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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5 16:47:46

오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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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sunday.joins.com/14194219.jpg
이름 오상원(吳尙源)
출생 1930년 11월 5일
평안북도 선천군 신부면[1]
(現 평안북도 동림군)
사망 1985년 12월 3일 (향년 55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학력 용산중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 불어불문학 / 학사)
첫 작품 유예 (1955)
마지막 작품 겹친 과거 (1985)
제3회 동인문학상 수상
선우휘
(1957)
오상원
모반
(1958)
손창섭
(1959)

1. 개요2. 생애3. 작품목록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후소설가.

2. 생애

1930년 11월 5일 평안북도 선천군 신부면(現 평안북도 동림군)에서 태어났다. 용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 유예」가 당선되어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1958년에는 「모반」으로 제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뒤 1959년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다가 이듬해인 1960년 동아일보로 자리를 옮겨 사회부 기자로 활동했다. 1963년 4월 동아방송이 개국하자 뉴스부 차장에 보직되어 1968년까지 역임했다. 1969년 지방부 차장으로 옮겨 1970년까지 역임하고, 1971년에는 지방부장에 취임하여 1972년까지 역임했다.

그 뒤 1973년부터는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근무하다가, 1985년 12월 3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선우휘, 이범선과 함께 대한민국의 전후(6.25이후)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전후 소설가들 중 가장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쓴 작가로 평가받는다.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앙드레 말로의 소설과 흡사한 면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졸업 논문도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에 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몇몇 소설이 군사정권 시절, 정치적인 외압으로 연중된 안타까운 사건도 있다.

3. 작품목록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