는 찬성하지만 남베트남 유민들을 지나치게 탄압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경우)로
베트남 공산당의 비위에 거슬리게 된 케이스다.
[4]
단,
동유럽(
20세기 후반에 공산주의국가였던 유럽국가들)이나
러시아 등 구
소련 국가들 그리고
쿠바라면 해당되지 않는다. 구
공산권인 해당 국가들에 거주하는 베트남계 주민 대다수가 북베트남에서 해당 국가들로 돈 좀 벌려 일하러 들어왔다가 정착한 이들이 대다수라 현 베트남 정부와는 관계가 상당히 우호적인 편이기 때문이다. 한편 냉전시기에 공산권이었던 곳에는 동독이 포함되며, 그래서
독일 통일 후에
서독의 남베트남계 거주민과
동독의 북베트남계 거주민 사이에서
갈등이 꽤 심했다고 한다.
[5]
예를 들어 현재 베트남 공화국은 경제체제로는 자본주의 정책으로 흐르기 때문에 남베트남이 다시 수복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