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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30 12:50:33

에르투으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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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ayi.png
카이으 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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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초대 제2대 제3대
쉴레이만샤 에르투으룰 오스만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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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0000> 제2대 카이으 족장
에르투으룰
ارطغرل
Ertuğrul Gazi
파일:download-46-1.jpg
출생 불명
사망 1281년
룸 술탄국 쇠위트 변경백국, 쇠위트
자녀 오스만 1세를 포함한 3남
1. 개요2. 생애3.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룸 술탄국의 봉신(封臣)[1].

2. 생애

아버지 쉴레이만샤 몽골 제국의 침입을 피해 서쪽으로 피난오던 길에 시리아 북부에서 세상을 뜨자, 부족을 이끌고 아나톨리아에 도착한 에르투으룰은 동로마 제국과 싸워 아나톨리아 중부의 카라자다으(Karacadağ)라는 산지에 봉토를 받고, 베이가 되었다.[2] 그후 더욱 서진하여 쇠위트를 차지하였고,[3] 베이 중에서도 자치(自治)를 영위할 수 있는 우츠 베이(Uç Bey)[4]에 봉해졌다. 1230년에는 룸 술탄 카이쿠바드 1세의 휘하로 야스체멘 전투에 참전, 호라즘 제국 잘랄 웃 딘 밍부르누에 맞서 승리에 기여하였다.

1281년에 사망할 때까지 반세기 이상 룸 술탄국의 봉신으로 있었으나, 사후 그의 아들인 오스만 1세는 룸 술탄국이 와해되자 독립해 훗날 오스만 베이국을 세우게 된다. 쇠위트에는 그의 영묘가 잘 보존되어 있다.

3. 매체에서



[1] 봉건 사회에서 봉토(封土)를 받은 신하. [2] 카라자다으가 앙카라 인근에 있다고 해서 곧 도시를 차지한 것이 되지는 않으며, 지도를 봐도 카라자다으와 앙카라는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앙카라에서는 1290년에 상인 길드아히 형제단 공화국을 세워 일 칸국에서 반쯤 독립했다가, 오르한 치하인 1356년에 오스만에게 멸망했다. [3] 다만 그보다 더 내륙의 도시인 도릴라이온(= 에스키셰히르)는 사후 오스만 1세 대에 와서야 점령된다. [4] 변경백에 해당. [5] 다만 기록이 부족한지라 필연적으로 작가의 상상에 의존해야했기는 했다는 점은 감안하기는 할 듯하다. 그래도 너무 과다하는 것이 주 평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