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양정(楊楨) |
생몰 | 1865년 11월 26일 ~ ? |
출생지 |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읍 덕흥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양정은 1865년 11월 26일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읍 덕흥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부상으로, 1919년 8월경 10년 지기인 전협으로부터 비밀결사 조선민족대동단의 설립 목적과 취지를 듣고 가입하여 상공단장(商工團長)이 되어, 보부상을 규합하여 인쇄물을 배포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가 심해 국내 활동이 어렵게 되자, 본부를 상해로 이전하기로 결심하고 10월 10일 총재 김가진의 상해 망명을 단행하였다. 이어 전협, 김가진, 정남용· 한기동· 나창헌 등과 협의해 의친왕의 상하이 망명을 추진했으며, 1919년 11월 27일 오후 5시에 광화문 앞 광장에서 제2의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했다.양정은 전국 각도에 36명의 보부상을 파견하여 독립운동을 시킬 여비 1인당 100원, 즉 3,600원을 지출하였다. 그리고 전협으로부터 받은 540원을 주고 자기 아내의 명의로 구입한 예지동 집을 주고 근거지로 삼았다. 동지 권태석이 검거되자 매우 낙담한 전협을 위로하며, “절대 걱정하지 마라. 무릇 중대한 일을 기획하는데 그런 정도의 장해는 흔히 있는 것이므로 굳이 비관할 필요없다. 결코 신고하지 말고 계속하여 독립운동을 해야한다”고 격려했다. 그러나 1919년 11월 19일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1920년 6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정치범 처벌령, 출판법, 보안법 위반 및 사기 등의 혐의로 징역 2년(미결구류 200일 통산)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양정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