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光就
? ~ 1170년( 의종 24) 10월 11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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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중기의 환관.2. 생애
환관 중에 보기 드문 국성( 왕씨)으로, 성씨가 없는 노비 출신이기에 사성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받은 총애를 짐작할 수 있는 이름.초기에 의종의 측근 심복으로 정함에게 붙어 같이 횡포를 부리던 간신이었다. 의종 초기 환관 권력의 중심이 정함이었다면 정함 사후인 의종 후기 전횡을 부리던 환관은 왕광취였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함하여 귀양을 보내었으며 무신들에게도 횡포를 많이 부렸다고 한다.
본래는 관노 출신이었지만 백자단과 함께 정함이 심복으로 삼았으며, 백선연과 함께 항상 왕의 침전에 출입해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했다.
의종이 왕광취, 백선연과 함께 술판을 벌이면서 이공승, 김양, 이담 등을 불러 술을 마시기도 했으며, 1165년에 의종이 판적요의 연못에 배를 띄우고 놀 때 백선연, 박회준, 유장과 함께 술자리와 풍악을 즐겼다.
무신정변 때 환관들과 반란을 일으켜 무신들에게 저항하려 하였으나 환관 한숙의 밀고로 실패해 참살되어 효수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
무인시대에서는 무신들을 상대로 저항하면서 쇠뇌로 이의방을 저격해 죽이려는 시도를 했지만 살해당한 것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