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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2-27 23:54:41

요안니스 아탈라리치오스

이름 요안니스 아탈라리치오스
(영어:John Athalarichos, 그리스어: Ἰωάννης Ἀθαλάριχος)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직위 미상
반란 대상 이라클리오스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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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이라클리오스 왕조의 반란자. 이라클리오스 사생아로, 부친이 이슬람과 맞서기 위해 출정하여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반란을 꾀했으나 조기에 발각당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2. 행적

이라클리오스는 첫번째 아내 파비아 에우도키아와 결혼하기 전에 모종의 여인으로부터 아탈라리치오스를 낳았다. 그는 622년 이라클리오스의 조카 스테판과 함께 아바르족과 평화 협정을 맺는 대가로 인질로 보내졌다가 몇년 후 귀환했다. 636년 아랍에서 이슬람의 폭풍이 일어나 제국의 동방 영토가 위험해지자, 이라클리오스는 이들을 막기 위해 시리아로 출정하여 안티오크에 자리잡았다. 이때 두번째 황후 마르티나 이라클로나스, 그리고 황태자 콘스탄티노스 3세도 함께 했다.

그러나 그해 8월 동로마 제국군은 야르무크 전투에서 아랍군에게 완패하였고, 안티오크마저 위험해졌다. 이라클리오스는 참십자가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운송하게 한 뒤 가족과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귀환했다. 그러나 보스포루스에 이르렀을 때, 중병에 걸려 꼼짝하기도 힘들었던 그는 바다에 대한 공포심이 생겨나 바다를 건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히에라 궁전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고, 어서 귀환하시라는 수도 대표단의 건의도 듣지 않았다.

황제가 이렇듯 무기력해지자,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는 그를 대신하여 아탈라리치오스를 새 황제로 옹립하려는 음모가 일어났다. 이 음모의 주동자는 이라클리오스의 조카인 테오도로스였다. 그러나 음모에 가담한 이들 중 한 사람이 황제에게 밀고하면서 모든 게 탄로났다. 음모자들이 모두 잡히자, 조언가들은 저들을 모조리 처형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라클리오스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너희는 나와 내 아들들의 피에 손을 담그려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명하는 곳으로 가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리라."

이라클리오스는 그들을 살려주기로 했지만, 아탈라리치오스를 비롯한 모든 가담자들의 코와 손을 절단하라고 명령하였고, 몰타 연안의 고조 섬으로 유배보냈다. 황제는 자신의 조카이자 주동자인 테오도로스에게 적개심이 가장 강했기에, 고조 섬의 현지 총독에게 테오도로스의 발 하나마저 자르라고 명령했다. 그 후 아탈라리치오스가 어찌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