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諺解胎産集要. 조선 선조 41년인 1608년에 허준이 선조의 왕명을 받들어 편찬한 산부인과 계통의 의학서.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독의약박물관 등에 원본이 소장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본이 대한민국 보물 제1088-1호로, 한독의약박물관본이 제1088-2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태산집요와는 다른 책이다.1608년 허준이 저술한 한글 의학서로, 1500년~1600년대 우리나라에서의 아이의 잉태에서부터 출산, 이후의 산후조리법까지 모두 기록한 것이다. 당시 임산부의 총 43개 증상에 대한 처방 및 치료방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이 저술되던 1500년대 후반~1600년대 초 우리말의 어휘와 표기법 및 한자음표기가 자세히 수록되어 있어 국어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사료이다. 또한 조선 중기 한방의학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하게 사용된다.
3. 외부 링크
-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희귀본 : 언해태산집요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언해태산집요
- 한국 미의 재발견 - 과학문화 : 언해태산집요
- 향토문화전자대전 : 『언해태산집요』
- 국어국문학자료사전 : 언해태산집요
- 체육학대사전 : 언해태산집요
4. 보물 제1088-1호
『언해태산집요』는 출산에 관한 증세 및 약방문을 적은 의학서적으로, 선조 41년(1608)에 임금의 건강과 병을 돌보던 어의(御醫) 허준(1546∼1615)이 왕의 명에 의해 한글로 번역하여 내의원에서 훈련도감자로 간행하였다.
허준 선생은 선조 7년(1574) 의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내의원의 의관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모시고 의주까지 피난을 갔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공신으로 추대되었으나 중인신분에 과하다는 여론이 일자 취소되었다. 그 유명한『동의보감』은 그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16년간의 연구 끝에 완성한 한의학의 백과사전격인 책이며, 허준 선생은 이외에도 중국의 의학서적을 한글로 번역하는 데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 책은 자식 구하여 낳는 방법으로부터 시작하여 임신 중의 여러 증세와 약방문, 출산 때에 지켜야 할 일과 금기일 등을 서술하고 있다. 책 끝에는 간행기가 있고 표지 뒷면에는 내사기(內賜記:임금이 신하들에게 책을 내리면서 쓴 언제 누구에게 무슨 책을 주었는가에 대한 기록)가 있으며, 책머리에 선사인(宣賜印)이 찍혀있다. 이 책은 선조 41년 당시 대사성인 김륵에게 하사한 것이며, 보존상태가 불량하여 여러 겹으로 겹쳐붙였다. 한독의약박물관에는 목판본이 있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체재와 내용은 모두 동일하다.
허준 선생은 선조 7년(1574) 의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내의원의 의관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모시고 의주까지 피난을 갔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공신으로 추대되었으나 중인신분에 과하다는 여론이 일자 취소되었다. 그 유명한『동의보감』은 그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16년간의 연구 끝에 완성한 한의학의 백과사전격인 책이며, 허준 선생은 이외에도 중국의 의학서적을 한글로 번역하는 데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 책은 자식 구하여 낳는 방법으로부터 시작하여 임신 중의 여러 증세와 약방문, 출산 때에 지켜야 할 일과 금기일 등을 서술하고 있다. 책 끝에는 간행기가 있고 표지 뒷면에는 내사기(內賜記:임금이 신하들에게 책을 내리면서 쓴 언제 누구에게 무슨 책을 주었는가에 대한 기록)가 있으며, 책머리에 선사인(宣賜印)이 찍혀있다. 이 책은 선조 41년 당시 대사성인 김륵에게 하사한 것이며, 보존상태가 불량하여 여러 겹으로 겹쳐붙였다. 한독의약박물관에는 목판본이 있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체재와 내용은 모두 동일하다.
5. 보물 제1088-2호
『언해태산집요』는 출산에 관한 증세 및 약방문을 적은 의학서적으로, 선조 41년(1608)에 임금의 건강과 병을 돌보던 어의(御醫) 허준(1546∼1615)이 왕의 명에 의해 한글로 번역하여 내의원에서 훈련도감자로 간행하였다.
허준 선생은 선조 7년(1574) 의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내의원의 의관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모시고 의주까지 피난을 갔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공신으로 추대되었으나 중인신분에 과하다는 여론이 일자 취소되었다. 그 유명한『동의보감』은 그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16년간의 연구 끝에 완성한 한의학의 백과사전격인 책이며, 허준 선생은 이외에도 중국의 의학서적을 한글로 번역하는 데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 책은 자식 구하여 낳는 방법으로부터 시작하여 임신 중의 여러 증세와 약방문, 출산 때에 지켜야 할 일과 금기일 등을 서술하고 있다. 책 끝에는 간행기가 있고 표지 뒷면에는 내사기(內賜記:임금이 신하들에게 책을 내리면서 쓴 언제 누구에게 무슨 책을 주었는가에 대한 기록)가 있으며, 책머리에 선사인(宣賜印)이 찍혀있다. 이 책은 선조 41년 당시 대사성인 김륵에게 하사한 것이며, 보존상태가 불량하여 여러 겹으로 겹쳐붙였다. 한독의약박물관에는 목판본이 있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체재와 내용은 모두 동일하다.
허준 선생은 선조 7년(1574) 의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내의원의 의관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모시고 의주까지 피난을 갔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공신으로 추대되었으나 중인신분에 과하다는 여론이 일자 취소되었다. 그 유명한『동의보감』은 그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16년간의 연구 끝에 완성한 한의학의 백과사전격인 책이며, 허준 선생은 이외에도 중국의 의학서적을 한글로 번역하는 데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 책은 자식 구하여 낳는 방법으로부터 시작하여 임신 중의 여러 증세와 약방문, 출산 때에 지켜야 할 일과 금기일 등을 서술하고 있다. 책 끝에는 간행기가 있고 표지 뒷면에는 내사기(內賜記:임금이 신하들에게 책을 내리면서 쓴 언제 누구에게 무슨 책을 주었는가에 대한 기록)가 있으며, 책머리에 선사인(宣賜印)이 찍혀있다. 이 책은 선조 41년 당시 대사성인 김륵에게 하사한 것이며, 보존상태가 불량하여 여러 겹으로 겹쳐붙였다. 한독의약박물관에는 목판본이 있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체재와 내용은 모두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