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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5 13:55:34

초목왕

웅상신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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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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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楚)나라 5대 왕
목왕
穆王
미(羋)
웅(熊)
상신(商臣)
아버지 초성왕(楚成王) 웅군(熊頵), 웅운(熊惲)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14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625년 ~ 기원전 614년

1. 개요2. 생애
2.1. 즉위 이전2.2. 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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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나라의 21대 국군이자 5대 . 초성왕 아들. 춘추오패 초장왕 아버지다. 초 성왕의 적장자로 아버지에게 자살을 종용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아 정복 전쟁을 펼쳤다. 선대 왕들의 정책을 본받아 사방으로 팽창하니, 이 사람 손에 멸망하거나 속국이 된 나라만 10개 가까이 된다.

2. 생애

2.1. 즉위 이전

상신은 위에 언급한 대로 초 성왕의 적장자였는데, 상신을 태자로 세울 때 투발(자는 자상)은 초나라는 대대로 막내를 후계로 세우는 것이 전통이며[1] 상신은 벌의 눈과 승냥이의 목소리를 가진 채로 태어났기 때문에 세워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지만 성왕은 듣지 않고 상신을 태자로 세운다. 예상대로 초 성왕이 웅직(熊職)을 낳은 후 마음이 바뀌어 상신을 폐하고 후처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 하자 상신은 거기에 반발하였다.

초 성왕 46년(기원전 626년), 상신은 부하 반숭의 계책을 듣고 궁으로 쳐들어가 초 성왕을 협박해 자결하게 한 뒤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투월초를 시켜 웅직을 죽였다. 정변을 도운 공로로 반숭은 태사가 되었다.

2.2. 치세

초 성왕 46년(기원전 626년), 이런 유혈 사태를 거치면서 왕위에 오른 초 목왕은 성왕의 장례를 치르고, '영'(靈)이라는 시호를 바치려했으나, '영'은 어둡다는 뜻이 있다하여, 어둡지 않다는 뜻이 있는 '성'(成)을 바쳤다고 한다.[2] 그는 중원 진출의 야욕이 강했기 때문에, 국력을 키워 중원 진출을 엿보았다.

초 목왕 3년( 기원전 623년), 진(秦)나라와 함께 진(晉)나라에 맞서 싸웠으며, 즉위 초부터 공격한 강(江)나라를 멸망시켰다.

초 목왕 4년(기원전 622년), 육(六)나라[3]와 요(蓼)나라를 멸했다.

초 목왕 5년(기원전 621년), 진(晉)나라 군주 진양공이 죽자 조돈이 그 아들을 군주로 세우니 그가 바로 진영공이다.

초 목왕 6년(기원전 620년), 진(晉)의 대부 조돈은 강대해지는 초나라에 대응하기 위해 제나라, 송나라, 위나라, 진(陳)나라, 정나라, 허나라, 조나라 등과 동맹을 맺었다.

초 목왕 8년(기원전 618년) 여름에 진(陳)나라가 진(晉)나라를 따르자 열받은 초 목왕이 진(陳)나라를 쳤다. 호구 땅에서 크게 싸워 공자 주를 이기고, 공자 벌을 포로로 잡았다.

초 목왕 9년(기원전 617년), 송나라, 정나라, 진(陳)나라 등을 굴복시켰다.

초 목왕 10년(기원전 616년), 장군 성대심을 보내 균나라를 쳤다. 그리고 균나라를 굴복시킴으로써 중원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초 목왕 11년(기원전 615년), 영윤 성대심이 죽자, 성대심의 동생 성가를 후임 영윤으로 임명했다. 같은 해에 서(舒)나라가 초나라를 배신하자 초 목왕은 그것을 응징하기 위해 서나라를 치니 서나라 군주는 포로로 잡히고, 덤으로 종(宗)나라 군주도 포로로 잡혔다. 그리고 이왕 공격한 김에 소(巢)나라도 쳤다. 그렇게 하여 초나라는 강회 지역에 세력이 두루 미치게 되었다.

초 목왕 12년(기원전 614년), 초 목왕이 죽으니 아들 웅려가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춘추오패 초장왕이다.


[1] 여담으로 종법질서에서는 반대로 적장자가 왕이 된다. 초나라가 얼마나 중원과 다른 국가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 한편으로는 초나라의 계승순서는 의외로 유목민들과 비슷했음을 알 수 있는데 유목민들은 한정된 목초지 안에서 가축들을 키우며 살아가야 하다보니 가족 수 증가=필요 가축 수 증가=목초지 고갈=가축 전멸=재산 증발로 이어지다보니 자식이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빨리빨리 독립시켰고 이러다보니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막내가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2] 그런데, 일설에는 초 성왕의 시신이 '영'이라는 시호를 바치자 눈을 감지 않으니 '성'이라는 시호를 바치자 눈을 감았다는 말도 있다. [3] 훗날 《 초한지》에 등장하는 영포의 고향인 육현의 이름은 육나라가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