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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남원 양씨 |
출생 | 1880년 2월 10일 |
충청도
청산현 현내면 (현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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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6년 2월 5일[1] |
경상북도 영일군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7묘역-11호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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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독립유공자 양한위는 그의 남동생이다.
2. 생애
양한기는 1880년 2월 10일 충청도 청산현 현내면(현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에서 독립유공자 양제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어려서 부친으로부터 손자병법을 배웠고, 1894년 4월에서 12월까지 충청도 진천현(현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화살 및 활, 총탄 제조 등을 강습받았다. 1895년 3월부터 1909년 1월까지는 경상도 경주부 죽장면[2](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을 중심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여 서양식 총 등 전쟁용 무기 구입을 위해 활동했다.
한편 그는 1901년 4월부터 1944년 3월까지 경상북도 경주군 죽장면 두마리(현 포항시 북구 죽장면 두마리)에서 청소년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사립학교를 설립했으며, 부친과 동생 양한위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재산을 매각하여 후원했다.
이후 1946년 2월 5일 경상북도 영일군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양한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21년 10월 17일 본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두마리에 안장되어 있던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7묘역에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