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00:58:07

오! 한강

파일:attachment/오! 한강/ohhanriver.jpg

1. 개요2. 등장인물3. 내용4. 평가

1. 개요

허영만의 극화. 해방 이전과 제6공화국까지 격동의 한국사를 다룬다. 1987년 월간 만화광장에 연재되었다. 연재 후, 1부 8권 2부 3권의 단행본으로 출시되었다. 1994년에 세주문화사에서 전 4권의 단행본으로 냈고, 25년 만인 2019년 5월 전 5권으로 재발간 되었다.

타짜의 스토리 작가인 김세영이 여기서도 스토리를 맡았으며, 그림 작가의 이름과 스토리 작가의 이름이 책에 같이 나온다. 이는 당시 만화계에서 획기적인 일로 보통은 그림 작가의 이름만 기재하는데, 스토리 작가의 이름이 함께 기재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오! 한강은 원래 안기부에서 대학생용 반공만화로 청탁했는데, 허영만이 '내용에 간섭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수락하고 내용을 단순한 반공물에서 영쪽 모두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옮겨서 역사물로 그린 작품이다.[1]

실질적으로 1부 붉은 허수아비 부분은 반공물의 색채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지주의 횡포, 해방 이후 정치권의 비민주적인 모습까지 그려진다. 허영만작가에 의하면 내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재가 없었으나, 1부 중후반부에 나오는 커다란 인공기 장면 때문에 경찰서에 간 적이 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후반부부터 1987년 6·29 선언까지 약 50년간을 그린다.[2] 전반부의 주인공은 전라도의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화가로 성장하는 이강토이다. 그는 초졸 학력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그림을 배우게 되고,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면서 그에 심취해 월북해 요직에 올랐으나, 전쟁을 계기로 다시 남한에 돌아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화가가 된다. 후반부의 주인공은 이강토의 막내아들 이석주이다. 그는 역시 화가의 길을 걸으며 민주화 투쟁에 투신한다.

2. 등장인물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석주- 강토의 막내아들로 어릴적부터 강토가 그림그리는것을 따라 그리다보니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교를 진학하니 때마침 전두환 군부정권이 시작되었고 이내 용우, 진수와 학생운동에 뛰어든다. 그 와중에 장미와 연희와 3각 관계 연애를 하다가 시위도중 붙잡혀 강제 입대한 뒤 강토와 비슷한 인생역정을 겪으며 민주화 운동과 예술사이에서 방황한다.

용우- 교내 학생운동의 리더로 어머니, 동생 연희와 재개발구역에 산다. 석주에게 사실상 사상의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넒게는 대한민국의 역사부터, 학생운동을 왜 해야하는지에 대한 타당성과 남한과 북한의 관계, 한미관계의 진실등을 알려주는 지식인 역할을 한다.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으로 수배되어 고초를 겪다가 강토의 배려로 장덕배의 건물 관리인으로 숨어지내다가 석주가 군대에 간사이에 자수하여 옥고를 치른다. 옥고를 치르고 나와서는 1987년 직선제 쟁취에 큰 역할을 한다.

장미- 민정당 국회의원의 딸로 석주 누나가 운영하는 피아노 학원의 수강생으로 청순하고 단아한 외모를 자랑한다. 석주누나의 소개로 석주와 만남을 가진다.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국회의원의 딸이라는 현실에 벽에 어려움을 느낀 석주가 결별을 요구하지만 석주가 군을 제대할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려준다. 석주와의 결혼도 생각하며 집을 나오지만 이후 어머니가 쓰러지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며 결국 석주와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연희- 용우의 동생으로 학생운동에 매진한 용우때문에 사실상 집안의 가장노릇을 한다. 계단에서 추락한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뒤엔 돈을 벌기위해 술집에서 몸을 팔며 돈을 벌기도 하고 공장 여공이 되어 노동운동을 하기도 한다. 여러차례 석주가 관심을 보였으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중산층인 석주의 제의를 뿌리친다. 결국 마지막컷에 석주의 손을 잡으며 석주와 교제한다.

3. 내용

주인공 이강토는 빈농의 자식으로 정규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나 자신의 작품세계, 사상체계 및 정치관을 구축한 인물이다.

해방 직후 그는 남한 내의 좌파조직에 가담하나, 당시 학생좌파의 신분차별적 분위기와 미온적 태도에 실망하여 월북한다. 그 후 북한군으로 6.25 전쟁에 참전하고, 남한군에 포로로 잡히게 되고, 포로수용소에서 다시 남한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7]전쟁후유증에 괴로워하던 그였지만, 우연히 정치에 가담하게 되는데...

처음에 그는 월북을 망설이나, 결정적인 이유는 연인이었던 야스코의 배신 때문이었다.

과거 일제 말기, 이강토는 시내에서 우연히 마주친 일본인 관리의 딸인 야스코를 짝사랑하게 된다.

야스코는 일본 고관 야스다 산뻬이의 영애였다. 그러나 해방 직전 순사의 앞잡이였던 마을 불량배 장석배에게 강간당한다.[8] 장석배는 본국으로 떠나던 야스코의 오빠와 1대1 대결을 벌이게 되는데 일본도를 든 야스코의 오빠에 맞서서 괭이를 들고 싸우는데, 야스코의 오빠는 죽고 석배는 배에 칼에 베인 중상을 입는다. 거기다가 야스다 산뻬이가 쏜 총에 맞아 쓰러진다. 직후, 야스다 산뻬이는 일본인 관리로 있는 동안 본인 스스로는 비인간적인 행동은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다는 말과, 최초로 사람을 쏜 행동, 즉 석배를 죽인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변에 있던 한국인들도 그 말에 대부분 동의하면서 일본인 앞잡이였던 석배같은 놈은 죽어 마땅하다고 하는데, 이 때 강토의 아버지가 소작농으로 있는 지주의 딸인 김혜린과 강토가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간신히 목슴을 건지게 된다. [9]

장석배에게 강간당했을 때는 야스코는 숲에서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사건이 있은 후 강토는 자신의 옷을 벗어서 그녀에게 덮어주고 그녀는 말 없이 떠난다. 그 때 남아 있던 그림도구들은 강토에게 미술의 세계를 접하게 했고[10] 나중에 그는 서울로 상경하여 한윤섭에게 그림을 배우게 된다. [11]

강토가 그림을 배우는 곳은 좌파계열의 학생들이 자주 모여서 토론을 하는 곳인데, 그 중에는 김혜린도 있었고, 나중에 강토의 정신적 스승이 되는 김희중도 오는 곳이었다. 아직까지 신분제도를 벗어던지지 못한 강토는 그들의 토론에 가끔 참여하던 중, 사람은 모두 다 평등하다는 말을 듣게 되고, 어느 날, 김혜린에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은, 강토 본인 같은 사람과 김혜린 같은 사람이 결혼할 수도 있냐는 말이냐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이에 김혜린은 당황을 하게 되고, 강토는 그들이 말하는 평등이 말뿐인 평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뒤, 거리를 방황하던 강토는 길에서 우연히 장석배를 만나게 되는데 장석배는 상당히 잘 나가는 듯, 옷차림이나 행동이 무척 세련되었다. 그 얼굴에 세련되어 봤자지만 그는 강토를 좋은 곳에 데려다 주겠다며 옷을 빌려주고 한 요정으로 간다. [12] 그 곳에서, 강토는 뜻밖에 야스코를 만나게 된다.

야스코는 아버지 야스다 산뻬이를 따라 일본으로 가던 도중, 일제에 징용당해서 세 아들이 죽게 되어 미쳐버린 한 노인에게 야스다 산뻬이가 살해당한다. 야스코는 아버지 이외에 다른 혈육도 없었던지라 귀국하지 못하고[13] 서울역 대합실에서 혼자 한달을 거지처럼 지내다 기생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야스코를 만난 이강토는 강간 현장을 목격한 죄책감[14]에, 안영자로 개명[15]한 야스코와 동거하기 시작했다.

헌신적으로 강토에게 대해주는 야스코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강토는,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흑인 소령과 동침하는 야스코를 보게 되고 충격을 받아 월북하게 된다. [16]

이강토는 북한에서는 남한에서부터 의형제를 맺었던 정치위원 손병수의 비호 아래 예술 활동을 하다[17], 우연한 기회에 민주청년동맹의 선전선동부 지역부장이라는 중책에 오르게 된다. 이것은 정치력이나 아부보다는 광적인 선전용 그림을 잘 그렸기 때문이었다. 소작농으로서 받았던 설움, 신분제도에 대한 환멸, 아내와 다름 없었던 야스코에게 생겼던 일들은 그대로 그의 사상이 되고, 그 시기에 이강토가 그린 그림들은 그 내용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매우 섬뜩할 정도로 날이 섰다. 폭압적인 지주에게 짓밟히는 농민, 미제의 노예가 되어버린 남한... 이런 테마는 대략 1970-80년대까지 북한에서 꾸준이 대남선전용으로 쓰이던 테마이다.

거의 미친 듯이 공산주의에 매진하던 그는 혁명을 추구라는 예술가라면 당연히 혁명을 경험해야 한다는 자신감으로 한국전쟁에서 의용군으로 지원하게 되지만, 긴 전쟁기간동안 그는 그 자신이 점차 "혁명군" 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그는 전쟁 도중 다시 만나게 된 김희중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김희중과 함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가게 된 그는, 김희중으로부터 "예술은 사상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한다" 는 충고를 듣는다. 얼마 뒤 잠자리에서 그는 강토에게 "대한민국 정부에서 포로들에게 자유를 준다면 남쪽에 남으라" 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날 밤, 그는 손목 하나만 남겨둔 채로[18] 골수공산주의자들에게 살해당한다.

본인이 진정한 혁명가이고, 공산주의자라고 믿고 있던 강토는 충격을 받게 되고, 얼마 후 김희중의 예언대로 이승만은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공포로석방을 단행한다. 심사장에서 남과 북 어느 쪽을 선택하겠냐는 심사위원들의 모습에, 악덕지주 (김혜린의 아버지), 흑인애기 (야스코가 낳았을 거라고 추측하는 ... 이 악몽은 강토를 끝없이 괴롭혀온 모습이다), 팔이 잘린 김희중 등의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이강토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낀다.

...1부, 2부로 구성되어 있는 오! 한강 구판은 여기서 1부가 끝이 난다.

희중의 말대로, 그리고 손병수의 말대로 (김일성이 아닌 박헌영을 지지했던 그는, 이강토에게 자신의 여동생 손미숙과 함께 월남할 것을 제안했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강토는 손미숙과 관계를 가졌고, 그녀는 임신중이었다. 손병수는 강토를 원망하지 않고 미숙을 책임져 줄 것을 요구했다.) 강토는 남한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 처음에는 어떻게 할지 망설였지만, 한 목사로부터 북한에서 남로당 간부들이 대거 숙청당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 남한을 선택한 듯 하다. (박헌영이 남로당의 수장격이고, 손병수 역시 그의 심복이므로, 손병수의 도움으로 북한체제에 발을 들이게 된 강토 역시 남로당파로 인식될 것이다.)

수용소를 나와 갈 곳이 없던 강토를 반겨준 것은 뜻밖에도 손미숙이었다. 손병수는 본인이 위기에 처하자 끝까지 강토를 기다리겠다는 동생에게 남한으로 가야 강토를 만날 확률이 높다면서 태어난지 얼마 안 되는 아이 이태주(강토의 아들)와 함께 그녀를 남한으로 탈출시킨다. 하지만, 본인은 돌아오지 못하는데, 정황상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19]

예전 그림 스승이었던 한윤섭을 찾아가지만, 집은 폐허가 되다시피 하고 그는 반불구가 된 몸이었다. 그는 강토에게 갈 곳이 없으면 그 곳에 들어와 살라는 말도 한다. 손미숙과 함께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그는 그 곳에서 살게 된다. 전쟁의 후유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일을 못하고 있는 그이지만[20], 손미숙이 사채일까지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벌어, 그럭저럭 먹고는 산다.

전쟁 이후, 색채에 과도할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그를 보던 한윤섭의 친구는 그에게 색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동양화를 해 볼 것을 권한다.

4. 평가

장시간의 고통스러운 전쟁과 손병수가 숙청당하는 과정을 보면서 혁명담론에 회의를 느낀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남을 택하고 조봉암의 진보당에 가담하게 되나 이승만 정권의 탄압으로 진보당이 와해된다. 이후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회의주의적인 태도를 취하며 극 사실주의적인 미술에 전념하게 된다. 진보당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정치운동가는 감옥에 갇혀있을 때 면회 온 이강토에게 왜 아직도 유신체제 하의 감옥에서 허덕이는지 반문할 정도였다. 물론 고리대금업으로 돈 잘 벌어오는 부인을 둔 덕에 예술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이다 손병수의 동생이자 이강토의 아내가 되는 손미숙은 투철한 공산주의자였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고리대금도 불사하는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변모하게 된다[21].

이강토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욕망과 갈등은 혼란과 격변의 시대를 잘 보여준다. 한 학생은 탈계급 혁명을 하겠다고 부르짖지만, 자신이 좋아하던 여성이 이강토와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자 질투를 느낀다. 그래서 시골 지주인 여성의 아버지에게 고자질했다가 전쟁 중 전향하여 남한의 검사가 되어 체제 투신한다. 이강토가 존경하던 김희중 선배는 야만적인 시대에 대한 수동적 저항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사지가 찢겨서 팔 한짝만 남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야스코를 강간하며 자신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협잡과 범죄를 마다하지 않던 건달 장덕배는 아이러니하게도 끝까지 이강토의 친구로 남는다.

이런 혼란 속에서 이강토는 회의주의자로 변모하면서도 타협하지는 않는다. 다만 방관할 뿐이다. 한국의 현대사가 보여준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혼미 속에서 방어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실패한 지사의 면모를 보인다. 또한 그의 충동적인 면모 역시 현대사의 예측불가능성과 혼란상이 일종의 성장통으로 작용한다. 작가는 이강토의 삶을 통하여 한국 현대사 자체를 은유하려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초반부만이 다뤄지는 이석주의 삶은 해방직후에서 제 5공화국에 이르는 한 시기가 이강토의 이야기를 통해 요약된다. 이렇게 제6공화국 이후 이루어진 제도적 민주화에 대한 기대를 읽을 수 있다.

재미있게도 이런 결말 때문에 당대 평론가들에게 온갖 욕을 먹고 싸구려 반공물이자 투항주의적인 결말이라고 매도되기도 했다. 당대 시기를 고려했을 때 작품성을 높게 평가받을만 한 작품이다. 격동의 한국사를 살아온 주인공의 굴곡진 삶을 보여주면서도 시대상을 충분히 반영한 작품은 흔치 않을 것이다. 허영만 이전 세대에 속하는 작가들은 정치적 중립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가령 고우영 화백도 반공만화를 그린 적이 있다. 허영만 이후의 작가들은 거시담론을 포기했다. 그런 점에서 허영만의 독보적인 작가정신이 보인다.

1980년대에 미군의 전술핵이 한반도에 비밀리에 배치되어 있었고, 이걸 이석주의 운동권 친구가 비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몇 십년이 지나자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남한의 국회의원이 단결해서 미군 전술핵을 재배치할 것을 요구하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 이외에도 오! 한강 3부는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시대묘사가 나오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이석주와 친구가 돌려보는 '서양 포르노'의 내용이 무려 레즈비언 플레이에 수간등... [22][23] 이런 자극적인 소재를 양지에 이름 내걸고 그린 것도 아마 허영만이 최초일 것이다! 동시에 이 장면은 경제적 풍요가 어느 정도 성취되고, 독재정권의 3S 정책으로 문화적으로도 급격한 개방이 이루어지던(그리고 제도적 민주화에 대한 열망 역시 끓어오르던) 당시의 젊은이들이 일견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는 자극적인 새로운 문화 문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역시 보여주고 있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강렬한 문화 충격 그 자체였던 것.

이강토라는 인물은 해방시기부터 남북을 오가면서 수많은 인물과 사상을 접하고 사랑을 하고 전쟁터와 수용소에서 생사의 기로를 누비고, 그러는 와중에도 예술에 대한 열정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실로 대하소설에 어울리는 복합적이면서도 입지전적인 삶을 살아주었으나, 전쟁 이후에는 조봉암의 억울한 죽음(1959)으로 현실에 절망하여 예술에만 집착하게 된다. 고로 1960~1987년까지 주인공 이강토는 방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리는 기계가 되기 때문에 30년 가까운 시간이 작품에서 한큐에 삭제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과연 그 30년은 무의미해서 언급할 가치도 없다는 메세지는 아닐텐데 이러한 전개가 과연 대하역사물에 적합한 것인지는 실로 의문이다. [24]

화가로서의 이강토는 사회에 인정받고 이름도 나름 알려지게 되는데, 그 과정도 좀 제대로 그려졌다면 좋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손(手)의 데생만 미친듯이 하다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서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옮겨갔다는 설명인데, 독자가 보기에는 그냥 손만 그리다가 다음에는 자갈밭만 그린 화가로밖에 안 보인다. 자갈밭을 아주 극명하게 그려내어서 국전에서 상도 받았다는 전개이지만 그 '자갈밭 그림'이 만화 지면상에서 별로 대단한 뭔가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여기서는 허영만이 그림쟁이의 명예를 걸고서 한번 진짜 그림에 도전해봤더라면 어땠을까. 자신이 보았던 시대를 화폭에 응축하여 담아보는 시도를 해봤더라면 과연 어땠을까. 성공하건 실패하건 간에 자갈밭보다는 훨씬 납득이 가는 결론이 나왔을 것이다.
1-1. 1960~1987년에 이르는 30년 가까운 시간을 제대로 다룬다면 당연히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으로 다뤄지게 될 것인데,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단순히 작품의 하위 에피소드로 등장시키기에는 너무 방대한 드라마 그 자체이다. 비슷한 시기를 다룬 영화 국제시장에서 왜 민주화 운동을 다루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윤제균 감독이 "영화의 흐름상 어설프게 다뤄봤자 수박 겉핥기밖에 안 될 것 같아서 뺐다. 기회가 되면 독립된 작품으로 다뤄보고 싶다"고 대답한 것을 생각해 보자. "그 30년을 사실상 생략하고 넘어간 것이 대하역사물에 적합한 것인지 실로 의문이다" 라고 하는데, 애초에 본작은 분량부터 대하역사물이 아니다. 대하소설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을 보면 짧아도 서너권, 좀 길다 싶으면 십여권을 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소설보다 이야기의 밀도가 낮을 수 밖에 없는 만화로 2권 분량에 대하역사물을 기대하는 것은 전혀 상식적이지 못하다. 말 그대로 거시적인 역사적 이야기를 다룬 작품=대하역사물 이라는 착각을 바탕으로 한 단견적인 평가인 것. 본작의 내용에 민주화 운동 시대 이야기까지 다루려면 분량 자체가 크게 늘어나야 할 텐데, 개인이 취미로 그리는 것도 아니고 출판을 전제로 한 작품의 분량이란 작가가 엿가락 늘리듯 마음대로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2. 민주화 운동 시대의 30년을 생략한 것은 작품의 내적 구조와 이강토의 캐릭터성을 보여주는데도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강토는 <타협하지는 않고 다만 방관할 뿐인 인물> 인데, 이는 다르게 보면 <타협하지는 않지만 다만 방관할 뿐인 인물> 이라는 뜻이기는 하다. 1950년대의 격랑을 온 몸으로 해쳐나온 결과 이강토가 선택한 답은 '방관'과 '예술로의 침잠' 이었고, 이 선택의 결과로 이강토는 한국 사회를 또 한번 뜨겁게 달군 '민주화 운동의 격랑'에서는 방관자로 남는 인물이 되었으며. 이는 이강토라는 캐릭터가 보여준 한계이기도 한 것이다.
작중에서도 이 부분을 완전히 생략한 것은 아니고,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정치운동가가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도리어 이강토에게 "왜 유신체제의 감옥에 갇혀있느냐"고 물었을 때 이강토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상대가 감옥에 갇혀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감옥 밖의 사회 역시 독재정권 치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이강토가 그 부자유와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기를 멈추고 예술이라는 감옥 속에 스스로를 가둔 것 역시 사실이기 때문에 자신이 갇힌 한계를 지적당했을 때 아무 반론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그 30년간의 이야기를 작품의 전면에 내세우려면 이강토의 캐릭터가 굴복하지 않고 도피하지 않고 계속 싸워나가는 인물상으로 바뀌든지, 그정도는 아니라도 수동적인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인 관찰자로 바뀌든지, 아니면 이강토를 대신할 새로운 주인공을 제시하든지, 하여간 작품의 주인공상 자체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1-3. 결국 '1960~1987년의 이야기' 를 작품 내에서 다루러면 서사의 분량과 구조가 전혀 달라지고 주인공의 캐릭터상 역시 달라져야 하는데, 이정도까지 달라지면 그냥 다른 작품이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비판으로써 '다른 작품을 썼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심각한 문제를 가진 작품에 대해 '이런 작품을 쓰느니 차라리 다른 걸 쓰는게 나았겠습니다' 수준이 아니라면 합리적인 비판으로써 별 의미가 없다.
2-1. 모든 창작물에는 일정부분 '작가가 제시한 내적 설정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해줘야 할 부분',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작가가 그렇다고 하면 그 작품 내에서는 어쨌건 그런 부분' 이 있기 마련이다. 간단히 말해 의료 만화 그리는 작가가 다 의료 전문가일수는 없는거고, 스포츠 만화 그리는 작가라고 다 운동선수는 아니며, 바둑 만화를 꼭 프로 기사가 그리는 것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눈높이가 높은 일부 독자가 보기에는 작가가 그렇다고 한 것이 꼭 그래보이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성실한 작가라면 연구, 취재, 조사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 법이지만 그런 노력에도 언제나 한계가 있다.
다만 이 경우는 만화가 허영만의 전문분야도 그림이고, 화가 이강토의 전문분야도 그림이니 이강토가 그림쟁이로써 어떤 노력 끝에 어떤 성과를 얻어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따지면 허영만의 전문분야는 만화, 즉 '그림을 통해 서사를 전달하는 분야' 인데 비해 이강토가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화가로써 '표현양식을 통해 감정, 감흥을 전달하는 분야' 이다. 표현양식(그림)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인접분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엄연히 다른 분야이고, '허영만도 그림쟁이이니 한 폭의 그림에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시도를 해 봤어야 한다!' 고 비판하는 것은 레이싱 만화 그리는 작가에게 F1 레이스 한번 출전해 봤어야 한다라거나, 판타지 만화 작가에게 마법 한번 써 보라고 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물론 인접분야이니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과 짧은 시간을 들여서도 비교적 높은 성취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작가에게 작품 한 편 내놓을때마다 주인공의 인생을 한번씩 살아보라고 요구할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작중 서사를 통해 '기술적으로' 주인공의 행적이나 업적을 표현했다는 것이 비판점이 되기는 어렵다.
2-2. 이 부분 역시 '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그려낸 자갈밭 그림' 이라는 소재가 작중 가지는 의미가 명확함을 생각해야 한다. 정치적 좌절 이전까지 이강토가 그려낸 그림은 추상적인 이념을 주제로 상징적인 대상을 극히 데포르메하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작가 자신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길에서 크나큰 좌절을 맛본 이강토는 그때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과는 정 반대 방향, 즉 지극히 구체적인 대상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색체 사용을 극히 절제하며 작가 자신의 사상이 가능한 한 배제된(최소한 직접적인 표현은 극히 배제된) 그림에서 답을 찾으려 한 것이고, 그 결과가 '아무럴것도 없는 그냥 자갈밭'을 그려내어 관객들에게 감동을 안겨준(=국전에서 상을 탄) 것이었다.
2-3. 결국 '이강토가 자신이 찾던 답을 하이퍼리얼리즘에서 발견한 것이 문제'라고 하면 이것은 호오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작품성에 대한 평가의 대상이 되기는 어려운 영역이다. 그리고 '작중 묘사된 강토의 그림이 독자들에게 "작품으로써의" 감동을 전해주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독립된 작품으로써 관객들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것은 평생 순수 회화에만 매진해온 대가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미 만화가로써 대가의 반열에 오른 허영만에게 작중 등장시킬 소재 하나를 위해 순수 회화 분야에서도 대가의 수준에 이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요구라 현실성이 없다. 그나마 작품 속에서 강토가 새로운 답을 얻는 과정과 그 답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독자에게 설득력이 없다는 비판이라면 이는 분명 유효한 비판이겠지만... 그 답에 이르기까지의 맥락과 과정, 그리고 답의 의미까지 작중에서 이미 다루고 있는데도 굳이 '그냥 자갈밭 그림일 뿐이다' 라거나 허영만의 그림쟁이로써의 명예까지 거론하면서 '허영만 자신이 스스로 살아온 시대의 경험을 응축하여 작품을 작품을 만들었어야' 납득 가능한 결론이 나왔을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역시 지나치게 엄격한 평가의 높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만 하다.

반공물이라고 하기에는 남한정부에 대해서도 충분히 비판적인 작품인지라, 작가 본인도 그림을 그리면서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작품이 그려진 시기가 1987년이고 당시의 사회상이 어땠는지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위험한 작품이다. 스토리 작가 (김세영)의 이름을 별도로 표기했는데, 만약의 경우 책임을 분담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서울대 학생회에서 이 작품을 필독도서에 추천하기도 했었다.

1980년대 혹은 1990년대 초반, 만화의 유해성을 보도하는 뉴스에서 이 책의 한 장면이 보여지기도 했었다. 보여졌던 장면은 강토가 야스코를 모델로 누드화를 그리는 장면.

2019년에 이 책이 다시 출판된다는 뉴스가 나왔다. # 2019년 5월 재발간되었다.
2019-05-25 # 1쇄 5000부 매진되고 2쇄 5000부 찍었다.


[1] 훗날엔 이게 한이 됐는지, 김대중 선거 캠페인 만화를 그렸다. [2] 작품이 나온 시기가 1987년이기 때문에, 이 이후의 일은 그릴 수도 없다. [3] 정치에는 관심이 없으며 순전히 강토의 부탁으로 이들에게 공간을 내주었다. [4] 히키아게샤 참고 [5] 다른 몇몇의 학생은 사회주의나 평등주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학력이 낮은 소작농 출신 강토를 은연중에 무시한다. [6] 강토와 결혼 후엔 매정할 정도의 각박한 일수꾼 생활을 한다. 사회주의와는 정 반대인 자본주의적 행동을 한 것. [7] 이승만의 반공포로석방 [8] 당연히 장덕배는 일본이 곧 항복할 것을 눈치채서 보복당하지 않을 것이란걸 알고 저지른 것이다. [9] 이 때 처음 등장하지만, 김혜린은 작품 속에서 중후반부까지 매우 비중있는 역할로 나온다. [10] 강토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소학교 동창이기도 한 김혜린에게 그림그리시 숙제를 해 준 적이 있는데, 그 그림이 학교에 몇 달이나 걸려 있었다고 한다. [11]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 서울로 유학을 떠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몇 가지 우연이 겹쳐져서 강토는 기회를 얻게 된다. [12]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지만, 장석배는 예전부터 강토에게 무척 호의적으로 대해 줬다. 건달에, 일본인 앞잡이에, 야스코를 강간한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석배는 강토만 보면 어릴 때 죽은 동생이 생각 난다면서 잘 챙겨줬다. 야스코를 강간한 후에도 그녀를 살해하려고 하다가 이를 우연히 보고 있던 강토와 싸움을 했는데 당연히 강토가 한 방에 나가 떨어졌지만 강토도 야스코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녀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하면서 떠난다. 그 때 강토는 야스코에게 자기 옷을 벗어서 입고 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13] 여담이지만 귀국이란 말이 어색할 수도 있는 것이, 나이를 감안하면 조선에서 태어나 한번도 일본 땅을 밟아보지 못한 일본인일 수도 있기 때문. 실제로 재조선 일본인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14] 죄책감은 아닌 듯... 강토는 원래부터 야스코를 좋아하고 있었고, 두 사람이 동거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야스코에게 다른 부탁을 하게 된 것이 더 크다. [15] 원래 강토는 야스코를 그대로 읽은 영자(寧子)로 할 것을 권했으나 야스코가 거절하여 영자(英子)로 바꾸게 된다. 안씨 성은 원래 성인 야스다(安田)에서 따온 것. 그러니까 본명은 야스다 야스코(...)였다. 성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아버지 야스다 산뻬이의 이름이 언급되면서 언급한다. [16] 십수년 후에 그때 흑인과 동침한 여자는 야스코의 친구였음을 알게 된다. 야스코는 자리만 빌려준 것, 후일 오해를 푼 이강토는 야스코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이미 성인이 된 이강토의 딸을 낳았고, 그리고 병으로 죽기 직전이었다. [17] 남한에서 활동하던 당시 손병수는 한국인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미군 병사들에게 팔거나 초상화를 원하는 미군에게 화가를 소개시켜주는 일종의 화상(畫商)일을 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이강토와도 거래하며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공산주의 정치활동 때문에 린치당할 처지에서 도망치다가 근처에 살던 이강토에게 자신을 숨겨달라고 부탁하고, 이에 이강토가 자기 집 뒷방에 손병수를 숨겨주었는데 그 곳에서 이강토가 남몰래 그리던 '착취받고 억압받는 한민족 을 테마로 한 그림'을 발견하고 "이 화백도 공산주의자였느냐" 고 반가워하며 더욱 친해진 끝에 의형제까지 맺게 된 것. 이 장면 역시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일단 대중이 착취받고 억압받는 모습을 표현한 것 만으로 당연하다는 듯 (개량적 사회주의자라거나, 단순한 급진주의자가 아니라) 공산주의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해방 정국에서 공산주의가 가졌던 강력한 영향력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강토와 의기투합한 손병수가 대뜸 "이럴 줄 알았으면 미국놈들을 소개해주지 않는건데, 그동안 짐승같은 깜둥이들 상대하느라 욕보셨다"고 말하는 것에서 당시 한국의 좌익진영이 가졌단 외국인(특히 미국인)에 대한 강렬한 적의를 알 수 있는 것.(이는 이강토 역시 마찬가지로, 야스코가 미군 병사와 동침했다고 오해한 당시 '하필 외국인, 그것도 흑인'과 관계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을 받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18] 손목이 남아있었던 이유는, 이전부터 김희중과 다른 포로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탓에 불안했던 강토가 잠잘때 자신과 김희중의 손목을 끈으로 묶고 잤기 때문. [19] 나중에 사형판결을 받았다는 얘기를, 경찰? 정보부? 대공수사본부? 남한 정부요원으로부터 얘기를 듣게 된다. 포로석방 당시 남한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강토 역시 똑같이 되었을 거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20] 물론 그냥 놀고먹으려고 한 것은 아니고 그림솜씨를 살려 극장 간판을 그리는 일을 시작하여 본래 간판 그림을 직접 그리던 고용주에게 "역시 (자신같은) 간판쟁이보다는 그림쟁이가 한 수 위인 것 같다"고 칭찬까지 들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쟁중 인민군에게 한 쪽 팔을 잃고 더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고용주에게 인민군으로 복무한 과거가 알려지면서 쫒겨나게 된 것. 이 때 고용주는 이강토의 성품을 봤을 때 전쟁중에도 남에게 못 할 짓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을테니 더 따지지는 않겠지만, 원수인 인민군을 계속 고용할 수는 없다고 강토를 쫒아내는데, 이 역시 전쟁과 이념대립이라는 극한상황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성품이나 행실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첨예한 갈등'을 보여주는 장면인 동시에 이강토가 그렇게 버리고 싶어한 과거의 주박이 무엇이고, 그것이 이강토를 어떻게 사로잡고있는지 현실적/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한 것. [21] 이는 손미숙이 '자신의' 이념에 충실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의 이념을 별다른 저항 없이 곧 자신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충실한 인물, 즉 본질적으로 타협적인 인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인물을 줏대없는 기회주의자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결코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중 손미숙에게 소중한 가치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이강토(와 가족)이기에 북한에 있을 때는 오빠가 숙청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자신도 무사하기는 힘들 것이 뻔한데도 '강토를 기다려야 한다'고 탈출을 거부하다 '남한으로 가야 강토를 만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듣고서야 탈출했고, 남한에 와서도 생활력이 없는 남편 대신 억척스럽게 돈을 벌면서 남편의 예술활동을 지원한 것이다. 즉 손미숙이 보여주는 캐릭터상은 이념과 이상을 위해 싸우기보다는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을 위해 싸우는 소시민적이지만 성실한 인물상인 것. [22] 이게 너무 수위가 높았는지 이 레즈비언 플레이가 그대로 나온 판본이 있고, 삭제된 판본이 있다. 삭제된 판본에서는 아마도 장태산의 그림으로 여겨지는 보통의 포르노 비디오 그림이 들어가기도 했다. [23] 다만 그렇다고 해당 장면들이 선정적인 내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결코 아니고,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동물 그림들만 간간히 나올 뿐이다. 사실 지금보다 대중 문화에 대한 검열이 훨씬 엄격했던 1980년대에 연재된 작품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24] 1980년대의 시대상에 대해서는 아들 이석주의 서사가 이를 대신하지만, 이석주는 대학생으로 학생운동하고 화염병도 좀 던졌다는, 당시 인물로서는 흔해빠진 스테레오타입에 불과하다. 이강토의 빠른 퇴장으로 인해서 이야기가 중심축을 잃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