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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02 23:28:10

앙리 리비에르

<colbgcolor=#002395><colcolor=#fff> 앙리 리비에르
Henri Rivière
파일:1000065558.jpg
본명 앙리 로랑 리비에르
Henri Laurent Rivière
출생 1827년 7월 12일
프랑스 파리
사망 1883년 5월 19일 (향년 55세)
응우옌 왕조 하노이 인근 꺼우쩌이
학력 프랑스해군사관학교 (졸업)
군사 경력
복무 기간 프랑스 해군
1842년 ~ 1883년
최종 계급 대령
주요 참전 크림 전쟁
제2차 이탈리아 통일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멕시코 출병
청프전쟁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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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군인.

2. 생애

파리에서 태어났고 1842년 해군 사관생도로 입대해 태평양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1849년 해군 소위가 되었고 지중해 전대에서 복무했다. 크림 전쟁, 이탈리아 통일 전쟁, 멕시코 출병,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참가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공적을 얻지는 못했다.

뉴칼레도니아의 반란을 진압하고 대위로 진급했으나 베트남으로 좌천되었다. 1881년 천주교 신부를 죽인 범인을 찾고 상인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하노이를 무력으로 점거했으며 이에 베트남 조정은 유영복의 흑기군[1]과 청나라에게 도움을 청했으며 당시 이홍장은 협상을 제안했으나 거부했다. 이에 흑기군+청나라 연합군이 자꾹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했다.

이에 프랑스 총리 쥘 페리의 지지를 받아냈고 국내의 여론도 가르니에의 월권행위와 달리 좋은 반응을 보였다. 이에 청의 당경승은 유영복에게 공격할 것을 명령했고 도발하는 벽서를 써붙어 하노이성 밖으로 나오게끔 해 꺼우쩌이에서 프랑스군을 포위했다. 전투 중 대포가 뒤집혀 수리하다가 흑기군의 총을 맞고 전사했다.

이 계기로 프랑스는 본격적으로 청나라와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1] 프랑수아 가르니에의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가르니에를 전사시켰다.