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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3 20:52:44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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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nuel Joseph Sieyès (1748 ~ 1836)

1. 개요2. 생애

1. 개요

프랑스의 정치가로서 프랑스 혁명의 중심인물이었으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손잡고 총재정부를 무너뜨린 인물이다.

유럽 최초의 인권 선언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의 초안을 쓰는데 참여했다.

2. 생애

시에예스는 프랑스 남부 프레쥐에서 우편배달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소르본 대학교에서 가톨릭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뒤 주교가 되었다. 주교가 된 이후에는 교회제도 내에 있는 평민 출신과 귀족 출신 주교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고 이게 그가 제1신분 소속이었지만 제3신분을 생각하는 책을 쓰는 계기가 된다.

1788년 루이 16세 삼부회를 소집하려하자 시에예스는 1789년 1월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저술해 배포하였는데 책 말머리의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은 무엇이었는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가?
-무언가 되기를 원한다."

결국 이는 프랑스 혁명 당시 국회 탄생의 촉진제가 되었다.

1789년 5월 열린 삼부회에서 시에예스는 제 1신분(주교)이었지만 제 3신분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활동하였고, 6월 테니스 코트의 맹세 이후 국민의회에 참여하였고, 헌법위원회에서 참여하면서 라파예트와 함께 프랑스 인권 선언의 초안을 작성하였다.

하지만 이후부터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름이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후 진행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기에는 책잡혀서 목 안 달아나려고 죽은 듯 숨만 쉬고 있었는데, 그래서 후일 "댁은 공포정치 시기 때 (그것들 안 막고) 뭣 하고 있었소?"라는 힐난조의 질문에 웃으며 "살아있었죠"라고 대답해서 상황을 넘겼다는 일화가 있다. 어떻게 보면 스탈린 격하 연설중이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비슷한 야유에 "방금 어떤 새끼야! 굴라크로 가고 싶어!"라고 외친 다음 좌중이 조용해지자 웃으며 "이제 왜 그랬는지 아시겠지요?"라고 말했다는 공산주의 유머의 원조격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한 이후 다시금 정치권의 중심에 서게 된다. 물론 총재정부 초창기에는 반대파도 많아서 총재로 임명되지 못했으나 1799년 5월 5인의 총재 중 한 사람으로 취임하게 된다. 이 당시 총재정부가 막장으로 돌아가자[1] 쿠데타를 계획하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는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로 총재정부를 무너뜨린다. 본래 그는 임시 통령정부 제1통령 자리를 노렸지만 나폴레옹에게 밀려 제2통령이 되었고, 결국 실권을 잡는데 실패한다. 그리고 나폴레옹 집권 시대에는 사실상 은퇴에 가까운 상황이 된다.

루이 18세에 의해 왕정이 복고된 뒤 추방되었다가 7월 혁명 때 프랑스로 되돌아온 뒤 1836년 사망한다. 장례는 탈레랑과 다르게 일반적인 장례식으로 치러졌다.[2]

여담으로 사회학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1] 입법부와 행정부가 상호간의 고위층을 향한 암살을 매일 벌일 정도였다.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던 나폴레옹도 폭탄으로 암살미수를 경험했다. [2] 탈레랑은 죽기전에 파문을 철회 받고 가톨릭 성직자의 신분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