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1900년대 독일제국군의 장성급 장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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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Generalfieldmarsch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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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원수 |
레온하르트 폰 블루멘탈 | |
상급대장 Generalober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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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상급대장 |
- 명예원수 오토 폰 비스마르크 | 명예원수 루트비히 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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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대장 General der Waffengattung / Admir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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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병과대장 |
에두아르트 폰 레빈스키포병 | |
해군 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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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 Generalleutnant / Vizeadmir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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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중장 |
페르디난트 그라프 폰 체펠린 | 에두아르트 폰 페스텔 | |
해군 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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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Generalmajor / Konteradmir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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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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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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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독일 제국군의 상급대장과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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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6> 독일 제국군 육군 중장 에두아르트 폰 페스텔 Eduard von Pest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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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duard von Pestel 에두아르트 폰 페스텔[1] |
출생 |
1821년
5월 18일 프로이센 왕국 뮌스터 |
사망 |
1908년
3월 24일(향년 86세) 독일 제국 자르브뤼켄 |
복무 |
프로이센군(1838년~1871년) 독일 제국군(1871년~?) |
최종 계급 | 육군 중장(Generalleutnant) |
주요 참전 |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
주요 서훈 | 푸르 르 메리트 |
별명 | 자르브뤼켄의 영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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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두아르트 폰 페스텔은 독일제국군의 군인으로 최종계급은 중장이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싸웠다.2. 생애
페스텔은 1821년, 1787년에 귀족 작위를 받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페스텔은 1838년 프로이센군에 사관생도로 입대했으며 11 후사르 연대에 배치되었다.페스텔은 1849년에 벌어진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도 참여했으며 참모장교가 되었다. 이후 소령으로서 프로이센 6사단 소속의 40연대의 지휘관이 되었다. 40연대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첫 전투인 자르브뤼켄 전투에서 싸웠다. 프랑스군은 30,000명의 병사로 공격할 때, 1400명의 병사로 프랑스군에게 83명의 사상자를 만들었고, 정작 본인의 중대에서는 86~88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페스텔의 중대와 시민들의 저항으로 자르브뤼켄은 14일 동안 프랑스군에 의해 함락되지 않았다.[2] 심지어 자르브뤼켄이 정복당했을 때, 페스텔은 얼른 민간인을 대피시켜 민간의 피해를 줄였다. 이 전투로 인해 페스텔은 자르브뤼켄의 영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페스텔의 연대는 메스로의 행진에 참여했다. 메스 정복에 큰 도움을 주었고, 아미앵 전투에 참여했다. 그리고 2개월 뒤 종전을 맞았다. 전쟁에서의 공로로 페스텔은 대령으로 승진하고, 1,2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1873년에는 푸르 르 메리트를 받고, 계속 군에 남아 1890년 중장으로 승진했다. 언제 전역했는지는 불명이나, 1908년 3월 24일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